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직분론 특강(예배와 치리에서 장로의 역할)

by 손재호 on Nov 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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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을학기 직분론 특강

예배와 치리에서 장로의 역할

말씀:디도서 1:7-9


디도서 1:7-9절을 보면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감독의 직무 곧 장로의 직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장로의 직무 중에 중요한 직무가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예배와 치리를 중심으로 장로의 직무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직분명이 교회명이 된 유일한 경우가 바로 장로교입니다. 목사교도 없고, 집사교도 없습니다. 장로의 직분이 교회명을 달고 있다는 것은 장로의 직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장로교회 정치는 우리가 지난 시간에 스코틀란드 제2치리서에서 살펴봤듯이 회중정치도 아니고, 감독정치도 아니고 장로회에 의한 정치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에서 장로가 교인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장로가 교회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까지 합니다. 그래서 장로교회이면서 아에 장로를 안 세우고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장로의 직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의 직분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의 직분이 어떤 직분인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예전에 교회에 보면 예배당에 장로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던 것을 우리는 봤습니다. 예배당 제일 앞좌석에 장로석이라고 팻말이 붙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 좌석에는 장로 외에는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수련회 때 단상에 마련된 장로석에 앉아 놀다가 야단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장로석을 따로 두는 교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장로석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교회들 가운데는 아직도 장로석을 따로 두는 경우가 흔하다고 합니다. 장로석은 회중의 제일 앞자리이기도 하고, 설교단 바로 옆쪽에 장로석을 배치하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장로석을 설교단 바로 옆쪽에 배치하는 경우에는 예배 때 장로들이 회중을 마주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곧 장로들이 목사와 함께 회중을 마주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장로석을 따로 마련하고, 회중들과 마주보도록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장로들이 예배에서 하는 역할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처음 보는 이들도 장로들이 예배하는 교인들을 감독한다는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찬양대석을 회중석 제일 앞자리에 배치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또한 찬양대석을 회중석과 분리되어 설교단 옆에 두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심지어 찬양대석이 강단 뒤쪽에 배치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찬양대가 장로석을 차지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오늘날은 장로석을 회중석 맨 앞자리에 배치하는 것, 더 나아가 장로석을 회중석과 따로 분리하여 설교단 옆에 두는 것은 어색할 뿐만 아니라 거부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장로를 특권층으로 생각한다는 오해를 주기 쉽습니다. 장로가 회중석에 앉는다고 한들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장로들이 예배, 그리고 회중과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해서 이런 배치를 했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더 이상 장로석을 따로 구별하여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교회가 장로석을 따로 두어왔던 그 이유를 분명하게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에서 장로라는 직분은 예배와 치리를 위해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공예배를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직분은 공연히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직무를 가지고 있는데 그 1차적인 직무가 바로 공예배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배하면서 교회가 생겨난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 예배에 직분자가 수행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 예배가 예배다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직분은 예배를 위해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직분자가 예배에서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교인들은 예배를 잘하는데, 정작 직분자들이 예배를 등한시하고, 예배가 끝난 뒤 다른 활동들을 통해서 자신의 위신을 내세우려고 하기 쉽습니다.

 

공예배에 대한 책임은 당회에 있습니다. 교회 헌법에 보면 당회의 직무를 언급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 ‘교인들의 신앙과 행위를 총찰’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제반예배를 주관’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언급하는 것이 ‘성례를 주관’하는 것입니다. 당회의 역할은 교인들을 돌아보는 것인데, 그 출발은 예배를 주관하면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장로는 당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그 무엇보다 예배에 대한 책임을 가장 우선시해야 합니다. 장로가 예배하고 무슨 관련이 있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배하면 목사의 일이라고 떠올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선, 목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목사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물론, 설교만이 아니라 성례를 집례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배 전체를 인도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목사는 예배에서 기도도 인도하고, 찬양도 인도합니다. 목사는 예배 전체의 인도자입니다. 목사가 예배 사회를 다른 이에게 맡기고 설교만을 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목사가 예배 전체를 인도한다면 장로가 해야 할 일은 없는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장로는 당회의 일원으로서 목사에게 예배인도를 위임합니다. 이게 개혁교회 예배원리입니다. 물론, 우리 장로교회에서 목사는 개 교회 회원이 아니라 노회회원입니다. 노회가 개 교회를 담임할 목사를 파송합니다. 그래서 ‘위임식’이라는 것을 행합니다. 노회가 목사를 파송하여 교회 목회 전반을 위임합니다. 이 위임식을 통해 목사는 교회의 목회 제반사항과 예배에 대한 모든 사항을 위임받습니다.

 

개혁교회는 목사가 개 교회 회원이기 때문에 당회에서 예배인도를 위임받습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독특한 풍습이 있습니다. 예배 시작 전에 장로와 목사가 회중석을 가로질러 강단 아래쪽에 섭니다. 서로 마주보고 선 다음에 악수를 나눕니다. 이 악수례는 예배 시작 순서인 것은 아니지만 예배 직전에 일어나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장로가 손을 내미는 것은 목사에게 예배를 인도해 달라는 의미입니다. 목사 역시 장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데 이것은 예배인도를 위임받겠다는 뜻입니다. 너무 형식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번거롭게 하느냐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번마다 예배 인도를 위임받아야 할 이유가 뭐냐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예배가 인간의 일이 아니라, 목사 개인의 능력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회에 위임해주신 예배 주관을 당회원의 한 사람인 장로가 목사에게 재차 위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인들이 이 악수례를 보면서 예배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합니다. 예배하는 회중은 목사를 한 개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회에 위임해 준 예배 주관의 직무를 목사가 위임받았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회중은 목사가 대단한 능력과 달변으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지 않아도 그 예배가 곧 하나님과의 교통이라는 것을 압니다. 장로는 악수례를 통해 목사에게 예배인도를 위임했기 때문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위임과 더불어 예배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집니다. 장로는 예배 순서 전체가 하나의 분명한 흐름을 가지고 삼위 하나님을 기쁘게 예배하는 것이 되도록 무언의 지지로 협력합니다.

 

장로는 회중과 더불어 예배를 온전히 누립니다. 장로는 목사의 설교에 대해서 분명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과 동시에 그 설교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살핍니다. 강단에서 이단 사설이 선포되어서 하나님의 회중이 독초를 먹지 않는지 살핀다는 뜻입니다. 물론, 장로는 목사와 함께 그 설교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집니다. 한편 장로는 목사와 함께 목회기도를 하므로 예배를 풍성하게 합니다. 성찬식이 있는 예배에서 장로는 떡과 잔을 회중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므로 성찬의 상을 보호합니다. 장로는 설교단과 성찬의 상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배가 마치고 예배 인도자인 목사가 강단에서 내려오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이가 예배 인도를 위임했던 장로입니다. 그 장로는 모든 장로를 대표하여 목사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예배 인도를 성공적으로 잘 마쳤음을 감사하고,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준 것도 감사합니다. 물론, 기도를 인도하고 찬양을 인도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예배 전체를 인도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목사는 장로가 재차 내미는 손을 보면서 큰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목사는 그 악수례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으로 예배를 인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부족감에 주눅들 필요도 없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렇듯 장로는 목사와 함께 예배를 섬깁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장로를 ‘치리하는 장로’라고 부릅니다. 목사도 장로인데 목사는 가르치는 일을 겸하여 하기에 ‘가르치는 장로’라고 부릅니다. 장로도 가르칠 수 있지만 가르침에 근거하여 치리하기 위해 세움을 입었습니다. ‘치리’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장로는 다스리는 자입니다. 교회에도 다스리는 자가 있냐고 하면서 기분 나빠할지 모르겠지만 교회에도 다스리는 자가 필요합니다. 교회에는 세상적인 다스림이 아니라 영적인 다스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친히 다스리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가 계시기 때문에 지상의 교회에 주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자를 세우십니다. 그 다스리는 자가 바로 장로입니다.

 

장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치리하는 직분자입니다. 장로의 다스림은 말씀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는 목사와 한 팀이 되어야 합니다. 장로는 목사의 입으로 선포되는 말씀에 근거하여 교회를 다스려야 합니다. 장로의 다스림에는 권면뿐만 아니라 책망이라는 요소도 들어 있습니다(딛 1:9). 스트라스부르크의 종교개혁자 마틴 부써는 그의 책 『참된 영혼의 돌봄』에서 장로직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장로들에게 책망할 것이 없기를 요구하는 이유는 이 장로들은 감독들, 즉 일반적인 감독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목자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의 직무는 매우 중요하기에 그들은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다른 사람들이 흠이 없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봉사하는 사람들은 그 어떤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더 거룩하고, 흠이 없고, 모든 책망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 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부터 사도가 장로라는 말을 통해서 의도하는 바는 그들이 감독이 될 장로들로서 적당한 감독자들이며, 영혼들의 보호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양떼들의 목자들이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각 교회는 모든 목자들과 감독들 뿐 아니라, 영혼의 돌봄과 봉사직을 수행할 여러 장로들을 세워야만 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 성령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마틴 부써의 말처럼 장로는 치리를 위해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하고, 책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장로는 치리를 위해서 교인 가정을 심방합니다. 한국교회에서 교인 가정의 심방은 목회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로는 목회자들의 심방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장로가 치리를 위해서 해야 할 중요한 직무가 바로 심방입니다. 장로는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여 목사님을 통해서 선포된 말씀을 바로 받고 있는지, 그 말씀이 삶 가운데서 어떻게 열매 맺어 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처럼 장로가 심방을 통해서 교인의 가정의 영적인 형편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의 가정의 영적인 형편을 잘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교인들을 치리할 수 있겠습니까? 교인들의 삶에서 설교가 어떻게 열매 맺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목사의 설교에 대해 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심방은 장로의 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상에서 장로의 직분과 관련하여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보았습니다. 예배당에 장로석이 있는 것, 장로가 목사와 악수례를 하는 것, 장로가 심방하는 것을 통해서 장로의 역할을 살펴보았습니다. 교회에 장로가 없이는 신자들이 온전해질 수 없고, 봉사의 일을 하도록 구비될 수 없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 수 없습니다(엡 4:11-12). 장로는 교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장로입니다. 장로는 교인의 대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현합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보내어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 직분입니다(엡 4:7-12). 그 직분 가운데서도 장로의 직분은 예배와 치리를 담당하는 직분으로서 매우 중요한 직분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장로직이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오늘날 이 시대에 장로의 직분이 회복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교회 가운데 예배와 치리를 담당하는 장로의 직분이 속히 회복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교회로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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