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리인의 집에서 퍼온글입니다. 스킬더의 언약에 대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스킬더가 말한 언약의 조건성에 대한 이해
스킬더가 말한 언약의 조건성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이번에 해밀턴 신학교의 두 교수님이 작성하신
http://www.pupilsofchrist.com/doctrinal/answers-to-urc-questions 에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스킬더는 언약 안에서 조건들을 말한다. 하지만 그는 역시 어느 누구도 이것을 오해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말하기를: 만약 조건이라는 단어로 당신이 "우리가 하나님께 의무를 부과하는 어떤 것" 이나, "하나님께서 진행해 나가시기 위해 기다리셔야만 하는 것", 또는 "우리가 어떠한 것을 공로로 얻기 위해 해야만 하는 어떠한 것"을 의미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무조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무조건적이라는 것이 패스워드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말하기를: 만약에 당신이 조건 이라는 단어로 "어떤 것 없이는 다른 것이 올 수 없다는 것과 또한 우리가 다른 것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고서는 어떤 것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다른 무엇인가에 연결해 놓으신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조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조건적이라는 것이 패스워드다"
여기에 대한 해설을 하겠습니다. 제 해석의 내용은 이 글의 작성자이신 반플릿 교수님께서 정확한 이해라고 저에게 이메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메일 내용보다 길게 풀어 설명하겠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스킬더가 언약을 조건적이다 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가 의미한 바가 무엇이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조건이란 뜻은, 그것이 없이는 다른 무엇이 이루어지지 않는 어떠한 것입니다. 만약 언약의 조건을 이러한 뜻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순종에 달려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킬더가 말하는) 언약의 조건인 순종을 행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묶어서, 즉 법적인 의무를 하나님께 부과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셔야만 하는 것이 되고, 또 이러한 이해는 반드시 우리의 순종을 공로로 만듭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순종할 때 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언약 관계에 있어서 아무것도 행하지 아니하시고 기다리시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스킬더는 이러한 용법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즉 만약 누군가가 조건을 그런 의미로 사용한다면 나는 그 사람이 말하는 "언약은 조건적"이란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그런 의미로 "조건"이란 단어를 사용한다면 "언약은 무조건적이다" 라고 말해야지 안 그러면 (password 가 틀렸으므로) 통과할 수 없다 라고 스킬더는 힘써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스킬더가 "언약은 조건적이다"라는 말로 뜻한 참된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가 위에서 "어떤 것", "다른 것"이라고 번역한 원문의 one, the other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것"= 믿음 이고 "다른 것"= 순종 입니다. 즉 위의 문장을 다시 적으면 "믿음이 없이는 순종이 올 수 없다는 것과 우리가 우리의 순종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고서는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에 순종을 연결해 놓은신 것이란 의미로 나는 순종이 언약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스킬더의 해석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신앙고백서에서 늘 보아오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4, 87문답은 우리에게 다음을 말해줍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진 사람이 감사의 열매들을 맺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감사하지 않고 회개치 않는 삶으로 부터 하나님께도 돌이키지 않는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 즉 스킬더는 순종과 선행은 참된 믿음의 필연적인 열매인 것을 강조하며, 순종이 없다면 그사람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벨직 24장이 말하듯 성령께서 우리안에 주신 참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새 삶을 살게 하고, 죄의 속박에서 자유케 하며, 자기사랑이나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데 전념하게 합니다.
스킬더는 하이델베르크 86문을 따라 우리가 받은 믿음에 대해 확신할 수 있도록 우리의 위로를 위해 하나님께서 선행을 믿음에 연결시켜 놓으셨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86문답은 우리가 선행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새롭게 하시기 때문인데 (우리의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의 혜택인데) 그 두번째 목적 중 하나가 우리가 그 열매들인 선행을 보고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임을 가르칩니다. 이 성도에게 크나큰 위로와 구원의 확신을 주는 교리를 스킬더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믿음의 열매인 선행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믿음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다는 교리는 하이델베르크 86문에도 나오고 돌트신조 첫번째 교리 12항, 13항에 나오는 매우 아름다운 개혁신앙의 유산입니다. 이러한 선택과 구원에 대한 확신은 우리로 하여금 결코 나태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겸손케 하고, 하나님이 긍휼을 찬송하며, 자신을 정결케 하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을 열열히 사랑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동시에 스킬더는 하이델베르크 24주를 따라서,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공로도 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돌트 신조 셋째, 넷째교리(10~15항)를 따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안에서 행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빌2:13). 혹자는 스킬더를 따라 언약의 조건을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진실되이 약속해 주신 것을 우리가 믿음과 순종으로 받아야지만 구원을 누릴 수 있다 라는 식으로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을 할 때는 매우 유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약속된 구원을 누리는 것은 우리의 반응에 달려있다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알미니안의 용어입니다. 그렇기에 스킬더는 개혁주의 선조들을 따라서 우리가 언약의 조건을 이행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반응할 때 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그 조건을 이행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을 스킬더의 짧은 말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손재호2012.07.27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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