손재호 목사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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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06:25

언약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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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선택

                                                                                            - (성희찬목사/마산제일교회) -

 

이세령 목사님, 우리가 이곳 네덜란드 개혁 교회에서 생활하며 개혁주의를 배우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혹은 언약론)을 의논하고 살핀다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언약 사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언약 중심의 교회 생활을 한다면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교회와 신자들의 개인주의적 신앙 자세나 개교회 중심의 생활을 극복하는데 일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세령 목사님께서 토론을 제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이 목사님처럼 우리가 함께 의논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을 바르게 이해하고 또 언약에 바탕한 생활이 무엇인지를 체득하고 그래서 조국 교회에 적절하게 접목시켰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 역시 아직 언약과 선택의 관계를 배우는 중에 있기 때문에 서로 토론을 통해 큰 유익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세령 목사님은 언약과 선택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약은 택자나 불택자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언약의 효력은 믿는 자에게 가능한 것이고, 여기에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입장에서 하나님의 선택이 주효한 결과적 역할을 한다는 입장에 서는 것 같습니다. 즉 선택이 가시화되는 방식으로(창조-구속역사) 하나님은 언약적 방식을 도입하셨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아담과의 언약이 타락 이전에서부터 의미를 가지고 우리를 시험하시는 한 방편이었다고 이해를 합니다.” 저 역시 이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 입장은 칼빈을 비롯한 다수 개혁자들의 견해이며, 제가 소개한 W.H. Velema(펠러마) 과 J. van Genderen(판 헨더런) 교수가 쓴 교의학에서 말하는 입장이며, 31조파 개혁 교회와 기독 개혁교회가 가진 입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입장이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과 선택의 관계를 정직하게 서술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 역사를 볼 때 사람들은 이 진술로 만족하지 않고 몇 걸음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언약이 택자나 불택자나 모든 이에게 수여되고, 모든 이가 다 이 언약으로 값없이 초청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언약에 순종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언약의 효력은 믿는 자에게 가능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순종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에서 (에베소서 2:8) 하나님의 선택이 주효한 결과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즉 언약은 처음부터 택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언약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언약을 보면 언약이 택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선택과 예정의 관점에서 언약을 조명하면 상대적으로 언약이 모든 이에게 제공되고 우리가 이 언약을 믿고 순종하다는 점이 덜 강조되어집니다. 언약에 대한 반응으로서 믿음과 순종을 강조하면 알미니안적으로 이해되어지고 언약이 은혜 언약이 아니라 행위 언약으로 비춰진다는 것입니다. 언약이 은혜로서 손상이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네덜란드의 케르스턴이 대표적 경우, 그리고 웨스터민스터 대교리문답의 경우 역시) 이 언약은 본래 하나님과 신자의 대표로서 머리이신 그리스도 사이에서 맺어진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신자는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언약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 맺어진 것이고 또 신자는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언약의 대상이 되었으므로 언약은 엄격하게 택자만을 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 극단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케르스턴이 대표적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카이퍼는 위 입장에서 발전하여 교회를 언약의 공동체, 택자의 공동체로 부릅니다. 그리고 여기서 세례는 택자를 식별하는 표이며, 언약의 본질이 됩니다. 세례를 받으면 이미 중생되었다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은 신자의 생활을 나태하게 만들고, 세례가 우리 생활에 차지하는 역할이 더 이상 없게 됩니다. 카이퍼의 이런 입장 때문에 1892년 합동 (1834년의 분리운동파와 1886년의 돌레앙치 운동파의 합동) 에 반대하여 잔류한 일부 사람들이 현 기독개혁교회이고, 31조파 개혁교회의 1944년 분리 역시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즉 31조파가 카이퍼의 견해에 반대하는 논리는 중생의 근거는 하나님의 언약이지 세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개혁교회의 주장은 카이퍼의 견해대로 할 것 같으면 교회가 택자로 구성된 공동체이므로 중생을 설교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이유로 카이퍼의 견해에 반대합니다. 즉 교회에는 불신자도 있을 수 있으므로 중생을 설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케르스턴의 견해 역시 선택 관점에서 언약을 보기 때문에 교회를 택자의 공동체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카이퍼와 다른 점은 세례가 아니라 언약이 삶에서 체험되어야 하며 이것은 확신으로나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도 언약의 체험과 확신을 무시하지 않으나 이것이 택자와 불택자의 기준이 되어 버리면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케르스턴과 지금 Gereformeerde Gemeente (이 교단을 대변하는 기관을 보면 Reformatorische 학교, 신정 정치를 이념으로 삼는 SGP 정당, 로텔담에 있는 신학교 등입니다) 의 입장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언약은 택자만을 위한 것이며 언약을 체험한 택자에게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교회 신자들은 택자로서 자기 확신, 곧 구원의 자기 확신을 강조한다고 합니다. 제가 듣기로 이 교회 신자들 중에는 깊은 죄의식에 빠지면 성찬식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신문 (ND, 2월2일) 에 보니까 Gereformeerde Gemeente 교단이 지난 주 총회에서 언약에 대한 공식 입장을 다시 정리하였는데 (공식 보고서는 아직 아니나 거의 확정적이라고 함) 즉 앞 문장 그대로 기존 입장을 확인했다는 보도를 읽었습니다. 어쨌든 카이퍼와 케르스턴의 견해를 따르면 언약이 택자든, 불택자든 제공된다는 사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선택의 관점에서 언약을 설명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선택이 언약을 지배한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개혁자들의 견해를 보면 언약을 선택 바깥에서 다루지는 않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볼 때 언약은 택자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렇다고 선택이 언약을 지배하도록 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릴까요? 죽을 병에 걸린 31조파 개혁 교회 신자와 Gereformeerde Gemeente 신자가 있는데 죽을 때 평안하게 죽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전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후자는 구원에 대한 경험과 확신을 평소에 강하게 갖고 있으나 죽을 병이 정작 걸렸을 때는 구원과 영생을 의심하면서 죽는 반면 전자는 죽을 병이 걸려도 하나님의 언약에 자기 구원이 기초한다고 믿기 때문에 평안히 죽는다고 합니다. 물론 우스개 소리로 회자되는 이야기이니 새겨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선택과 언약의 관계를 인간의 논리 구조로 이해할 때 극단에 치우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있는 현상 그대로를 서술하는 태도, 즉 성경이 말하고 가는 곳 까지만 가고 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언약과 선택이 가지는 본래 성격 때문에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즉 언약은 본래 인간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운 개입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언약은 인간 역사와 관련됩니다. 즉 아담의 언약에서 비롯하여 아브라함, 다윗 등의 언약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언약이 완성되는 것을 봅니다. 반면 선택은 창세 전에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선택은 영원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이 둘 즉 역사적인 언약과 영원의 선택을 인간의 논리 구조로 조합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이 두 노선을 우리가 서술하는 것이 정직하다고 봅니다. 인간 역사를 볼 때도 아니 구체적으로 한 교회를 볼 때 언약에서 주어진 약속이나 복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말씀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표시인 세례에도 불구하고 언약에 순종치 않는 사람들이 과거 이스라엘 안에도 있었고 교회 안에도 있다는 것을 보고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과 순종이 하나님의 선물일 뿐 아니라 언약에는 약속 뿐 아니라 요구가 있어 그기에 그 요구에 믿음과 순종으로 신실하게 반응할 것을 우리의 책임으로 말합니다. 또 성경 곳곳에서 모든 이에게 언약의 약속으로 초청하지 않습니까?

 

페일러마와 판 헨드런 교수가 공저한 교의학 책을 통해 제가 이해한 바로는 카이퍼나 케르스턴이 선택이 언약을 다스리는 견해를 가졌다면 칼 바르트와 헨드릭스 벌코프는 선택은 언약에서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난 글에서 카이퍼와 케르스턴의 차이점을 소개하면서 “G.H. Kersten 는 언약과 선택을 아예 구분한다” 고 했는데 제가 원래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언약과 선택을 분리하는 것은 케르스턴의 입장이 아니라 바르트와 벌코프인 것 같습니다). 즉 두 사람은 이스라엘 역사를 언약의 역사로 보면서 이스라엘의 신실치 못하므로 언약이 실패하여 전 인류로 대체하게 되었고 신실함과 신실치 못함의 변증법에서 하나님께서 마침내 아들 예수를 주시는 것으로 언약을 설명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 보편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 놓음으로써 언약에서 선택을 분리하거나 혹은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칼빈의 선택 사상을 언급하였으면 언약과 선택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났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짧은 지식으로 칼빈의 선택 사상 전체를 조직적으로 서술하기는 어렵고 간접 인용을 통해 일부만 소개하는 정도에서 그쳐야겠습니다. 선택 사상을 명확하게 언급하는 성경을 우리가 에베소서 1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는 대로 바울이 여기서 창세 전에 우리가 선택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배경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속 받았다는 것을 말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노래하고 찬양하는 맥락입니다. 바울이 왜 어떤 배경에서 선택을 말하는지, 그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칼빈에게도 적용됩니다. 작년인지 재작년에 작고한 교회사가 H.A. Oberman 이 칼빈의 예정(선택)론이 박해라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래서 칼빈이 이 교리를 강조한 의도는 박해 가운데서 신자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한 배경이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기독개혁교회 신학교 교회사 교수 Selderhuis 도 재작년에 저술한 책,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 칼빈의 시편 신학> 이라는 책에서, 그리고 그 이전에 쓴 책 <다윗, 칼빈, 나> 라는 책에서 칼빈의 시편 주석을 집필한 신학적 동기 중 하나는 자신이 피난민으로서 자기 경험이 거기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자기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데 시편 주석에서는 예컨대 다윗이 나그네로서 타국에서 방랑하는 경험을 자신의 경험에 일치시켜 주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 주석에 담긴 하나의 신학적 동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 사상은 박해 중에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소망과 위로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편 주석에 보면 적극적인 유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고 말합니다. 기독교 강요 역시 칼빈이 거창한 신학 체계를 세우기 위해 집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기 위한 목회적 동기에서 성경 연구를 통해 얻은 여러 가르침을 모은 것이라는 것을 Selderhuis(셀더르하이스) 교수가 말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말하는 선택을 이해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선택의 섭리에서 논리적으로 유기 사상을 유추해내는 것을 성경이 말하는 그 이상을 우리가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경이 유기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이 어떤 맥락에서 유기를 말하고 있는지에 유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교의를 담고 있지만 교의학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선택 교리는 에베소서 1장에서 말하는 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에 대한 노래와 찬양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받았는지 의심하고 심지어 이 교리에서 유기 사상을 유추하여 자신이 유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그릇된 하나님 이미지를 가지는 것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선택하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우리와 우리 자녀를 자기에게로 부르시며 초청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하며 우리에게 믿음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지난 글에 제가 서술한대로 칼빈은 이중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 <선택>, <양자됨>, <부르심>을 언급합니다. 그는 이것을 일반-특별 구조로 언급합니다. 예컨대 모든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았으나 믿는 자가 하나님의 참 자녀요 참 택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을 인용하며 일반 부름과 특별 부름으로 설명합니다. 또 기독교강요 3권 24장에서 선택을 다루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선택의 역사이나 선택은 믿음에 의존하지 않는다.”

 

요컨대 언약을 말할 때 세례를 통해 보증하시는 하나님의 구체적 약속 (예컨대 하나님의 임재, 죄 용서),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언약의 약속이 수여되어 모든 사람을 초청하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에서 언약론을 시작해서 선택의 섭리로 나아가야지 반대로 선택에서 언약론을 논하면서 이 둘의 조화를 이루려 하면 사변적으로 흐르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제가 이해한 대로 언약과 선택의 관계를 말씀드렸습니다. 언약 자체가 무엇인지,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너무 벅차서 여기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출처] 언약과 선택(성희찬목사)|작성자 진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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