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호 목사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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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주권 (領域主權, Sphere Sovereignty)이론의 적용에 관하여


                                                                                                                     최영식 목사 (경산열방교회)


1. 서론


작금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로부터 강한 비판과 외면을 받고 있다. 언론들이 기독교의 비리들을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고, 인터넷 공간에는 안티 기독교 세력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들의 비판과 비난이 일견 도를 지나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비판과 비난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한국교회의 외적 성장이 멈추고 감소 추세로 돌아서 버렸다. 이런 현상을 한국교회의 위기로 보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각 교단 차원이나 기독교 연합체에서 나름대로 대응책을 내놓고 활동을 하고 있으나 대세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아 보인다.  


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온 세속화 물결의 영향에 의한 교회와 복음의 본질에 대한 왜곡이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어느 시대나, 교회는 세상나라의 도전을 받아 어려움을 겪어 왔고, 또 때론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을 통하여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19세기에도 자유주의라는 츠나미가 교회에 몰아 닥쳐 많은 이들이 그들의 선조로부터 상속받은 정통 신앙에서 크게 퇴조하였다. 그러나, 그 때에도 살아있는 교회와 성도들은 그 거대한 물결에 저항하여 나름대로 시대의 소명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북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에서도 밀려오는 세속화의 물줄기를 바꾸고 생명의 신앙으로 나라와 교회를 살린 사람이 있었는데 아브라함 카이퍼 박사이다. 본 신앙강좌를 통하여 그의 삶과 그의 대표적인 사상인 영역주권에 대하여 상고해 보고, 오늘 우리가 처한 교회와 사회 환경에서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를 찾는데 도움을 얻고자 한다.  


2. 영역주권과 관계된 여러 개념들

   

(1) 권능의 왕국과 은혜의 왕국


성경에서 왕국 또는 나라라고 번역된 헬라어 바실레이아 basilei,a 와 여기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말쿠트 tWkl.m는 (1)왕이 다스리는 통치권 또는 주권, (2)그 통치권이 미치는 영토, 그리고 (3)그 통치를 받는 백성을 의미할 수 있다. 이 용어가 세가지 의미로 다 사용될 수 있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의미는 추상적이고 역동적인 통치권 또는 주권의 의미로 사용된다. [1]


전통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왕국을 권능의 왕국(regnum potentiae)과 은총의 왕국(regnum gratiae)으로 나누어 구별하였다[2]. 권능의 왕국은 하나님이 그 만드신 만물을 창조주의 권세로써 다스리시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사탄과 악한 영들과 불신자들도 포함된다.이런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고 있는 다음 성경구절들을 살펴보라:


시93:1~2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시 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하나님의 권능의 통치가 온 땅에 미치나, 죄로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복종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 얼마를 특별히 선택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셔서 은혜로 통치하시기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시고 불러내어 구원하신 성도들만을 그의 은혜로 다스리는 것을 은총의 왕국이라 한다(그림1). 에베소서 1장 4~5절이 이런 사실을 말해준다:

   

엡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2)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나라’가 ‘통치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때 그것은 곧 하나님의 통치하심으로 이해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사탄과 악한 영들과 불신자들을 포함한 온 세상을 지금도 창조주로서 통치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런 권능의 왕국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신약성경은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라고는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구원하신 성도들을 은혜로 다스리는 은총의 왕국만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를 받는 나라만을 하나님의 나라로 말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를 받지 않는 나라를 세상, 또는 세상나라라고 표현한다(그림2).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에서 세상과 제자들을 분리하고 있는 것을 읽어 보라:

 

요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요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뿐만 아니라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하는 세상나라가 그의 통치를 기꺼이 수용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목표임을 말씀하고 있다.


계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3) 일반은총과 특별은총


구원은 인간의 전적 부패를 전제로 한다.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것은 스스로의 힘과 자원으로 구원에 이를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제한된 내재의 자원으로는 죄와 비참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오직 인간 바깥에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어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은혜(saving grace)를 특별은총(special grace)라 한다.

   

그런데 이러한 특별은총을 얻지 못한 불신자들도 이 땅에서 여전히 수 많은 축복을 받으며 그들의 삶을 향유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에게도 차별 없이 베푸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시는 것(마5:45)이나 그가 모든 민족에게 차별 없이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마음에 만족하게 하시는 것(행14:16-17)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이 신자와 불신자에게 동일하게 베푸시는 은혜를 일반은총[3](common grace)이라 한다(그림 3). 말하자면, 권능의 왕국과 세상나라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만을, 은총의 왕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일반은총과 아울러 특별은총을 받는 것이다.

 

이 일반은총은 인간 개인 속에 잔존하는 양심과 윤리심을 자극하여 인간의 죄성(罪性)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작용을 하며, 정부가 가진 칼을 통하여 사회에 질서와 세속적인 정의를 보존하는 작용을 하게 한다.[4]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부패하였으나, 일관된 부패의 작동을 제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반은총 때문에 가능하다. 이와 같이 일반은총이 죄성의 발전을 억제하는 소극적인 기능이 있는 반면, 인간에게 부여된 지성을 사용하여 창조의 재능을 발휘하는 적극적인 면도 있다.[5] 예술과 학문의 발전은 일반은총의 긍정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반은총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일반은총으로는 영혼의 구원에는 이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3. 아브라함 카이퍼와 영역주권 사상


(1)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의 생애


카이퍼는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라이덴 (Leiden) 대학에서 문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25세의 나이에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6세에 목사가 되어 베이스트(Beesd)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고, 그런 다음에는 우트레흐트(Utrecht)로 청빙을 받아 갔고, 1870년에는 암스테르담으로 갔다.


어릴적에 아버지로부터 개혁신앙을 배웠으나 라이덴 대학에서 자유주의적 사상으로 신학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 방법으로 베이스트 조그만한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개혁신앙을 가진 시골교회의 신자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카이퍼는 그 상황에 겸손히 대처했고, 그 교회의 피에쳐 발투스(Pietje Baltus,1830-1914)라는 여인에 의해 다시 개혁신앙으로 완전히 거듭나는 체험을 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을 버리고 정통 개혁주의 신학으로 돌아온 카이퍼는 이후 칼빈주의를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새롭게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불 같은 열정으로 자유주의 노선에 선 네덜란드 교회를 개혁하여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세웠다.


카이퍼는 프랑스혁명이 인본주의 사상에서 이루어진 것을 공격하고, 그의 스승인 흐룬 반 프린스터(Groen Van Prinstere)의 후견으로 ARP(Anti-Revolution Party)[6]당에 입당하여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1872년 카이퍼는 ARP당의 공식 일간지인 ‘데 슈탄다르트’(De Standaard)의 편집 부장이 되었고 바로 이어서 매주 금요일에 발행되는 기독교 주간 신문 ‘데 후라우트’(De Heraut)의 편집장을 맡았다. 45년 넘도록 기독교 언론인으로서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는 평생을 저술가로 살면서 223권의 크고 작은 책을 저술하였다. 그 중에는 신학, 정치, 사회, 문화, 예술, 과학, 교육 등 손대지 않은 것이 없었다. 1874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1877년 까지 봉사했고 1905년 수상으로 재직하면서 칼빈주의적 정치를 실현하였다.


카이퍼는 인본주의적이고 무신론적 학문운동의 국립대학에 대항하여 성경적이고 신본주의(神本主義)적인 칼빈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뿌라야 대학(자유대학교)을 설립하고 조직신학 교수 및 총장에 취임하였다. 나라와 국가교회 당국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1880년 뿌라야 대학을 개교하면서 총장취임 연설로 영역주권사상을 제창하였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들의 삶 전체를 드려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1898년 그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가서 ‘칼빈주의(Calvinism)’에 대하여 특별강연을 함으로써 미국 교회 특히 미국 복음주의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강연에서 그는 삶의 체계로서의 칼빈주의를 주창하며 칼빈주의와 종교, 칼빈주의와 정치, 칼빈주의와 학문, 칼빈주의와 예술, 칼빈주의와 미래에 관하여 그의 세계관을 역설하였다.


1907년 그의 생일이 국가 기념일로 정해지고 그에 대해 이런 말이 있었다. “지난 40년 동안 네덜란드 교회와 국가와 사회와 언론과 학교와 학문의 역사는 매 순간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서 기록될 수 없다. 이 기간 카이퍼 박사의 전기(傳記)는 상당 부분 네덜란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7]


카이퍼의 반대자들도 그를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을 가진 반대자”로 존경했으며, 그와 동일한 비전과 이상을 품었던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이 우리 시대에 주신 선물”로 높이고 사랑하였다.


1897년 ‘데 슈탄다르트’ 편집장 재직 25주년 에 카이퍼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평생 열망하던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저의 마음과 영혼에 박차 같은 높은 동기가 하나 있습니다. 제게 지워진 거룩한 필연성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자마자 생명의 호흡은 내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온갖 반대가 있어도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규례가 가정과 학교와 국가에 다시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과 창조계가 증거하는 주님의 규례가 이 백성의 양심에 아로새겨져 백성들이 다시금 하나님께 충성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8] 또 그가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전에 보이시고 말씀하시고 인정하셨던 전통으로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땅과 열국과 세대와 가정과 개인을 살아있는 능력으로 다스리신다.”[9]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그로 하여금 초인적인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었음에 틀림없다.


(2) 영역주권 선포의 배경


전통적으로 네덜란드는 개혁주의 신앙이 뿌리 깊은 곳이었다. 대륙과 영국의 많은 신학자들이 카톨릭의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피신하여 몰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에 몰아 닥친 자유주의의 물결은 네덜란드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유주의 신학에 의해 정통 신앙이 붕괴되어 갔다. 자유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구체제인 봉건제, 절대주의, 종교적 권위에 의한 지배에 대항하여 나타나서 19세기에 꽃을 피운 사상으로, 개인의 자유와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을 중시하는 이념을 말한다. 이 사상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 감정, 경험, 도덕적인 능력, 역사적인 낙관론, 문화창조능력을 강조하는 반면, 전통적인 교회의 신학과 교리를 무시하였다. 이들은 진보주의, 인간중심주의를 따랐으며, 성경에 나오는 핵심교리인 원죄와 속죄의 교리를 믿지 않았고,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고 과학, 심리학 등으로 해명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인본주의(人本主義) 세계관이 사회의 전 영역을 장악하고 있을 때, 카이퍼는 이런 사조에 대항하여 칼빈주의 세계관을 가진 대학을 세우려는 꿈을 꾸었다. 왜냐하면 개인이 아무리 성경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국가와 사회의 모든 분야가 구조적으로 무신론적이고 인본주의 사상체계를 갖고 있다면, 개혁신앙을 가진 자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고 사는 것이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국가와 국가교회가 개인의 신앙이나 교육 등을 모두 장악해서 철저한 인본주의와 현대주의 사상을 지원하고, 또한 그것이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종교 등 생활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카이퍼는 정부로부터 자유롭고 교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대학, 하나님 중심의 사상이 학문의 전 분야에 튼튼한 기초가 되는 대학을 세우려 하였다. 수 많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카이퍼의 꿈은 이루어져 1880년 10월 20일에 뿌라야 대학을 개교했다. 그날 카이퍼는 총장 취임 연설에서 영역주권 사상을 선포하였다.


(3) 영역주권의 내용


영역주권은 각 영역마다 고유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주권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 사상은 아브라함 카이퍼가 처음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종교 개혁자 칼빈의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과 일반은총 개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인간 모든 만물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주권자이시며 통치자이시다. 카이퍼는 칼빈의 하나님 절대주권 사상과 신자와 불신자에게 공통으로 베푸시는 일반은총론을 넓게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하였다[10]. 카이퍼 이전의 일반은총 개념이 세상에 대한 소극적 참여라면 카이퍼의 일반은총은 세상을 향한 적극적 참여라고 할 수 있다[11]. 다시말하면 카이퍼는 일반은총의 개념을 더 구체화하고 세분화하고 학문적 체계를 세워 강조하였다.


영역주권이란 영어로는 Sphere Sovereignty라고 하는데 실제로 카이퍼가 사용한 말은 네덜란드어로 끄링(kring)이었다. 끄링이란 말은 싸이클 곧 원(圓)을 의미한다. 모든 원에 중심이 없다면 원이 될 수 없듯이 인간 삶의 모든 영역 중심에 하나님의 주권이 다스리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12].


삶의 각 영역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의 현존을 반영하며 또 창조 질서가 계속적으로 발전하는 부분을 형성하기 때문에, 각 영역의 합법성과 역할은 국가나 교회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직접적으로 주어진다. 그러므로 각 영역은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책임을 진다. 그리고 “영적”인 영역들과 “세속적”인 영역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화를 개발하는 인간의 노력은 영적인 동시에 자연적이다.


카이퍼는 즐겨 말하기를: “우리의 정신세계 어느 한 조각도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밀폐되어 봉쇄되지 않으며, 인간 존재의 전 영역에서,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 아니라고 외치시는 곳은 단 한 뼘도 없다.” 그것이 가정생활이든지, 경제 활동이든지, 교회 생활이든 아니면 스포츠 활동 등 다른 어떤 부분이든지 각 사람은 땅을 경작하고 지켜야 할(창2:15)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을 그 곳에서 수행하여야 한다. 각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고유의 창조적 은사들을 가지고 여러 다른 영역에서 일해야 한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회 문화적인 열매를 생산한다. 그리고 이것이 심오한 종교적 목표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섬기는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13]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영역에게 제각기 법을 주셨으므로 모든 영역에는 제각기 주권이 있다. 국가, 교회,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학문 등의 모든 영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그에게 소속되어 있음으로, 각 영역은 다른 영역의 권리나 자유를 간섭 또는 침해하지 아니하고 자주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이퍼는 이 원리에 입각하여 국가와 국가교회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주권을 가진 대학을 세우고자 했고, 마침내 1880년 암스테르담에 국가와 교회로부터 독립된 주권을 가진 ‘뿌라야(자유)’대학을 세우고, 개교연설에서 ‘영역주권’이란 주제의 강의를 통해 그의 이론을 밝힌 것이다.


카이퍼에게, 교회는 신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어떻게 활동할지를 결정하는 기본적인 신앙의 틀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교회의 역할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카이퍼는 믿음과 이성을 비교하지 않았고, 믿음과 다른 종류의 믿음 또는 믿음과 불신을 비교하였다.[14] 각 자가 처한 영역에서 바른 종류의 믿음이 그 영역에서 바르게 살 수 있는 동력을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신자는 교회와 국가의 시민으로 그리고 사회의 한 영역에 동시에 속해있다. 이 모든 삶의 영역 안에, 기독교인의 기본적인 확신들이 그들의 활동들을 견인해 간다.


반면에 국가 또는 정부는 약한 자가 짓밟히지 않게 한다든지, 사람들에게 공통의 선을 위해 봉사하도록 요구하는 등 각 영역들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15] 그러므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비유로 설명하자면,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빛이 분산되어 여러 색깔의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여러 색깔로 분산된 스펙트럼이 가정, 사업, 학교 등 다양한 사회적 영역들을 나타낸다. 그런데 분산된 색의 한 쪽 편은 교회 영역을 나타내는데,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에 대한 기본적인 확신들을 형성해 준다. 스펙트럼의 다른 끝 단은 정부를 나타낸다. 정부는 여러 영역들간의 상호작용을 조정한다. 그러나 교회나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각 영역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은 이들이 아니라, 각 영역 스스로가 자기 영역의 합법성과 역할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끌어낸다.


지금까지 설명한 영역주권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하나님은 모든 영역을 통치하시는 주권을 가지고 계신다.

②하나님은 각 영역에게 고유한 영역주권을 나누어 주셨다.(영역주권의 수여자는 하나님이시지 교회나 정부가 아니다.)

③각 영역은 자기의 영역에 대하여 하나님께 직접 책임을 진다.

④각 영역은 다른 영역의 주권을 침해할 수 없다.

⑤정부는 여러 영역들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교회는 각 자의 영역에서 살아갈 신자들에게 그 영역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본적인 기독교적 신앙의 확신들을 세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4) 영역주권 이론에 대한 평가


카이퍼의 영역주권 이론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①교회에서의 삶과 사회에서의 삶을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생활 형태를 혁파하는데 공헌하였다.


 그 결과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단지 전도하고 구원받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인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할 ‘문화적 사명’이 있음을 깨우치게 하였다[16].


②일반은총을 세상을 향한 적극적인 개념으로 이해함으로서 능동적인 사회참여가 이루어 졌다. 교회가 불신자와 함께 사회정의를 위해 활동할 수 있으며 인간적인 삶을 구현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우리나라에는 기독교 윤리실천 운동이나, 공명선거 감시운동 같은 활동을 들 수 있겠다.


③칼빈주의를 신학의 사상 안에만 가둔 것이 아니라, 전체 삶의 체계로서, 말하자면 세계관으로 승화시켰다. 실제로 카이퍼는 칼빈주의에 입각한 정치를 펼치면서 논리면 논리로, 정책이면 정책으로 현대 세속주의에 대항하여 그들을 무너뜨렸다.


④영역간의 주권을 인정하고 상호 간섭을 배제하는 개념은 다른 영역에 대하여 힘의 우위에 있는 교회나 정부의 과도한 월권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민주주의 개념을 더 확실히 구체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평가로는


 ①카이퍼의 일반 은총 속의 세상 발전에 대한 견해는 하나님의 구속적 사역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면이 부족했다. 카이퍼가 하나님의 창조를 통한 모든 세상의 선함을 강조하여 일반 사회와 문화 속에 남아 있는 일반 은총을 통한 기독교 문화회복을 강조하였다. 카이퍼의 이런 문화관에 반대한 스킬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만 일반은총이 가능하며 문화도 새롭게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17]


②일반은총의 열매인 19세기 기술 발전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못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과신한 경향이 있었다[18].


4. 로렌 커닝햄의 8 Mind Molders를 고려한 영역주권 모델과 적용


카이퍼의 영역주권 이론에 도전을 받은 YWAM(Youth With A Mission)의 설립자인 로렌 커닝햄은 1975년 세계의 사회 각 분야를 예수님께 돌리기 위한 전략구상을 하고 기도하는 중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역에 집중해야 할 권역을 생각해 내게 된다. 그리고는 대학생선교회(C.C.C.)의 설립자인 빌 브라잍을 만나 대화하는 중에 두 사람이 둘 다 사회의 7개 권역을 겨냥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서로 놀라게 된다. 이 7개 권역은 (1) 가정 (2) 교회 (3) 학교 (4) 정부 (5) 언론 (6) 예술/연예/스포츠 (7) 상권/과학/기술계 등이었다. 이 권역의 나눔은 사람에 따라 융통성이 있는데 지금은 8개의 권역으로 나누기도 한다. 8개 권역은 (1) 정부 (2) 경제 (3) 과학,기술,의학 (4) 교육 (5) 매스미디어 (6) 예술, 스포츠, 예능 (7) 교회 (8) 가정이다. YWAM은이 모든 권역에서 그리스도의 주재권이 드러나도록 중보하고 사역하고 있다.


필자는 커닝햄의 8개 영역과 그림4 에서 설명된 카이퍼의 영역주권 개념을 토대로 아래와 같은 모델을 제시하며, 이 모델에 근거하여 영역주권 이론의 그 적용 점을 찾고자 한다.


(1) 특별은총 영역의 우선성


필자는 교회와 가정을 특별은총 영역으로 분류하였다. 가정을 특별은총 영역으로 분류한 것은 교회 못지 않게 성도들의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를 받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가정이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이기도 하지만, 믿음의 가정이 교회를 이루는 최소 단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정은 예배와 신앙의 기초 공동체이며 신앙 훈련의 가장 효과적인 공동체이다.


스킬더의 지적대로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교회와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세워나가는 일에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교회와 가정에서 특별은총이 전제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일반은총 영역의 참여는 세속적이 된다. 왜냐하면 일반은총 영역에 참여하는 기본 태도, 말하자면 가치관 또는 세계관이 성경적이지 않으면, 그의 일반은총 영역의 참여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는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2) 일반은총 영역의 참여


모든 성도들은 가정과 교회라는 특별은총 영역에 속하여 있으면서, 나머지 일반은총 영역인 6개의 영역 중에 하나이상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일반은총 영역에의 참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여기에는 세가지 태도가 있다.


① 어차피 세상을 불탈 것이다. 그래서 일반은총 영역에 참여하여 문화를 창달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의미가 없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교리적 전통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② 일반은총 영역에 성도들이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모든 영역들을 정복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죄성(罪性)과 부패성을 소홀히 여기며, 인간 안의 창조적 능력을 과신하는 문화적 낙관주의의 경향을 지닌다.


③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영역을 정복할 수 없지만, 정복할 수 있는 것같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그러면서 모든 영역을 은혜로 완전히 정복하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기대하고 바란다.


위의 세가지 태도 중에서 바람직한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양 극단을 지양하고 두 입장의 중간에 서있는 세 번째를 취하는 것이 균형 잡힌 태도일 것이다.


[1] 직업 생활


일반은총 영역으로의 참여는 곧 직업으로 연결된다. 일반은총 영역에서도 그리스도가 주권을 가지신 주재(主宰)라는 인식은 곧 나의 직업이 소명(召命)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한다. 특별은총 영역인 교회의 전문사역자인 목사, 전도사나 선교사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교회 전임사역자가 소명을 받았다면, 일반 직업도 그 영역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소명이라는 것을 강하게 인식해야 한다. 직업이 주는 어려움 때문에 직장에서 하는 노동이 죄로 인한 저주라는 생각이나, 직업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뿐이라는 생각은 성경적이 아니다.


일반은총 영역에서의 직업이 그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소명이라면, 나의 직업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두 가지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하나는 성실성(integrity)이요 다른 하는 탁월성(excellence)이다.


성실성은 주로 특별영역에서 준비하여야 한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고, 철저한 성경적인 가치관, 말하자면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무장해야 한다. 탁월성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최고의 품질로 주님을 섬기듯이 나의 직업과 일을 통해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가 하는 일의 탁월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력을 함양해야 한다.


[2] 자녀 양육


일반영역으로의 참여는 곧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해 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어떤 영역으로 부르시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전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도들을 철저히 기독교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탁월한 일군으로 길러 일반은총 영역으로 보내는 것을 소홀히 한 것은 반성할 일이다. 목사나 선교사로 헌신하고자 하는 아이들만 교회적으로 격려한 것은 직업의 선택에서 성속(聖俗)의 이원론적 사고를 은연 중에 주입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교회의 특별은총 영역으로 부르시는데도 부모의 욕심으로 반대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일반은총 영역에서 주님이 부르시는 곳보다는 부모가 원하는 영역으로 보내려고 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래서 부모는 늘 아이를 축복하면서 꿈을 심어주되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에 목적을 두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의 출세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일반은총 영역에서 성실성과 탁월성을 가져야 하듯이 아이들도 성실성과 탁월성을 함양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아이의 성실성을 위해 무엇보다도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아이의 장래 주님께 위탁하는 기도와, 아이들을 격려하고 축복하는 일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탁월성 함양을 위하여 아이들이 학문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독려하며, 실력을 기르도록 도전을 주어야 한다.


[3]증인의 삶


그리스도는 온 세상에 나가서 그의 증인이 될 것을 요구하셨다. 우리 중 타 문화권에서 선교를 하지 않는 다음에야 우리가 나가야 할 곳은 일반은총의 영역 중에 하나이다. 우리가 보내심 받은 영역에서 직업을 통하여 성도의 성실성과 탁월성을 발휘할 때 그 자체가 불신자들에게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불신자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태도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신 세계를 향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과 그리스도적인 삶을 통한 증거의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주위의 불신 동료에게 말로 그리스도를 말하여 구원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4] 영적 전쟁


영적인 전쟁은 모든 영역에서 일어난다. 마귀는 전 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일을 한다. 먼저는 교회와 가정의 특별은총 영역에서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일반은총 영역에서도 그에 못지 않은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불신의 세상 가치관과 성경적 가치관의 싸움이 각 영역에서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효과적인 싸움을 위해서 그 영역의 주권을 불신세계에 내어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영적 전쟁의 교사 딘 셔면은 각 영역에서 성문을 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성문’은 구약시대에 주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사탄은 인간의 권위 구조 속에 교묘히 침투하여 이를 통해 지배하려고 획책한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에덴 동산에서부터 사탄은 인간의 잘못된 판단과 이기적인 선택을 통하여 지배의 손길을 뻗쳐 나갔다. 권세나 권위의 구조는 상위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권위 구조는 우리 생활의 모든 면과 맞닿아 있다. 대법원에서 개에게 등록증을 발부하는 사람에 이르기 까지 세상 만사가 다스려지는 곳이 있다면 거기에는 권위 구조가 잇다. 정부, 학교, 사업체, 교회, 노동조합, 동우회, 스포츠 팀, 심지어 가정 안에도 권위구조는 존재하기 마련이다.[19]


원수인 마귀는 각 영역의 권위자, 즉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의사결정권자를 장악하여 그 영역을 자기의 영향력 아래에 둔다. 이 사실은 우리가 부르신 받은 영역에서 어떻게 효과적인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가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원수가 각 영역의 조직체에서 의사결정권자를 장악하는 것을 획책하므로, 우리 성도들은 의사결정권자의 위치를 점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이 된다. 성도들이 탁월성을 길러야 하는 이유도 바로 권위구조의 상부, 즉 의사결정권자의 위치를 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위치를 점하는 것이 자기의 명예나 유익 때문이 아니라, 자기 권위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와 공평의 통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 영역이 주님의 주권적 통치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5. 결론


카이퍼는 세상에 대한 ‘기피’는 칼빈주의자의 표지가 아니라 재세례파의 표어였다고 한다. 칼빈주의자는 세상과 분리하고 대립하고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세상의 발전을 훨씬 높은 단계로 밀고 올라가되 하나님을 위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한다고 했다. 카이퍼는 계속 말하기를 “칼빈주의가 네덜란드에서 사반세기 동안 굳게 세워지자마자 모든 방향에서 삶의 활기찬 소리가 들리고, 불굴의 힘이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에 스며들며, 상업과 무역, 수공업과 산업, 농업과 원예, 기술과 학문이 전에 없이 찬란하게 융성하며, 서구 전체에 전혀 새로운 삶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추진력을 주었음을 본다” [20]고 했다.


물론 19세기 카이퍼의 네덜란드 환경과 우리 나라의 환경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론을 액면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근본 원리는 오늘 종교다원 국가인 한국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모든 영역에서 돌릴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성도는 다만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만이 아니라, 일반은총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 온 세상이 영광을 돌리도록 문화창달에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먼저는 교회와 가정의 특별은총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부르신 일반은총의 영역에 나아가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구원의 보장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목적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부분적이지만,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도,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을 미리 체험하는 축복이 있어야 할 것이다.



--------------------------------------------------------------------[1] Geerhardus Vos, The Teaching of Jesus Concerning The Kingdom of God and the Church, 정정숙 역, 하나님의 나라(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71), 24.


[2] 이승구,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서울: SFC, 2003), 57-58.


[3]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책은 common grace를 일반은혜, 일반은총 또는 보통은혜라고 번역하지만 내용적으로는 공통은혜라고 번역해도 좋을 것 같다.


[4] Louis Berkhof, Manual of Christian Doctrine, 신복윤 역, 기독교 신학개론(서울: 성광문화사, 1974), 207-209.


[5] 유해무, “한치라도 주의 것: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 은혜론과 한국교회에서의 수용에 대한 평가”,개혁주의 학술원, 1996,1.


[6] ARP는 네덜란드 개신교를 대표하는 정치 집단이다.


[7] Abraham Kuyper, Lectures on Calvinism, 김기찬 역, 칼빈주의 강연(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2011),8.


[8] Ibid.,9.


[9] ibid.,13-14.


[10] 정성구,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 (서울:킹덤북스,2010), 261-263.


[11] 이광호, “칼빈주의와 한국교회”.


[12] 정성구,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 , 261


[13] Kent A. Van Til, “Subsidiary and Sphere-Sovereignty: A Match Made in…?”, Theological Studies, 69/3 September 1, 2008, 623-624.


[14] Ibid., 625.


[15] ibid.


[16] 변종길, “아브라함 카이퍼의 문화관”,개혁주의 학술원.


[17] 이광호, “칼빈주의와 한국교회”.


[18] 변종길, “아브라함 카이퍼의 문화관”.


[19] Dean Sherman, Spiritual Warfare, 이상신 역, 영적 전쟁(서울: 예수전도단, 1993), 108.


[20] Abraham Kuyper, Lectures on Calvinism, 김기찬 역, 칼빈주의 강연,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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