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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의와 개혁주의의 차이점

김명도 교수(튤립신학연구원)

 

Ⅰ. 세대주의의 기원

 

세대주의의 기원은 1820년대의 영국 Dublin 이라는 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John Nelson Darby(1800-1882)라는 사람은 기성교회에서 목사만이 안수 받은 특수층인 성직자만 설교하고 성례식을 집례하는 것이 종교개혁 사상인 “만인사제 (priesthood of all believers)" 에 위배된다하여 교회를 박차고 나와서 따로 몇몇 모여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모든 잘못된 사람들은 기성교회를 비난하고 따로 모여서 새로 ‘성경공부’라는 미명으로 모여서 정통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나름대로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교파>를 만든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나 모르몬교나, 지금은 활동이 약화되었지만 옛날 박태선의 전도관이나 ”영생교단“ 등이 모두 이렇게 시작되어 사람들을 오도해 갔다. 세대주의를 이런 이단교파들과 대등시 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전에 기성 교회가 몰랐건 진리를 새로 발견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필연코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이다.

 

성경의 가르침 즉 기독교의 정통적 교리는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니케아 신경>이나 <아다나시우스 신경>이나 <콘스탄티노플 신경>이나 <갈게돈 신경>에 잘 정립되어 있고, 그 후 <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제2스위스 신앙고백>, <프랑스 신앙고백> <도르트 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에 모두 잘 정리되어 있고 현대에 와서는<케임브리지 선언Cambridge Declaration, 1996>으로 더 이상 수정하거나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다고 야단이지만 이는 크게 잘 못된 것이다. 이미 나타난 <역사적 신앙고백서들>을 받아 드리고 성경을 성경대로 믿으면 되는 것이며 <별도로 다른 진리>를 도입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John Nelson Darby라는 ‘세대주의 창시자’에 관하여 몇 마디 말한다면 그는 귀족의 집안에 태어나서 영국 Dublin에 있는 명문 대학 Trinity College에서 수학했고 목사로 안수 받고 Church of Ireland에서 다년간 목회하면서 기성교회의 <허점>들을 발견하고 기성교회의 잘못을 비난하는 <On the Nature and Unity of the Church of Christ>라는 책을 1827년에 쓰고 나서 그해 그가 목회하던 교회를 사임하고 나름대로 그의 독특한 목회 스타일로 그의 추종자 몇 사람과 같이 개인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매주 한 번씩 성찬식을 거행했고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교대로 설교하면서 전혀 기도해 힘쓰며 그의 온화한 인품과 탁월한 교수 능력으로 나름대로 그 모임을 잘 인도해나갔다. 같이 동사 목회하던 B.W. Newton과 결별하고 영국 서남단 Plymouth라는 항구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Plymouth Brethren’이라는 교단에 합류했다. Darby는 Newton을 ‘예언’ 문제와 ‘교회론, 특히 성찬문제’ 문제 등으로 그와 사상을 달리한다하여 이단으로 규정하여 결국은 1848년에는 ‘개방파’와 ‘폐쇄파’로 교단이 둘로 분리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Darby는 어학지식이 대단하여 성경을 불어, 독어로 번역했다. 그는 ‘세대주의 신학의 창시자’라고 불리운다.

 

이 세대주의는 미국에 상륙했다. 1900년도 초기에 미국의 Cyrus Ingerson Scofield(1843-1921)에게 전수되어 1909년 이른바 Scofield Reference Bible(스코필드 성경)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행되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급속도로 세대주의가 전파되게 되었다. Scofield는 군인 출신 벌률가로 성경 원어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었고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나름대로 KJV(1611)에 여기저기 나름대로 생각해 낸 주석을 기입했다. 그래서 Scofield의 성경을 읽는 사람은 나중에 다른 사람과 토론할 때 어떤 구절을 놓고 그것이 성경 본문에 있는 말인지 아니면 스코필드가 한 말인지 혼동을 가져 올 때가 있다고 토로한다.

 

미국에서 이 성경이 급물살을 타고 빨리 펴져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이 미국에 상륙하여 이상한 비성경적 성경해석 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건너온 ‘이신론Deism’이나 독일에서 건너온 ‘종교사학파, 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 宗敎史學派’ 등이 미국 Princeton 신학교에 상륙하면서 미국의 정통적 개혁주의 신학은 침식되었고 많은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신신학(新神學)에 빠져들어 갔기 때문이다.

 

이런 암흑기에 Scofield의 성경은 새로운 오아시스로 받아져서 너도 나도 사서 읽었고, Darby의 신학을 전수 받은 Scofield는 그의 성경을 통해서 세대주의 신학을 널리 펴나갔으며 한국에 나와서 평양 신학교를 설립한 미국 북장로교(UPCUSA) 목사 Allen Clark(곽안련)도 이런 세대주의 신학자 이었으므로 그에게 지도 받은 문하생들이 모두 세대주의 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한국의 세대주의 일변도의 신학이 <개혁주의>로 돌아선 것은 해방되고 나서 특히 6.25 사변을 전후하여 화란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박윤선 목사님 같은 몇 몇 학자들의 영향에 기인한다. 그러면 세대주의와 개혁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Ⅱ. 세대주의와 개혁주의 의 차이점

 

세대주의와 오순절 계통의 교리가 전혀 다른 것처럼 세대주의와 개혁주의는 전혀 다르다. 오순절 계통의 교리가 개혁주의와 다른 것은 “지금도 하나님이 계시가 온다” 고 믿는 오순절의 가르침을 개혁주의는 부인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는 종교개혁기의 신앙고백서인 Belgic Confession (1561), Heidelberg Catechism (1563), French Confession (1559), 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6)과, 성경 히 1:1; 계 22:18-19 등에 나타난 계시의 종결을 못 박고 있다.

 

세대주의와 개혁주의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첫째,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역사의 시대를 7가지로 구분하여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이 다르다고 가르친다. 세대주의 신학은 인류역사를 7세대로 구분하는데 그 일곱 세대란 다음과 같다.

1. 무죄시대 (Innocence, 창조부터 인류 타락 전까지)

2. 양심시대 (Conscience, 인류타락부터 노아 까지)

3. 인간통치 시대 (Human Government, 노아부터 아브라함 까지)

4. 약속시대 (Promise,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5. 율법시대 (Law, 모세부터 그리스도 까지)

6. 은혜시대 (Grace, 교회시대)

7. 왕국시대 (Kingdom, 천년왕국)

 

이렇게 구분하여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이 다르게 인간을 다스린다는 것이 세대주의자들의 신학이다. 모든 세대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하지만 율법과 은혜를 엄격히 구분한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7가지 세대에서 각각 인간에게는 다른 책임이 주어지며 하나님은 7시대에 각각 다르게 인간을 통치한다고 가르치며 우리는 지금 “은혜시대” 에 살고 있는데 율법인 십계명을 존중은 하지만 우리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으로 지킬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 세대주의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 은혜시대에 살고 있는데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는 것 보다 “단지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것뿐” 이라고 가르친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에 세대주의였다가 개혁주의로 돌아온 William Cox 가 쓴 작은 소책자인 <Why I Left Dispensationalism>이나 그의 책 <An Examination of Dispensatinalism>(P&R 1961, 1963)을 참고할 것. 이 책자들은 지금도 New Jersey주 Phillipsburg에 있는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약자로 P&R) 에서 구입할 수 있다. 아니면 Christian Book Distributors (Lynn, MA) 혹은 online으로 www.amazon.com 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오직 한 가지 방법 즉 하나님의 은혜로 인류를 구원해 주신다고 가르친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고 신약은 그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예언대로 임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Immanuel) 그가 구약에서 예언한 그대로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죽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고 믿는다. 구약에서 행위계약에 실패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위하여 “은혜계약”을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것이 개혁주의 구원관이다. 세대주의와는 판이 하게 다르다.

 

둘째,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구속사적 측면(In the perspective of God's Redemptive History)에서 해석한다. 옛날 교부 Origen(Alexandria에서 활동하던 Clement of Alexandria의 제자)은 성경해석의 원칙을 말하면서 “모든 성경은 네 가지 방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네 가지란 1. 문자적 해석 2. 풍유적해석 3. 도덕적 해석 그리고 4. 신학적 해석 이렇게 네 가지로 해석해야 하다고 했다. 이를 ‘오리겐의 4중해석’ 이라고 한다. 그러나 Origen 자신도 교리사적 측면에서 볼 때 실수를 많이 한 분이었다.

 

성경의 해석은 항상 문맥을 통해서 바른 해석이 나온다. 성경의 해석의 원칙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 (Scriptura Scripturae Interpres)>이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말이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항상Historico-Grammatico-Theological nterpretation (역사적 문법적 신학적 해석) 이 바른 해석 방법임을 알아두자.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되 역사적 배경을 알고 문법적으로 분석하고 그리고 신학적인 의미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세대주의자는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주장하면 온갖 해석상 오류에 빠지게 된다. 가령 예를 들면, 요한복음 2장의 말씀중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내가 다시 지으리라” 란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문자 그대로 라면 46년간 걸려서 지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문자 그대로 단 3일 만에 재건한다는 말이니 예수님은 그런 의미로 말씀한 것이 아니다. 그 다음절 요 2:21에 보면 문자 그대로의 성전을 말함이 아니고,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함이 분명하다. 이렇듯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큰 낭패를 당하며 진리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자.

 

셋째, 세대주의 신학은 구약과 신약은 관계가 없고 구약은 이스라엘만 말한다고 가르친다. 그 들은 말하기를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육적인 이스라엘> 나라 (지금의 유대민족) 만을 말한다고 가르친다. 믿는 성도가 모두 영적인 이스라엘임을 그들은 부인한다. 그렇다면 갈 3:29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나?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 니라” 란 말은 분명히 우리들 이방인들을 말하며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백성이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는 로마서 2장 28절 말씀이 입증한다. 세대주의는 모든 예언의 말씀이 이스라엘 즉 육적인, 다시 말하면 지금의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에게만 국한 된 예언이라고 가르치면서 갈 3:29 말씀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세대주의 신학자인 Louis Sperry Chafer가 쓴 조직신학 책 8권에는 로마서 4장에서 인용하는 글이 없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선지자가 예언한 예언은 이 땅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므로 이 세상에서 성취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에스겔서 40장에서 48장에 나오는 <성전>은 문자 그대로 이 세상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성전이며 이 세상에서 이뤄진다고 가르친다. 세대주의자는 계시록 22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도 문자 그대로<이 땅에서의 성전으로 앞으로 이 땅에 살게 될 성도들이 영원히 살게 될 곳> 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이스라엘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음을 믿는다. 즉,

1. 유대민족,

2.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

3. 솔로몬이 죽은 후 나라가 양분되어 10개 지파로 만들어진 여로보암 왕의 북국 (사마리아 중심) 이스라엘,

4. 영적 아브라함의 자녀 즉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믿는 모든 무리(갈 3:29) 등.

이렇게 이스라엘의 의미가 많은 것을 세대주의 신학은 부인하다. 이것은 그들의 맹점이다.

 

넷째, 세대주의 신학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 관계를 부인하며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말하기를 “구약에는 교회에 대한 예언은 한 마디도 없다”고 주장하며 모든 예언은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나라 백성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세대주의자들의 신학이다.

 

세대주의자는 말하기를 예수님이 말한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들을 위함이었는데 유대인들을 위하여 영적이 아닌 이 지구위에서 이루어질 다윗의 왕국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고 가르친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자 이 왕국은 장래 왕국시대가 되어야 이루어 질것이라고 그들은 가르치며 그 어간에 하나님은 <괄호 속>에 ‘교회시대’를 임시로 주었다고 가르친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의 교회임’을 철저하게 부인한다. 여기에서 온갖 그릇된 그들의 신학이 나온다. 그러므로 세대주의는 말하기를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도래했다는 말을 믿지 않으며 그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 말대로라면 항상 미래에 되어 질 일이며 현재와는 관계가 없다고 가르친다.

 

이에 반하여 개혁주의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바로 교회’라고 믿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도래 했고 그 마지막 완성은 미래에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이를 신학적으로 ‘Kingdom of God is already here but not yet’이라고 한다.

 

다섯째, 세대주의는 주장하기를, 성도는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대 환란이 오기 전에 교회는 휴거되어 성도는 환란을 면하게 되고(pre-tribulation rapture) 휴거(rapture)가 있은 후에는 유대인들 중 남은 자(remnant)가 교회를 맡게 되며 이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와 이방민족을 회심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고 가르친다. 좀 더 여기에 관해 알고자 하면 세대주의 신학자인 Charles C. Ryrie가 쓴 <Dispensationalism Today> (Moody, 1965, pp.132-135)를 참고할 수 있다. 성경은 분명히 성도들도 환난을 당한다고 말하며 마태복음 24장 22절 이하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세대주의와 개혁주의는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매우 다르다.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

 

1.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 예를 들면, 다윗의 보좌가 영원하리라(삼후 7:13) 은 이 땅에서의 다윗의 나라가 부활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임한다는 말로 성경은 로마서 1:3 이나 행 2:29-32 등에서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항상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원칙은 무리가 있다.

 

2. 이스라엘 문제에 관하여, 누가 이스라엘인가? ‘교회가 새로운 이스라엘’이라고 성경이 가르친다(롬 9:6; 갈 6;16).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무조건 항상 이스라엘 나라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나라를 말할 때도 있고 영적인 이스라엘 즉 믿는 성도들을 말할 때도 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예수의 피로 죄를 씻음 받은 자들이 새로운 12 지파가 되었다’고 야고보 1:1에 말하지 않는가?

 

3.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7가지 시대로 나누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다’는 엡 2:8말씀을 모르는 소치이다. 구약 노아 홍수 때도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었다고(창 6:8)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한결같이 같다.

4.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와는 관계가 없고 항상 미래에 속하며 이 지구위에서 성취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를 통해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지금 도래 했다(마 12:28; 눅 17:21).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살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중심’이거늘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의 ‘이스라엘 나라 중심’ 인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세대주의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고(눅 17장) 그 마지막 완성(final consummation)은 미래에 속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개혁주의적 신국관(view of the Kingdom of God)이다. ‘The Kingdom of God is already here but not yet’(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했지만 아직도 미래에 속한다) 미래에 속한다는 말은 마지막 사탄이 불 못에 던져지는 대심판 날에 사탄이 완전히 제거되고 영원한 신천지가 도래할 것을 내다 본 것이다. 지금은 아직도 성도는 사탄의 유혹을 받으며 거듭난 영혼은 거듭나지 못한 육신(sarks)과 부단히 싸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현상을 잘 그린 것이 로마인서 7장이다. 부활한 바울의 영혼이 아직 부활하지 못한 그의 육신의 생각과 싸우는 모습이며 그 모습은 바로 우리 성도들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5. 휴거에 관해서도 세대주의자는 장차 다가올 “대 환란, Great Tribulation" 전에 믿는 성도는 모두 휴거 되어 절대로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이 땅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마태복음(마 24:21-22)이나 베드로전서에 말한다.

 

그리고 몰래 ‘휴거’ 한다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어떻게 예수님이 쥐도 새도 모르게 몰래 재림할 수 있는가? 물론 세대주의자는 베드로후서 3장 10절을 근거로 말하지만 성경 한 군데만 보지 말고 다른 곳도 보아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4 에는 ‘결코 도적같이 올수 없다’ 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우리는 빛의 자녀로 옮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은 빛 가운데 행치 아니하고 아직도 어두움 속에, 즉 예수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벧후 3:10 말씀처럼 도적같이 임할 것이지만 예수를 믿고 있는 성도에게는 도적같이 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늘 그날을 고대하며 살기 때문이다. 이 성경해석이 정확한 증거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는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천사장의 호령소리로 주님이 강림’하시면 죽은 사람들이 그 나팔소리에 무덤에서 일어난다고 했는데 죽은 사람도 듣는 그 나팔 소리를 살아남은 우리가 못 듣겠는가? 주님의 재림은 몰래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온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속지 말자. ‘교회가 휴거한다’고 가르치는 이들의 이유는 ‘교회와 하나님의 구원을 분리하는’데서 기인한다. 그들의 말은 이 땅에 다윗 왕국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임시변통으로 주어졌던 교회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았듯, 세대주의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고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믿지만 그들의 구원관은 성경에서 벗어난 Darby나 특히 Scofield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교리’에 기초를 둔 것으로 개혁주의 신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대주의는 상당히 많이 교회에 파급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목사들 80-90%가 세대주의를 신봉한다.

 

III. 어떤 분들이 세대주의를 믿는 지도자들인가?

 

이미 세상을 뜬 사람들로는 앞서 언급한 John Nelson Darby, Cyrus Ingerson Scofield, Louis Sperry Chafer(Dallas 신학교 창시자, 세대주의 신학인 조직신학 8권 저자) 등이 있고, 현존하는 인물로는 Charles C. Ryie, John Warvoord, Charles Swindol 등이 머리에 떠오르고, 세대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는 Texas의 Dallas신학교, Philadelphia College of Bible, Winona Lake, Indiana의 Grace Theological Seminary, 그리고 La Mirada, California의 Talbot 신학교 등을 들 수 있다

 

출처 : 양무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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