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호 목사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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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누가복음 공부

소년 예수님의 성전 방문

말씀:누가복음 2:40-52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데리고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왔을 때 시므온이 예수님을 품에 앉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시고,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정결예식을 행하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이 성령의 지시를 받아 성전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눅 2:29-32).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살이 되던 때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4복음서 중에서 유일하게 누가복음에서만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유일하게 예수님의 소년 시절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 등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사건과 애굽으로 피난 간 사건, 그리고 나사렛에서 자라나셨다는 사실만 기술하고 곧바로 공생애 사역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오늘 본문에서 유일하게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때에 있었던 일 곧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한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40절을 보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주 짧은 말씀이지만 예수님께서 열두 살 전까지의 삶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기 예수님께서 자라고 강하고 지혜가 충족하여져 갔다는 말은 보통 사람의 성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52절에도 보면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셨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께서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 가셨다고 하는 것은 그가 온전한 사람으로 오신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지혜와 그 키도 자라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구유에 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곧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은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본문 40절과 52절에서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 하였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41-51절 말씀을 보면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해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생한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초막절과 칠칠절(오순절)과 함께 유대 삼대 절기 중에 하나로 이스라엘 최대의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나온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대대로 지킬 것을 명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2:41-42절을 보면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2:43-51절에 보면 유월절 규례를 자세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바로 이 유월절 규례를 따라서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신 해에는 예수님과 동행하여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온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열세 살이 되면 ‘율법의 아들’이라고 하여서 율법의 의무를 부과한다고 합니다. 물론 어려서는 가정이나 회당에서 율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열세 살이 되면 유대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율법의 의무를 공식적으로 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부모님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유월절을 지킨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한 두 해 앞당겨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합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20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라고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친척들과 함께 소년 예수를 데리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는 유월절 절기를 다 마치고 친척들과 함께 다시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지 아니하시고 예루살렘 성전에 머무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당연히 예수가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룻길을 간 후에 보니 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아보았지만 예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를 찾으며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46절에 보면 그렇게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났는데 예수는 ‘선생들 중에’ 앉아서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생들’이라는 말은 ‘디다스칼로스’(didavskalo")라는 말인데 율법 교사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선생들 중에’(ejn mevsw/ tw'n didaskavlwn)라고 할 때 ‘--중에’가 원문으로 보면 ‘엔 메소’(ejn mevsw)라는 말인데 이 말은 누가복음 24:36절이나 사도행전 1:15; 17:22; 27:21절에 보면 예수님이나 베드로나 사도 바울이 연설하려고 사람들 가운데 위치한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선생들 중에 앉아 있었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그들에게 둘러싸여 토론하고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면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47절에 보면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고 했습니다. 열두 살 먹은 소년 예수님과 토론을 하던 율법 교사들이 예수님의 그 지혜와 대답으로 인해서 놀랐던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와 대답’은 중언법으로 ‘지혜로운 대답’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혜’로 번역된 헬라어가 ‘쉬네시스’(suvnesi")인데 이 단어는 종종 ‘소피아’(sofiva, 지혜)와 동의어로 사용되며 영감 있는 통찰력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는 것은 예수님의 그 지혜와 영적 통찰력이 어떠하였는가를 잘 말해 줍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관한 모든 지혜를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과 토론하면서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비밀을 설명하며, 그것을 분명하게 증거 하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48절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에게 둘러싸여 그들과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에 마리아는 예수님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49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내가 내 아버지 집에’(ejn toi'" tou' patrov" mou)라는 말은 의역입니다. 헬라어 원문에 보면 ‘집’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아버지 집에’라는 말을 원문으로 그대로 직역하면 ‘나의 아버지의 것(사람)들 속에’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또이스’(toi'")라는 정관사는 율법 교사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아버지 집에’라는 말은 ‘내 아버지의 사람들인 율법학자들 속에’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50절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하신 이와 같은 대답 곧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51절에 보면 마리아는 “그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흐레마따’(rJhvmata)입니다. 그런데 이 ‘흐레마따’는 ‘말씀’으로 번역될 수도 있고, ‘것들’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곧 개혁개정에서는 ‘말씀’로 번역했지만 NIV 성경에서는 ‘일들’(things)로 번역하였습니다. 50절에서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을 때 ‘말씀’은 단수형 ‘흐레마’(rJh'ma)입니다. 그러므로 문맥상 ‘말’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51절의 ‘흐레미따’는 복수형이므로 50절의 ‘말’을 가리키지 않고 ‘말과 사건들’ 전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51절의 ‘흐레미따’는 ‘일들’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은 상당히 독특한 표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걱정하며 찾았다고 하자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49). 참으로 이것은 놀라운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49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곧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 전에 먼저 이 말씀을 하시는 의도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40절과 52절 말씀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0절에 보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2절에도 보면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49절 말씀 곧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는 이 말씀을 40절과 52절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에게 있는 지혜가 온 세상을 죄에서 구원할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에 드러내어 알게 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계시면서 율법 교사들과 듣기도 하며 대답하며 토론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관한 지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와 같은 지혜는 습득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 안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았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이 지혜는 예수님 자신을 계시적으로 알려주시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계시하는 사건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곧 49절의 말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어떤 자인가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어떤 존재이신가? 성전과 예수님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자기 자신과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서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신 이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반드시 아버지의 집에 있을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일에 관계하여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49절 관주 1번에 보면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는 말을 “혹 내 아버지의 일에 관계하여야”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누가복음 2:11절에서 본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것은 구주로 오셨습니다. 곧 그리스도 주로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2:11절을 보면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 대한 계시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실 일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살 되던 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와 유월절 절기를 지키신 것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의 주인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계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성전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내타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서는 속죄의 제사가 행하여 졌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은 아버지의 일과 관계하여서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전에서 계시하고 있는 그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든 절기의식의 제사가 행해지고 있는 그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집에 계셔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의 주인으로 거기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아서 듣기도 하며 묻기도 하는 것을 통하여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 모든 말씀이 바로 자기 자신을 향하여 하고 있는 말씀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속죄의 일은 성전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질 일임을 가르치심으로써 자신이 세상에 왜 왔는지를 밝히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자들로서는 예수님의 그 지혜로운 대답들이 다 기이히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모친 마리아에게 한 말 곧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고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존재론적으로 예수님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하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간파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양친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의 천사를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될 때부터 이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셔서 아버지의 일에 관계하여야 할 것도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수님의 존재에 관한 지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예수님이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길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일과 관련하여 당연히 있어야 할 성전에 계시면서 자신이 누구인지와 그러한 자신이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구속역사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와 같은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셨습니다(51). 이는 훗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실 때 예수님에게서 일어나는 그 모든 일이 어떤 것으로 인함인지를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지혜로 작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해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그 부모와 다시 갈릴리 나사렛으로 내려가지 않고 성전에 남아 계신 것은 바로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성전의 주인이 되시며, 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는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일 곧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으신 구주가 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알고 주님께서 행하시는 구속역사를 바르게 알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주님께서 이루시는 그 구속역사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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