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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누가복음 공부

아기 예수님의 정결예식

말씀:누가복음 2:21-39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밤에 자기 양떼들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임한 성탄의 메시지를 살펴봤습니다(눅 2:1-20).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요셉과 마리아가 모세의 법을 따라 아기 예수를 데리고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 성전을 방문했을 때 시므온이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언하고, 안나가 예수님을 증거 한 사건입니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자였고, 안나는 선지자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21-24절을 보면 “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고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율법에 따라 아들을 낳은지 팔일이 되어 할례를 행할 때 그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은 것은 천사 가브리엘이 말한 것에 따른 것이었습니다(눅 1:31). 예수란 우리가 지난 시간 본 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참조. 마 1:21).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시고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이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정결예식은 레위기 12장에 보면 자세히 명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2장에 의하면 자녀를 출산한 여인은 아들의 경우는 33일, 딸을 낳은 경우는 66일이 지나야 정결하게 됩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정결예식을 행하였습니다. 정결예식을 행할 때 보면 어린 양을 번제로 드리고,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속죄제로 드려야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출 12:3, 12)고 하신 대로 아기 예수님을 주께 드리고 주의 율법에 명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를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레위기 12:8절에 의하면 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고자 했다는 것은 어린 양을 번제로 드릴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의 경우에 해당되는 제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요셉과 마리아가 가난했음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갔을 때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므온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25-26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합니다. ‘의롭고 경건하다’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의롭다’라는 말은 ‘디카이오스(divkaio")’라는 말인데 이 단어는 율법을 잘 준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눅 1:6). 눅가복음 23:50절에 보면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라고 했는데 이 아리마대 요셉에 대해서도 시므온에게 쓴 ‘의롭다’(divkaio")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하다’는 말은 ‘에우라베스(eujlabhv")’라는 말인데 이 단어도 율법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사도행전 22:12절에 보면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라고 했는데 여기 아나니아가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도 동일한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 역시 율법을 준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시므온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합니다(25). 여기서 ‘이스라엘의 위로’라고 했을 때 ‘위로’라는 말이 ‘빠라끌레시스(paravklhsi")’인데 누가복음 6:24절과 사도행전 4:36절과 9:31절에서는 ‘위로’라는 뜻으로, 사도행전 13:15절과 15:31절에서는 ‘격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위로한다 혹은 이스라엘을 격려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일차적으로 주권을 잃고 로마에 의해 고난당하는 이스라엘의 독립 또는 회복을 가리키는 용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장차 메시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질 위로와 격려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사야 40:1-2절을 보면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바벨론 포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 상태에서 회복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메시아를 통해서 이루어질 참다운 위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이스라엘을 위로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성령이 그 위에 머물러 있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6-27절에 보면 시므온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때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 찬송이 무엇입니까? 28-32절을 보면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찬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에 사용된 헬라어 단어 ‘ajpoluvei"’(아폴루이스)인데 이 단어는 죽음, 노예 해방 등을 묘사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제 자신을 평안히 죽을 수 있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시므온이 평안이 죽을 수 있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30절을 보면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25절의 이스라엘의 위로와 38절의 이스라엘의 속량과 유사한 의미를 가집니다. 26절에 보면 시므온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지시대로 이제 메시아를 본 것입니다. 시므온은 메시아 되신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고 하며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위로자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다리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소망이 이루어지자 이제 평안히 눈을 감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곧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교회로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믿음으로 사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교회로 모인 우리가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도 시므온과 같이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라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최고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최고가 아닌 사람은 아직도 시므온의 찬송의 의미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 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보았는데 무슨 소원이 더 있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구원자 예수님을 만난 후 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빌립보서 3:7-9절을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이제까지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여기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다. 바울이 이처럼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 이유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온갖 세상 욕망을 붙들고 살면서 그것이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달려온 인생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영광이라고 여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2절에 보면 시므온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고 합니다. 여기서 ‘비추다’는 말이 ‘아뽀깔맆시스’(ajpokavluyi")라는 말인데 이 단어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누가의 용례만으로는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32절에서 이방인과 이스라엘이 대조되었으므로 ‘아뽀깔맆시스’는 ‘영광’의 반대어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죄악의 드러남’, ‘수치의 드러남’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면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35절에 보면 시므온이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사용된 동사 ‘드러남’이라는 동사가 ‘아뽀깔맆또’(ajpokaluvptw)입니다. 그러므로 ‘드러남’을 죄악 곧 드러남의 내용과 수치 곧 드러남의 결과와 연관시켰습니다. 그러므로 32절을 “이방인들의 수치를 드러나게 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빛”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31절이 ‘구원’을 복수형 ‘라온(law'n 백성들) 곧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에 적용한 것은 32절의 이방인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구원이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6:13절을 보면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이방인에게 주어지는 계시의 빛을 말합니다. 이사야 42:6-7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49:6절에 보면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오늘 본문은 이러한 구약 본문을 배경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구원을 기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32절을 “이방인들에게 계시하고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영광스럽게 할 빛”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3-35절을 보면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의 찬송을 듣고 요셉과 마리아는 기이히 여겼습니다. 곧 의아해 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미 천사들의 소식을 들은 자들이지만 지금 시므온의 찬송을 듣고서 의아해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보통 아기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으로 자라나신 것입니다. 젖을 먹고 배설을 하고 잠을 자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아이와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첫 아이를 놓고서 양육하느라 분주하고 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천사의 말도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하여튼 요셉과 마리아는 시므온의 찬송을 듣고 의아해 하는데 그때 시므온이 메시아의 역할을 또 예언합니다.

 

34-35절을 다시 보면 시므온이 그 부모를 축복하고서 마리아에게 예언합니다.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려내려 함이니라”(34-35). 여기서 ‘패하고 흥함’은 이사야 8:14절 말씀과 관련하여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8:14-15절을 보면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메시아가 심판의 주가 되심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심판하실 것을 기대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왜 축복의 내용입니까? 자식을 축복하려면 이 아이가 입신양명하여 부모의 이름을 높여 달라고 해야 축복으로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마리아의 마음을 칼로 찌르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봅니다. 이때 마리아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우리 말에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했지만 자기 몸에서 10달을 지내고 자신의 젖을 먹고 자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할 때 마리아의 그 심정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그 죽으심으로 인하여 마리아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됩니까?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고 흥하게 한다고 하십니다. 메시아가 오면 사람들을 흥하게 해야지 패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패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무너뜨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사명이 이러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10절을 보면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기존의 모든 생각, 우리 조상으로부터 받은 모든 교육,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기준들이 다 무너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야 새롭게 건설하고 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정말 이 시므온의 예언대로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시기에 비방의 표적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드러내신 인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그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악하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15:19절을 보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고 바리새인들이 비방 할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장로들의 유전을 따라서 손을 씻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비방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비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예수님을 만나면 시므온의 찬송이 나옵니다. “주여! 이제야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이 고백은 죽기 직전의 고백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주를 만난 자가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런 고백이 참된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6-39절을 보면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고 했습니다. 아셀 지파에 안나라는 여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운명도 기구합니다. 결혼한지 7년 만에 남편이 죽고 과부로 84년을 지냈습니다. 과부생활 84년에 결혼생활 7년을 더하면 91세가 됩니다. 안나가 결혼을 몇 세에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십대 후반에 했다고 해도 그녀는 100세가 넘었습니다.

 

그러면 그 긴 과부의 세월 동안 안나를 어떻게 살았습니까? 주야로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이런 안나가 마침 아기 예수님을 보고서 시므온처럼 하나님께 감사를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증거 한 것입니다. 참으로 안나는 믿음의 여인이요, 기도의 여인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시므온이 만난 예수님을 우리도 만나게 하여 주시고 시므온의 고백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안나에게 임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우리를 평안히 놓아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안나와 같이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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