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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지서에 나타난 언약의 중심 사상-예레미야 언약

 

이천우(부천개혁교회)

 

여기에서는 앞서의 대선지서 중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에 이이서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을 다룬다.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

 

대선지서에는 선지자 언약으로 이사야 언약과 함께 예레미야 언약이 말씀되고 있다.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 애가서)가 그것이다. 이 예레미야서에 나타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담은 위로의 말씀을 주시는 곳으로서 ‘위로의 책’으로 불려지는 30장-33장 중에서 31장 31-34절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활동한 곳은 남왕국 유다이며, 예레미야 언약이 주어지는 배경은 당시 남왕국 유다가 처한 상황과 관련이 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한 시기는 요시야 왕(B.C. 640-609)1) 제13년 때부터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재위(B.C. 597-586)2) 중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까지인 B.C. 627-586년이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왕으로 세워져 바벨론을 위해서 남왕국 유다를 통치하게 되었으나 그의 왕 위가 불안했던 관계로 자신의 왕위를 지킬 수 있기 위해 반바벨론파와 손을 잡고 친애굽 정책을 썼는데, 여기에는 당시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베니게의 여러 국가들에서 반바벨론 동맹이 이루어졌고(렘 27:1-3; 겔 21:8, 18-23) 유다도 이 동맹에 가담하여 달라는 외국 사신들의 충동도 있었기 때문이다(렘 27:3).3) 더욱이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신하고 반바벨론 친애굽 정책을 쓰게 된 것의 결정적인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은 반드시 예루살렘을 지키실 것이요 바벨론에 잡혀간 동포들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며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는 두 해가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꺾어 없애 버리실 것이라며(렘 28:1-12) ‘평안하다’, ‘평안하다’를 외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전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외침으로써(참조. 렘 7:4), 여기에 시드기야는 용기를 얻어 애굽의 지원 속에 반바벨론파를 따라 느부갓네살을 배반하였다(왕하 24:20). 이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 왕 9년인 B.C. 588년에 유다를 공격해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2년 후인 B.C. 586년에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하였으며, 도망하는 시드기야를 사로잡아 그의 눈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그의 두 눈을 뽑아버린 후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와서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다(레 52:9-11; 왕하 25:6-7).4) 

 
예레미야는 이처럼 요시야 왕 제13년 때부터 남왕국 유다가 시드기야 왕 때 멸망할 당시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을 시작할 당시의 남왕국 유다 왕인 요시야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 가운데서 악한 왕으로 이름이 남는 선왕과는 달리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좇은 선한 왕으로서 남왕국 유다에 백성의 마음이 여호와를 향하여 그분의 이름을 부름에 있게 하는 여러 조치를 취하였다. 이를 교회사에서는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으로 평가하고 있다.

 

요시야 왕이 재위 기간 동안에 행한 업적을 보면, 그가 왕 위에 오른 지 제12년이 되는 나이 20세 때에는 약 6년간에 걸쳐 행해지는 예루살렘과 유다와 북방 여러 성에 이르기까지 우상을 훼파하고 성전을 정결케 하였으며(대하 34:1-8), 성전 수리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대하는 그는 옷을 찢으며 열조 때부터 있어온 죄를 회개했고(대하 34:19, 27), 온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바로 세워나가는 것에서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서약하였다(대하 34:29-39). 그런 그는 남왕국 유다에서는 솔로몬 때부터 있어온 모든 우상과 그 산당들과 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여로보암 1세 때 세웠던 모든 우상의 제단들을 훼파하였다. 그럼으로써 뿐만 아니라 그는 모든 우상을 멸하는 숙청작업에 있어서 남왕국 유다만 아니라 북왕국 이스라엘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우상을 멸하였다.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을 통해서 온 이스라엘이 모세의 율법을 따라 유월절을 지킴에 있도록 하였다(대하 35:1-19; 왕하 23:21-23).5)

 

그의 이러한 개혁 조치는 히스기야 왕이 해온 여호와의 종교개혁을 떠오르게 한다. 히스기야는 왕으로 등극하자 그의 부왕인 아하스가 폐쇄하여 버렸던(대하 28:24) 성전의 문을 다시 열고(대하 29:3), 성전을 정결케 하는데 힘쓴 것이다. 그런 그는 유다 땅 곳곳에 있는 산당들을 훼파할 뿐만 아니라 모세 때부터 있어온 놋뱀(민 21:8-9)을 ‘느후스단’(놋쇠 조각)이라고 말하며 한갓 주물에 불과한 것을 우상화하여 왔음을 분명히 하며 부숴 없앴다. 그리고 모세의 법을 따라 번제와 화목제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유다가 하나님 앞에 돌아온 것을 분명히 했다. 또한 그는 유월절을 다시 지킬 것을 명했으며(대하 30:1-27) 북왕국 이스라엘도 참여하여 함께 지킬 것을 청함으로써(대하 30:1) 남왕국 유다와 함께 북왕국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에 힘썼다. 이에 북왕국 이스라엘도 호응하였으며(대하 30:18), 이때에 온 이스라엘은 크게 기뻐하였는데, 솔로몬 이후 그러한 일이 없었다고 했다(대하 30:20).

 

히스기야 왕에게서, 그리고 요시야 왕에게서 행해져 온 이러한 개혁에 의해서 남왕국 유다를 비롯하여 북왕국 이스라엘, 곧 온 이스라엘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남왕국 유다의 웃시야 왕이 죽던 해부터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때에 선지자 사역을 수행한 이사야와 동시대 선지자인 미가의 예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닫게 하며 그들의 죄로부터 돌아서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요시야 왕 때부터 시드기야 왕 때까지 활동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에서도 동일하게 보는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왕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 모두는 악한 왕으로 그 치적이 평가되어 오는 것에서 있든 선한 왕으로 그 치적이 평가되어 오는 것에서 있든 ‘사람’이라는 본성이 바뀌지는 않는다. 즉, 선한 왕이 행한 종교개혁으로 말해지는 치적에서 보는 것이 악한 왕이 행한 치적에서 보는 여호와이신 하나님 앞에 악하였다는 본성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으로 이스라엘에게서 언제든지 발휘되는 것은 “내 백성이 나를 멀리하고 떠나 있다”는 것이었다.

 

선지자 언약은 그러한 이스라엘에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는 것은 왕이 행한 종교개혁을 따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는 것에 있다는 것을 언약하여 맺어주시는 것에 있다. 예레미야 31장 31-34절이 그것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신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며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인데, 이스라엘을 온전히 회복시켜서 그 일을 이룰 것으로 그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 모두, 곧 이스라엘 전체와 함께 새언약을 체결하시는 것에서 하시겠다며, 새언약은 돌판에 새기는 것에 의해서가 아닌 그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주어질 것인데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어서 하나님의 백성 그들 모두의 가슴 속, 곧 마음에 새기는 것에 의해서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새언약을 하나님과 백성이 함께 사는 새로운 법으로 받음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 때가 올 것이며, 하나님은 그 새언약을 받은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렇게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에 있는 ‘새언약’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 주는 것에서 예레미야 언약이 다루어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는 새언약을 말씀하신 그 하나님의 언약을 약속하신대로 신실히 지키시는 주님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것에서 장차 그 일을 이루실 메시야 언약을 담고 있다. 그 언약을 다루고 있는 31장 31-34절의 내용과 이것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31: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을 내용으로 하는 새언약을 선언하고 있는 것으로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첫 번째 단락 : 이스라엘과 유다 전체를 대상으로 새 언약을 맺겠다고 선언하신다(31-32절) (2) 두 번째 단락 : 새 언약은 이전의 언약과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주어져 시행될 것임을 선언하신다(33-34절).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성경은“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시작하고 있으나, 히브리어 성경 원문은“보라!”라는 뜻의 감탄사로 시작한다. 본문은 이렇게 함으로써 이제부터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 곧 이스라엘 전체가 두 눈의 시선을 두고 바라보고 그들이 가져야 할 관심에 집중하게 한다. 그것은“날이 이르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겠다며,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시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날이 이른다”는 문구는 구약성경에서 종말론적인 관용어로 자주 사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예레미야서에서만도 약 14회 등장하는데,6) 예레미야서에서만 아니라 선지서에서 불확실한 미래, 좀 더 가깝거나 혹은 먼 미래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즉 이 표현은 미래의 어떤 시점으로서 당시에서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좀 더 먼 미래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 때가 언제인지 선지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들은 보통 이 어구를 메시야 시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수납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7) 따라서 예레미야는 가까운 미래로서의 이스라엘이 포로 귀환을 내다보면서 동시에 새언약에 따라 세워질 메시야의 때 -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까지 이어지는 전 구속 기간 - 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어구는 하나님의 심판 때8)나 구원의 때9)를 언급하는 것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때의‘날’은 히브리어 단어‘욤’의 복수형인‘야밈’으로‘날들’인데 31-34절에서만도 3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이 날이 본문에서 복수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가까이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있는 것에서 해방되는 날이 이르는 것에서 바라보고 있게 되는 것이나, 이 날은 또한 메시야이신 주께서 오시는 날이 두 시대를 병행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서 주께서 오시는 날은 종말의 날이다. 그러나 주께서 오시는 날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구원이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시작되는 것이며 이는 그 구속 사역을 끝내기 위해서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로 이중적인 시기에 의해서 종결된다.10) 따라서 시대적 원근법이 사용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의 해방과 주의 초림과 재림에 의한 구속 기간에서‘주께서 오시는 날’은 복수형을 띠는 것이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에 의해서‘보라 날이 이르리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는 날을 바라보면서 종말론적인‘날’이 예언되고 있는 것에서 이다. 그 날은 이스라엘에 국한하지 않고 온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해방되는 날이 될 것이다. 그것은 죄로부터 구원 받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에로 이거하는 날에 있게 되는 것으로‘제3의 출애굽’으로 불릴 것이다.

이렇게 “보라, 날이 이를 것이다”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이 날이 이를 것을 말씀하셨기에 말씀하신 그대로 실현될 것이니, 그 날이 이르면 주께서는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 곧 온 이스라엘에 새언약을 맺을 것이다.

 

이때 온 이스라엘과 맺을 언약이 새 언약으로 말해지는 것은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신부된 자로 삼는 것에서 율법을 주시고 그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에 있게 하셨어도 - 희생제사에 의해 속죄하시는 것을 통해 그들의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시고 율법의 계명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의를 좇아 살게 하심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신부로 있게 하심 -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을 깨뜨리는 자로 있어 그 언약에 의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곁에 있고자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주신 언약의 말씀인 율법을 통해서 사람의 이러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여실히 잘 드러내어 오셨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의 언약에서 행하여 오셨던 것인, 그러나 이스라엘이 따르지 않았던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에 있게 하실 것을 두 돌판에 하나님의 계명을 기록하여 주신 것보다 더 나은 것으로 해 나가고자 하신다. 그것은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돌로 만든 비석에 의해서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비석으로 삼아서 이스라엘이 따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주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할 수 없는 행위를 요구하는 계명의 준칙이 아니라 각 사람과 맺는 언약으로서 각 사람의 마음에 새겨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법을 그렇게 마음에 새겨 놓음으로써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법에 하나 되어 있게 하신다. 그래서 자신들의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을 항상 마음에 품고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신 6:5a)11)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6:5b)에 있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히 여기고 따름에 있는 백성, 즉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관계성이 비로소 성립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누구도 자기의 이웃과 형제에게 “너는 여호와를 알라” 라고 훈계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 또한 훈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때에는 가장 천한 사람에서 가장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 때가 올 것을 말씀하시며, 그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악행에 있었던 모든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을 언약하시며,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 그 언약의 확실함을 분명히 하셨다.

 

이상에서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언약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전의 언약/옛언약으로 있어온 율법의 언약에서 어떻게 더 나은 발전성을 띠고 있는가 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 곧 온 이스라엘과 맺는 새언약을 말씀하신 것에 있는 새언약은 이전의 언약을 폐기하고, 이전의 언약을 갱신하고, 그래서 이전의 언약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주실 것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전의 언약에는 담겨 있지 않은, 그래서 이전의 언약에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내용을 담고서 이전의 언약보다 더 나은 새언약을 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의 언약을 주시는 것에서 사용한 두 돌판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였던 것에서 이제는 직접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여 주심으로써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않고 공경함에 있으면서 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전에 두 돌판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여 주신 율법의 언약에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의 부패함이 만물보다 심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부패한 마음을 하나님의 법이 새겨져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의가 행사될 수 있는 정결한 마음에 있게 하시는 것이다. 부패한 마음에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의가 새겨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셔서 자신의 의를 새겨 놓으심으로 사람의 손으로서는 아무도 그 의를 지울 수 없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 새로운 일을 해 나가실 것을 온 이스라엘에 언약하여 맺으셨다. 그에 따라서 각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지며, 그 하나님의 법을 마음의 법으로 받은 사람은 주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게 된다. 이는 누구의 훈계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해 나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을 주로 받들어 섬김에 있도록 각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의 법이 새김에 있는 정결에 있게 해 나가실 새 언약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온 이스라에게 주셨다. 이에 따라서 무릇 마음에 주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자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라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 관계가 실현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 것이다.
 
....................................

1) 요시야는 8세 때 아몬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후 31년간 재위하면서 남왕국 유다를 통치하였다. 그런 그는 남왕국 유다의 최후의 개혁 왕으로 평가된다.

 

2) 남왕국 유다왕 시드기야의 본래 이름은 맛다니야 이다. 그는 여호야긴 왕의 숙부인데,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받아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간 후, 느부갓네살이 맛다니야를 여호야긴을 대신하는 왕으로 세우고는 그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꿨다(왕하 24:17). 이런 시드기야는 비록 남왕국 유다의 왕이 되기는 하였으나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배후로 있으면서 그를 통해 남왕국 유다를 통치하는 관계에서 엄격한 의미에서는 왕이라기보다는 섭정자(攝政者)의 자리에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바벨론의 문헌에서 바벨론왕이 시드기야가 아닌 바벨론에 포로로 와 있는 여호야긴을 계속해서 유다왕으로 처우했고, 선지자들의 기록에도 그의 포로 중의 연대를 그대로 사용하였는가 하면, 유다 백성들도 시드기야를 자기들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데서 잘 알 수 있다(왕하 25:27; 렘 52:31, 겔 1:2; 8:1 등). 김희보, 『구약 이스라엘사』(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89), 399.

 

3) 위의 책, 400.

 

4) 위의 책, 400-401.

 

5) 위의 책, 387-389.

 

6) 장백준, “예레미야 새언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고찰 : 렘 31:31-34 본문 분석을 중심으로”, 미간행신학석사학위논문, 2005,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7) 위의 책, 24-25. 인용. E. W. Hengstenberg, Christology of the Old Testament(Grand Rapids: Kregel Publications, 1981), 107-108.

 

8) 예레미야 7:32; 9:25; 19:6.

 

9) 예레미야 23:5, 7; 30:3; 31:27, 31, 38; 33:14.

 

10) 주께서 오시는 날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주의 초림과 재림으로 이를 것으로 이중적인 시기를 띤다.

 

11) 신명기 6:5에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는 예수님에 의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마 22:37),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막 12:30, 눅 12:27), 또는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막 12:33)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욱 강조되어 말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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