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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개혁 교육

 

김헌수 목사(대전 성은교회)

 

본 글은 성약출판사의 성약소식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은 성약출판사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1)이라는 주제를 여러 나라에서 모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에서의 교육’에 대한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개혁 신앙을 고백하는 부모들이 한국에서 씨름하는 특별한 과업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1. 한국에서의 교육

 

1) 전통적인 유교 교육

 

한국의 전통적인 교육은 대체로 유교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유교는 일반적으로 공자(孔子, 주전 551-479)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는 중국 샤머니즘의2) 원시적인 형태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랜 역사 가운데서 발전한 신념 체계이다.3) 공자와 더불어 맹자(孟子, 주전 372-289)와 주자(朱子, 1130-1200)가 유교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대표적인 학자로 꼽힌다.

 

기원전 2천 년경부터 고대 중국인들은 영(靈)과 귀신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왕가나 귀족은 상제(上帝)나 하늘[天]을 섬겼고, 평민들은 대체로 풍요의 신을 섬겼다. 그들은 명절에 죽은 조상의 영들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자식의 출생이나 혼인이나 승진과 같은 중요한 일을 조상신에게 알렸다.4) 이처럼 죽은 자의 영혼이 동양 사람들의 생활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공자는 새로운 것을 짓지 않고 고대 성현들의 사상을 전달하는 자로 자처했지만[述而不作], 그는 무속적인 조상 숭배를 문민화시킨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전달자였다. 그는 효의 개념을 시민 생활과 정치 생활에까지 확대시켰다. 효는 부모에 대한 존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연장자나 윗사람에 대한 존경으로 확대되었으며, 국가도 가정의 확대로서 이해되었다. 따라서 유교 체제에서의 가족은 ‘사회학적’ 단위일 뿐 아니라 ‘형이상학적’ 중심이었다.5)

 

유교의 발전된 형태는 샤머니즘과 매우 다르지만 한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똑같이 현세 지향적이다. 샤머니즘의 기본적인 특징은 죽은 자의 영혼이 이 세상에 함께 있고, 무당을 매개로 하여 산 자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데, 유교는 죽은 조상의 영혼의 도움으로 현세적인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보장받으려는 것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유교의 조상 제사는 언제나 샤머니즘적인 신념 체계 안에서 수행되었다.

 

유교 사회에서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현세 지향적인 효(孝)와 밀접히 연결된다. 유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효경>에서는 조상이 물려준 신체를 잘 보존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출세하여 ‘부모의 이름을 내는 것’이 효의 마침이라고 가르친다.6) 유교 사회에서 도를 행하여 부모의 이름을 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과거(科擧) 공부를 하여 고위 관직에 오르는 것이었다.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의 높은 교육열은 효에 대한 교훈을 떠나서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교육이 효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유교적 교육은 종교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7)

 

효와 교육에 대한 강조가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의 경제적 발전에 기여했고, 어떤 학자들은 “유교적 자본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 용어는 이론적으로나 통계적으로 검증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8) 높은 수준의 교육이 자본주의적 발전에 강한 추진력을 제공함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요약하면, 유교적인 사회 가치관은 정치적 사회적 출세를 위한 정당한 방편으로 고등 교육을 장려했다. 동아시아 사람들의 심성(心性)과 유교의 체계에 박혀 있는 샤머니즘적인 신념이 성공과 물질적인 복지를 추구하는 데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2) 근대 교육의 세 단계

 

한국에 근대 교육 제도를 도입한 사람은 서양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인도에서 활동한 스코틀랜드 파송 선교사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 1806-1878)의 방법론을 선교 전략으로 택하여 ‘미션 스쿨’이라고 불리는 교육 기관을 많이 세웠다. 이것은 교육이 존중되는 한국에서는 특히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1910년에는 2,250개의 학교 가운데서 822개가 기독교 계통의 학교였다.9) ‘미션 스쿨’은 하층민이나 여자에게도 입학을 허락하여 양반과 상민의 신분 철폐나 여성의 권익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 ‘미션 스쿨’은 한국 근대화의 중요한 추진력이 되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에 많은 신자들이 ‘기독교화’와 ‘서구화’ 혹은 ‘근대화’를 동일시했음도 지적되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문을 세속화를 향해 열어 둔 셈이었다.

 

‘미션 스쿨’은 학교를 전도[미션]의 수단으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에 교과목을 성경의 교훈이나 신앙고백과 통합하는 일은 소홀히 하였다. 달리 말하면, 언약의 자녀에 대한 교육은 차츰 뒷전으로 밀려났고, 가르치는 내용에서 기독교적 독특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미션 스쿨’이 좋은 학교로 소문이 나면 불교도도 아무 거리낌 없이 입학할 수 있었고 기독교인도 다른 세속 학교에 진학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인이나 불교도나 모두 교육과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별개로 생각했다. 그들은 교육을 통해 사회의 상층에 진출한다는 데서는 같은 생각을 가졌다.

 

둘째, 일본은 식민지 시대에 공립학교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의 ‘식민지 교육’은 일본 백성의 우월성을 인정하게 하고 일본의 신념 체계를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무속의 일본판인 신도(神道)가 교육의 중심에 자리를 차지했다. 일본 당국은 한국 학생도 신도 사당에 절을 하게 했고, 일본 왕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東方遙拜]. 이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것은 폐교를 의미했다. 비록 몇몇 기독교 학교들이 폐교되고 몇몇 선교사들이 추방되거나 투옥되었지만 대부분의 미션 스쿨들은 그 압력에 순응했고 심지어 교회들도 그리 했다.10)

 

셋째, 1945년 해방 후에는 미국의 교육 체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일제의 공립학교 제도의 유산, 즉 정부가 교육을 통제하는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시행했다. 교과 과정을 학교 이사회가 아니라 교육부가 결정했다.

 

해방 이후에 서양적인 교육이 도입되었지만 기저(基底)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여전히 유교적인 교육관이었다.11) 교육을 통한 효의 실현과 현세적인 성공의 확보가 교육열의 근본 동인이었다. 한국의 중고생들은 유명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입시 과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 교육부는 몇 차례 교과 과정을 개편하여 지금은 7차 교육 과정을 시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3) 개혁의 관점에서의 평가

 

유교적인 교육이 없었다면 한국의 경제적 발전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무속적인 요소와 가족주의와 연결된 유교적 가치관은 한국이 좀 더 근본적인 개혁을 하는 데에 지속적인 장애물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적절한 공적(公的) 직분의 개념이 없이 유교적인 인간관계 중심의 가치 체계를 정치 제도에 적용할 경우 쉽게 친인척 비리와 부패로 이어진다. 정치 비리의 문제를 많은 경우 개인적인 도덕성의 문제로 파악하지만, 사실은 인간관계 중심의 사고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렇지만 유교적인 가치관이 문화에 깊숙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잘 의식하지 못한다.12) 그러나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기독교인은 이러한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보아야 하고, 그와 같은 강력한 문화적 장애물을 타파하기 위해서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기독교인들이 유교에서 배울 것들이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와 연장자에 대한 정당한 존경은 힘써 보존해야 할 전통이다. 5계명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해설에서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내 위에 있는 모든 권위에 모든 공경과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그들의 모든 좋은 가르침과 징계에 대해 합당한 순종을 하며, 또한 그들의 약점과 부족에 대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104문), 가족 관계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회적인 원리가 있다. 또한 교육과 근면함에 대한 정당한 강조는 일상생활에서 유지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

 

그러나 효와 교육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피조계의 다른 영역을 희생하면서 한 영역을 절대화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우상 숭배이다. 또한 국가는 가족 관계를 확대한 것으로 다 설명될 수 없다. 거기에는 가족 관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공적(公的)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사회적인 덕목은 인화(人和)를 넘어서는 요소가 있다. 공적인 관계와 규범을 따라서 일하는 것은 사적인 관계의 확대로만 설명될 수 없다.13)

 

2.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

 

1) 한국에서의 개혁 교회

 

1884년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첫발을 디뎠는데, 그때는 한국이 세계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시기였다. 밀려오는 열강의 힘에 저항할 힘이 없던 상황에서 기독교는 일종의 탈출구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기의 기독교의 급속한 성장은 부분적으로 이러한 요소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

 

1907년에 한국 장로교회가 독노회를 조직했다. 그때 교세를 보면 선교사를 포함하여 목사 49명, 조사(助事) 160명, 장로 47명, 교인 72,968명(성찬 교인 18,061명)이었다.14) 교세로 볼 때 결코 미미하지 않았지만 총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요약인 12개조를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택했다. 그러나 한두 쪽에 지나지 않는 이 고백서는 교회를 그릇된 교훈과 이단으로부터 보호할 정도로 튼튼하지는 못했다. 또한 목사 장로 집사에게만 12신조를 승인할 것을 요구했지 교인들에게는 요구하지 않았다. 따라서 교인들은 신앙고백과 무관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약 60여 년이 지나서 몇몇 교회들에서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를 채택했지만15) 이 고백서에 대한 서명도 직분자에게만 요구하고 교인은 제외되었다. 또한 직분자의 서명도 엄격히 시행되지 않았다. 물론 그 안에는 좋은 신자들이 많이 있지만, 신앙고백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한국 장로교회가 참으로 신앙고백적인 교회인가’를 묻게 된다. 현재 한국 인구의 20퍼센트가 기독교인으로 자처하고 기독교가 중요한 사회 세력이 되었지만, 발표자는 이 질문이 여전히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2) 독립개신교회에서의 개혁 교육: 작은 시작16)

 

독립개신교회는 한국 장로교회가 세계 교회 협의회(WCC) 문제로 분열을 거듭하던 시기인 1964년에 설립되었다. 독립개신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보편 교회의 신조들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대회의 결의들을 채택했다. 독립개신교회는 여전히 형성기에 있고, 네 명의 목사가 세 회중을 돌보고 교인 수는 450여 명인 작은 교회이다. 세 교회는 다양한 수준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초중학교 교육이 의무 교육이고 또한 스스로 학교를 세울 만큼의 인적 물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서 독립개신교회의 교회들은 토요일과 방학을 이용해서 학교로 모이고 있다.

 

발표자가 목회하는 대전의 성은교회에서는 1999년에 10명의 학생과 3명의 자원 교사로 계절학교를 시작했다. 주님의 복 주심으로 지금은 20명의 학생으로 성장했으며, 2003년에는 교육 협회를 조직했다. 자녀가 없거나 아직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교우들까지도 교육 협회에 회원이 되는 등, 대부분의 교우들이 이 일에 참여하여서 매달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고 있다. 지난 가을에는 6명의 학생과 2명의 선생으로 유치원을 시작했고, 금년에는 8명의 학생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계절학교와 유치원이 성은교회의 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독립개신교회에 속한 다른 교회인 서울의 강변교회는 2000년부터 청소년학교를 시작했고 약 130명의 학생과 10여 명의 교사가 있다. 방학 기간에는 독립개신교회에 속한 교회들이 함께 캠프를 열어서 함께 공부하기도 하고 놀기도 한다. 2003년 여름에는 호주 자유개혁교회의 교사인 안톤 브렌(A. Breen) 선생을 초빙하여 수업도 하고 교사 세미나도 열었다.

 

우리는 인적 자원에서 큰 부족이 있기 때문에 교과 과정은 잘 갖추지 못했다. 우리는 성경, 교회사, 철학, 읽기와 쓰기, 자연 과학, 음악, 미술, 체육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이러한 과목에서는 질이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전체 수업 시간이 크게 부족하며, 대체로 말하면 개혁의 정체성을 더 강조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3)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을 위한 부모의 과제들

 

다른 개혁 교회들에 비해, 독립개신교회는 조직된 교회로서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개혁 교육에서도 우리의 역사는 짧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과 과제는 좀 더 기본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개혁 부모들이 한국적인 상황에서 힘쓰고 있는 것들을 몇 가지 이야기하겠다.

 

① 교회 생활의 영역에서

 

첫째, 부모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 지속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중요한 함축을 지닌다. 유교 사회에서는 사회적 출세와 성공이 효를 이루는 수단이었지만, 그리스도의 몸에서는 지체들 사이에 분열과 경쟁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게 하시기 때문이다(고전 12:22-23). 유교적인 가치관은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이 무엇인가를 알 때에야 우리는 개혁 학교를 시작할 수 있다.

 

둘째, 부모들은 언약의 말씀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고 개혁되어야 한다. 교회를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드는 것은 언약의 말씀에 대한 신실하고 정순한 강설이다. 비성경적인 사변이 신학 논쟁에서나 삶에 강한 영향을 끼친 한국에서 언약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더 절실하다. 믿음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는 부분적으로는 예정에 대한 결정론적인 이해에서 비롯한 것인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에 의해서만 적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 언약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할 때 성신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반응하게 이끄실 것이다.

 

셋째, 부모는 자신들의 자녀에 대한 이해에서도 변화되어야 한다. 유교적인 세계관에서는 영원성을 후손을 통해 표현했다. 자녀는 개인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부모나 조상과 관련해서 의미를 지녔다. 줄여 말하면, 그들은 부모의 것이다. 성경에서는 자녀들이 삼위 하나님에게 속했다고 가르치고(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 74문)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창 17:7).

 

넷째, 부모는 학교나 교회에서의 ‘생활’과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유교에서는 나이와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사회생활이나 서로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서도 그러한 현상이 매우 빈번히 나타난다. 이것은 교회의 직분 개념을 왜곡시키는 것이고 직분을 통한 그리스도의 통치를 가리는 것이다. 따라서 ‘직분’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을 배우고 학교와 교회의 모임에서 실천하며 나아가야 한다.

 

② 교육의 영역에서

 

다섯째, 부모는 교육에 대한 관점에서도 새롭게 되어야 한다. 교육은 아이들을 훈련시켜 자녀들이 사회 상층부에 효과적으로 올라가도록 만드는 수단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더 효과적으로 섬기도록 갖추어 주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주셨기 때문에 교육자는 이러한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개혁 학교는 어제 호주자유개혁교회의 테르프스트라(A. Terpstra) 선생이 발표한 대로 발전적 접근(developmental approaches)을 택할 필요가 있다.17)

 

발표자는 개혁 교육에 두 가지 목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성경과 교회의 역사적인 고백을 잘 알아서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로서의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들의 직업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제 토론한 ‘개혁 교육의 정체성과 질’(identity and quality of reformed education)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 교회의 교인들이 몇 년 전 어린이날에 소풍을 갔는데, 그때 발표자는 창세기 6:4를 읽고(“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다음과 같이 부모들에게 도전을 했다. “사랑하는 부모들이여,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서 자녀들을 교육시킵니까? 그들이 유명하고 힘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처럼 수고하십니까? 그들이 유명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서 아름다운 사람의 딸들을 자기들의 마음대로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교육에 투자하십니까? 사랑하는 부모들이여, 창세기에 기록된 유명한 자들과 사람의 딸들의 혼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정체성의 위기는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생명과 사망, 하나님의 복과 저주의 문제입니다.”

 

어젯밤에 동일한 본문에 대한 작은 묵상을 기록했다. ‘무엇이 양질의 교육인가? 목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것을 양질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잘 가르쳐서 유명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양질의 교육은 아니다. 물론 효과적인 수단과 관련하여 교육의 질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다소 참된 요소가 있지만, ‘효과적인 수단’은 중립적이지 않고 ‘정체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았다.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양질의 교육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방주를, 그렇게 큰 배를 짓기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다소 도전적인 명제를 반복하겠다. “교육의 질은 중립적이지 않고 정체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③ 문화의 영역에서

 

여섯째, 부모는 문화의 문제와 도전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발표자가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의 가치관을 대안으로 여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비록 서양 문화의 상당 부분이 성경에서 연원한 것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근원에 닿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더구나 필자와 같은 동양의 기독교인에게는 서양의 기독교적 문화도 서양의 토양에서 토착화된 요소가 다소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서양 문화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전통적인 유교의 토양에 서양 문화가 수입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신자로서 성경의 교훈을 토대로 동서 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토착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비판적 반성은 자신의 믿음을 순결하게 보존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성경의 교훈을 따라서 변혁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개혁 관점에서의 토착화’는 성경과 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를 요구하는 거대한 작업이다. 그러한 작업을 거쳐서 비로소 개혁 교육의 교과 과정에도 그 결과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도 문화에 대한 성경적인 비판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성경적인 비판이 없이는 개혁 교육을 시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국의 개혁 부모들이 위에서 열거한 내용으로 신령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여기에 있는 다른 문화에서 온 개혁의 형제들에게도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 다른 단계에서 다양한 양태로 씨름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신령한 전투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여러분의 좋은 전통은 제한된 자료를 가진 우리에게도 큰 격려가 된다.18) 독자적인 건물과 개혁 교과 과정이 갖추어진 학교를 갖는다는 것이 현시점에서는 우리에게 요원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잘 갖추어진 학교를 갖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두신 그 단계와 위치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갖고 이 일을 행하고 있다.

 

각 주

 

1) 이 글은 2004년 5월 10-12일에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1회 국제 개혁 교사 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f Reformed Education)에서 발표한 글의 번역이다. ICRE는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 호주 자유개혁교회, 캐나다 개혁교회, 남아프리카 개혁교회, 독립개신교회 등에서 65명의 교사가 참석해서 개혁 교육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해서 논의했다. 회의는 원칙적인 주제 발표와 실제적인 예를 제시하는 발표, 그리고 분임 토의로 진행되었다. 초고는 성은교회 계절학교의 2004년 수련 활동 기간에 부모들과 함께 읽었다(2004년 2월 23일, 수통골 유스호스텔).

 

2) 샤머니즘은 샤먼(Shaman), 즉 영적(靈的) 중매자에서 나온 이름이고, 시베리아, 중국, 한국, 일본뿐 아니라 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까지 널리 펴져 있다. 샤머니즘에서는 천상과 지상과 지하의 삼계(三界)가 중앙축으로 연결되어서 건너다닐 수 있다는 우주론을 갖고 있다. 접신 상태의 샤먼(무당)이 다른 세상의 영들과 교류할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그 목적은 이 세상에서 재난을 방지하고 복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다. 샤머니즘은 ‘신비적 요소’와 ‘현세적인 태도’의 혼합으로 특징지어지는데, 두 요소의 혼합은 한국 교회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샤머니즘에 대해서는, M. Eliade, Shamanism: Archaic Techniques of Ecstasy (New York, 1964), 특히 6장과 8장을 보라.

 

3) 특히 한국에서는 주자학의 전통이 강하기 때문에 유교를 사서오경을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은 송대에 완성된 주자학적 해석이 확립된 결과일 뿐이다. 주자학과 공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1,500년 이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요즈음에는 ‘원시 유교’(primitive Confucianism)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갑골 문자나 공자 이전의 사료로 판명된 『시경』이나 『서경』이 중요한 자료로 주목을 받고, 조상신에 대한 제사와 유교 사상의 성립에 대한 것이 중요한 주제가 된다. 김승혜, 『유교의 뿌리를 찾아서』 (지식의 풍경, 2001년). 오진석, “예의 원시적 형태: 殷周에서 공자까지,”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1986년.

 

4) 천(天)은 인격성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상신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금장태, 『유교사상과 종교문화』 (서울대 출판부, 1994), 200-220.

 

5) J. Kitagawa, Religions of the East (Westminster Press, 1968), p. 43.

 

6)『효경』 “공자께서 증자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몸과 형체와 머리털과 살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감히 헐어 상하게 하지 아니함이 효도의 시작이요, 몸을 세워 도리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널리 드날리게 하여서 부모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나게 함이 효도의 끝마침이니라.”(孔子 謂曾子曰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7) 유교 교육의 목적은 고대 성현의 가르침을 암기할 뿐 아니라 그것에 따라서 사는 군자(君子)로 훈련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학문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는 것도 유교의 종교성과 관련하여 생각할 중요한 주제이다. 유교에는 종교성과 도덕성의 양면이 있는데, 그 종교성은 보지 않고 도덕성만 보려고 한 것이 유교 사상사의 큰 흐름이다. 그렇지만 유교가 그 생명력을 유지해온 것은 그 도덕성을 지탱하는 종교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두 가지를 분리할 수는 없다. 유교의 종교적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 가지 노부유키, 『침묵의 종교, 유교』 (경당, 2002), 120-123, 128-133, 261 등; 최준식,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사계절, 1999), 223-231; R. Taylor, “The Religious Character of Confucian Tradition,” Philosophy East and West, 48:1 (1998), pp. 80-107; J. Kitagawa, Religions of the East (Westminster Press, 1968), pp. 50-53, 81; J. Ching, 『유교와 기독교』 (분도출판사, 1994), pp. 34-37; H. Fingarette, Confucius - The Secular as Sacred (Harper and Row, 1972), Chaps. 1, 5.

 

8) 유교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다. 1997년 아시아의 통화 위기 이후에는 ‘아시아적 가치관’이라는 말로써 개인적인 관계에 의존하는 유교적 사회의 부패를 지적하기도 했다. 경제적인 발전은 교육된 인적 자원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화 관리라는 새로운 요소가 있는데, 이러한 새로운 요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IMF 사태와 같은 위기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9) Myung-Keun Choi, Changes in Korean Society between 1884-1910 as a Result of the Introduction of Christianity (Peter Lang, 1997), p. 124.

 

10) B. Hunt, For a Testimony,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6); Young-Jae Kim, Der Protestantismus in Korea und die calvinistische Tradition, (Peter Lang, 1981); Jeong-Kyu Lee, Historic Factors Influencing Korean Higher Education, (Jimoondang, 2000); Kun-Sam Lee, The Christian Confrontation with Shinto Nationalism,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1966).

 

11)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교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실천적인 유교도로 자처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유교는 잘 조직된 종교가 아니고 등록 절차도 없기 때문에 유교도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국가 통계청의 통계에 따르면 2003년에 유교도로 자처하는 사람은 0.7%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신념과 행동에 대한 인터뷰에 의한 심층 조사에 따르면 매우 다른 수치를 얻을 수 있다. 91.7%가 적어도 유교의 ‘주변적’ 추종자들이다. Byong-Ik Koh, “Confucianism in Contemporary Korea,” in Weiming Tu, Confucian Traditions in East Asian Modernity: Moral Education and Economic Culture in Japan and the Four Mini-Dragons (Harvard Univ. Press, 1996), pp. 196-199. 그러나 지난 이삼십 년 사이에 한국의 현대 사회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전통적인 유교적 전통과 인터넷과 텔레비전의 ‘후기 근대적’ 사회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또 다른 지면이 요구된다.

 

12) Bong-Ho Sohn, “Christian Higher Education in the Far East,” Paper read on August 14, 2000 at the Conference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Promotion of Christian Higher Education.

 

13) Weiming Tu, Confucian Traditions in East Asian Modernity: Moral Education and Economic Culture in Japan and the Four Mini-Dragons (Harvard Univ. Press, 1996), pp. 7-8, 13.

 

14) 『대한예수교쟝로회 로회 회록』, 1908, 발행처 미상, 43쪽.

 

15)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큰 교단들인 합동과 고신이 각각 1965년과 1973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택했는데, 그것은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외국 개혁 교회들의 권유를 따른 것이었다. 참조. 김영재, 『한국교회사』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288.

 

16) J. Faber, “Our Korean Connection,” Clarion, 47 (1998), pp. 556-558; Heon-Soo Kim, “Introduction of the Independent Reformed Church (in Korea),” Paper read during the 5th ICRC at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in Philadelphia on June 25, 2001. “독립개신교회 소개,” 「성약출판소식」, 37호 (2003), 4-7쪽; H.G.L. Peels, “Dubbel feest in Korea,” De Wekker, 112 (2002), pp. 6-7.

 

17) ‘발전적 접근’의 예를 들면, 3의 단계에 있는 학생과 5의 단계가 있는 학생을 단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그 다음 단계로 발전하도록 이끌어야 하고, 평가도 평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발전의 정도를 따라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8) 독립개신교회의 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글을 공부했다. J. Waterink, Basic Concepts in Christian Pedagogy; K. Deddens, “Confession and School”; J. Faber, “Guido"s Portrait”; R. Faber, “Philip Melanchthon on Reformed Education”; N.H. Gootjes, “Can Parents Be Sure?”; F.G. Oosterhoff, “The School and the Christian Mind”; K. Sikkema, “The Rebirth of Learning and the Reformation: Erasmus vs. Luther on Education”; C. Stam, “Christian ethics and Reformed education”; C. Van Dam, “Education in the Word in an age of the picture”; G. Ph. Van Popta, “Our Children and Entertainment”; T.M.P. Vanderven, “Schooling: whose responsibility is it?”; T.M.P. Vanderven, “What makes reformed education reformed?”; T.M.P. Vanderven, “Storytelling in Church History”; Slabbert Le Cornu, “The upbringing of our young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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