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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

                                                                                      글 : 이승구 교수(합동신대원 조직신학 교수)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하심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의 생각과 삶의 방식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서 먼저 가장 성경적인 대답을 단언적으로 한 후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잘못된 생각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가장 성경적인 대답을 옹호하는 논증을 잠시 한 후에 그에 근거한 삶의 원리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도록 해보자. 먼저 단언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책임 있게,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의도적으로 기꺼이 따르면서 사는 삶의 원리를 가진다'는 것을 밝힌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다음 몇 가지 잘못된 생각들이 우리의 생각을 주도하거나 주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잘못된 생각 1: 인간의 도덕적 책임과 자유는 없다.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잘못된 생각의 하나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 절대적인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인간의 도덕적 자유도 책임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오해에서 발생하는 생각이다. 극단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만이 있어서 우리는 그것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이 절대적인 것이므로 우리가 그저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생각만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뜻이 모든 것을 다 잘 이루게 되어 있다는 소극적인 낙관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각이 우리 주변에 난무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운명론적 결정론이라고 한다. 이슬람교도들은 상당히 이런 결정론적 사고에 익숙하다고 한다. 그래서 책임 의식이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초칼빈주의(hyper Calvinism)라고 불리는 극단적이며 잘못된 사고가 우리 주변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칼빈주의가 아니며 바르고 정통적인 기독교적 관점도 아니다. 또한 정통파적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매우 강조하면서 표현을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상당히 이런 오해를 낳게 하는 인상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의 생각과 그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도덕적 자유와 책임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키는 생각과 표현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는 운명론적 결정론적 인상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생각 2: 절대적 의미의 하나님의 주권은 없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잘못된 생각은 인간의 도덕적 자유와 책임이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이 있으므로 절대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주권과 작정은 인정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극단적인 경우에는 하나님의 주권은 없다고 하든지, 아니면 상대적인 의미에서만 하나님이 주권적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작정도 인간이 나타낼 반응을 미리 보시고 그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 3: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주권을 제한하셔서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 있다.


세 번째 잘못된 생각은 두 번째 잘못된 생각의 변형 형태로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크신 능력으로 자신의 주권과 자유를 많이 제한 하셔서 의도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인간들의 자유와 책임이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있도록 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 두 번째 잘못된 생각이 전제하는 생각인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와 책임이 양립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근거한 사고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절대적 주권을 어느 정도는 제한해야만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오늘날에 유행하는 사상들은 상당히 이런 입장을 지지하며 발전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그의 또 하나의 본질에 속하는 것으로 여기는 과정주의적 사고(process thinking)도 있고, 하나님께서 그의 크심 가운데서 스스로의 능력을 제한하여 우리에게 여지를 주신다는 개방적 유신론(open theism)의 사고도 있는 것이다. 그 둘은 어떤 점에서는 서로 다르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서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만유재신론(범재신론, panentheism)적 사유가 이런 생각과 잘 조화된다. 이런 생각들은 대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지성(全知性)을 스스로 제한하셔서 어떤 미래에 속한 일은 하나님께서 알지 아니하시기로 하셨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잘못된 생각 4: 하나님의 작정이 전포괄적인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정도로까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가 빠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잘못은 이 문제에 대해 성경적으로 철저하게 생각하기를 그만 두면서 그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도 말하고, 또한 인간의 책임도 때에 따라 언급하되 그 둘의 관계를 별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고 말하는 일종의 무책임한 입장 표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가장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의 한 가지 표현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일이 어떻게 되려는지 다 알고 계시지만 하나님이 다 작정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인이 성경적으로 바르게 생각하는 방식은 과연 어떤 것일까?


성경적으로 바른 생각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둘 다 강조되고 드러나게 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인 바른 생각이다. 그 둘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손상시키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따라서 기독교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위의 생각 1, 2, 3, 그리고 4가 모두 잘못된 생각으로 판단된 것이다. 왜 그렇게 말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성경이 이 둘을 모두 강조하고 드러내고 있다는 성경적 현상을 말해야 한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엡 1:11) 하나님이심을 가장 잘 드러내면서 동시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에 따라 힘쓸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철저히 주관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는 힘써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성경의 두 가지 강조점이 이런 문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즉 우리의 신학)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야만 한다. 그 어느 한 측면이라도 무시하거나 덜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생각으로 나아가는 첩경이다.


이런 성경적 현상에 대한 관찰과 그에 근거한 생각에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가운데 그 어느 하나라도 다 손상 받지 않도록 생각하는 것이 성경적인 의미에서 가장 논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성경적 현상은 인정하면서도 이 둘을 다 인정하는 것인 논리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가장 온전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다 같이 강조되어야 진정 논리적인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수준과 인간의 수준의 차이를 생각하면 조금 더 받아들이기가 쉽게된다. 만일에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를 같은 수준에 놓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으면 인간은 그 어떤 권세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수준과 인간의 수중이 다르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당신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다 주관하시면서도 하나님의 작정은 "사람들의 의지에 어떤 강요를 주지도(impose compulsion) 않고 그 어떤 의무를 부과하지도(impose obligation) 않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작정은 사람들의 의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일을 억지로 하도록 하게 하거나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은 도덕적인 자유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일도 다 하나님의 주권과 작정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보아야만 이 세상에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이 발생할 것을 모르셨다고 하거나 그것이 발생할 것을 아셨으나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작정한 것은 아니라는 하나님의 지식이나 주권을 제한하는 이상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대개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죄악된 일들 때문에 이런 문제를 성경적으로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런 죄악된 일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작정, 그리고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모두 강조하는 방식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진정 논리적인 생각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분이시므로 심지어 인간의 죄악된 일들도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있는 것이다(그 대표적인 예로 행 2:23, 4:28; 잠 16:4 등을 보라).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발생하는 것을 분명히 하시나(God renders it certain)[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유효하게 이루시는 것은(God effectuates it) 아니고, 오히려 유한한 인간의 의지의 죄된 자기 결정을 방해하지 않으시고, 이런 유한한 의지의 죄악된 자기 결정의 결과를 규제하고 통제하기로 결정하신 것이다[인간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강조]. 우리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 이 모두 다 강조되고 다 잘 드러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삶의 태도 그러면 이제 이렇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을 먼저 지적하고 그것을 피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생각을 진전시켜 보기로 하자.

(1)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한 가지 잘못된 생활 방식은 하나님의 주권이 절대적인 것이므로 우리가 별 책임 없이 살아가도 하나님의 뜻은 결국 이루어지리라는 운명론적 결정론적 태도이다.


(2)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잘못된 태도는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작정 등은 인정하지 말고 우리가 그저 성경의 교훈적인 뜻을 이루어 가는 일에 최선을 다 하면 된다는 태도이다. 이는 때때로 우리가 그렇게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신념과 연관되기도 한다.


이 둘이 다 잘못된 것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생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이 성도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바른 태도를 가장 잘 요약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즉, (1) 이 세상에는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 오묘한 일들이 있다. 여기에 세상의 되어질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적 의지(decretive will of God)가 속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것이 있음을 분명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하나님의 주권). 그러나 (2)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한 일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에게 드러나게 주어진 것이다. 구약적 상황에서는 그것이 율법(torah)에 속한 모든 말씀이었다. 따라서 구약 이스라엘은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해야 했다. 그것이 신약에는 구약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잘 이해해 적용한 하나님의 교훈과 신약 성경에서 주어진 모든 하나님의 교훈까지를 포함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대립하지 않으니, 신약은 이런 의미에서도 '율법과 선지자들'(구약)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훈적 의지(the preceptive will of God)를 잘 받아들이고 그 교훈에 나타난 뜻에 따라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책임).


결론:

그러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과정에서는 기본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교훈적인 뜻(객관적 원리)을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서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주관적 원리) 살아가야만 한다.


이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교훈과 뜻'에 대한 바른 해석에 근거하여 성경의 '객관적 원리'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서 그 객관적 원리를 우리의 삶에 가장 잘 적용하는 성령님과의 관계라는 '주관적 원리'에 가장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는 실천적으로 아마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성을 드러내는 삶이 될 것이다.

(1) 세월이 지날수록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륜 전체(the whole counsel of God)를 잘 파악해 나아가고, 그것을 자신의 구체적인 삶에 잘 적용해 가는 삶을 낳는다.


(2) 세월이 지날수록 성경의 교훈에 가깝게 가는 인격적 품성을 드러낸다. 즉, 성령님께서 성도들 안에서 이루어 내시는 성령의 열매(단수 임에 유의!)를 잘 드러내게 된다. 따라서 참 성도는 점점 더 인격적인 태도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개인 스스로도 가장 인격적이게 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가장 인격적인 관계성을 점점 더 드러낸다.


(3) 세월이 지날수록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로 이 세상에서 이루어 가시고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극치에 이를 하나님 나라와 그의 뜻을 추구하는 삶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참 성도는 자신의 뜻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이고 욕심으로 가득 찬 삶으로부터 날마다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인도하는 방향으로 날마다 진정하게 된다.


(4)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구현하도록 되어 있는 교회 공동체가 그의 삶의 중심인 삶에로 날마다 나아가게 된다. 그는 그의 삶 전체를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 공동체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을 위해 삶을 잘 정돈해 간다.


(5) 온 세상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성경에서 받은 교훈을 삶의 전 영역에서 실현해 가는 일에 점점 더 헌신하게 된다.

바로 이와 같은 특성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도하면 살아나가는 가장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아 갈 때에 보여 주는 특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특성들을 시금석(criteria)으로 하여 우리가 지금 과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고 있는 지를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1)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둔감하거나 늘 자신이 파악한 단순히 이해에만 머문다. (2) 세월이 지나도 늘 이기적으로 욕심에 가득 찬 모습을 보이고, 종교적으로 매우 욕심에 찬(즉, 이 세상적 의미의 축복을 받으려는) 사람으로 드러나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 내시는 인격적인 품성이 잘 나타나지 않고 부패한 인간성이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모양을 바꾸어 드러난다. (3)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성경적으로 바르게 이해하지 않고 있고, 그 나라를 위하거나 그 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4) 교회 공동체에 헌신하지 않거나 교회 공동체를 자신이 생각한 목적으로만 이용하려고 하며,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의지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5) 온 세상의 각 영역이 하나님의 뜻에 점점 더 가깝게 가는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나 자신의 좁은 종교적 영역에만 안주하거나 그것으로 모든 것을 재려고 한다.


만일에 우리가 이런 특성들을 드러내고 있다면, 그렇지만 우리가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성령님 안에서의 회개 가운데서 이런 잘못된 특성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바른 특성들을 잘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바르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는 사람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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