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호 목사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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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교회론 특강
교회의 표상(2)

                                                 하나님의 성전

말씀:고린도전서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죤 하브릭(John Havlik)은 [인간지향적 전도]라는 글에서 교회를 이렇게 정의 했습니다. "교회는 결코 장소가 아니라 항상 사람이며, 결코 양의 우리가 아니라 양 자체이고 또 결코 거룩한 건물이 아니라 언제나 믿음의 모임인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 바로 당신이 교회이지 당신이 기도하는 그 장소가 교회가 아니다. 당신이 입고 있는 옷감이나 몸의 때가 당신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벽돌로 쌓아 올린 구조물이 교회가 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거룩한 곳이란 인간을 제외하고는 없으며, 혼을 제외하고는 인간 내부에 지성소란 없다."

   교회를 묘사하는 흥미로운 표상들 중에 또 하나는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전하면 우리는 흔히 교회 공동체가 모이는 장소인 '예배당' 또는 '교회 건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때 그 성전은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을 장막에 두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서 '거룩한 장막'이라는 뜻으로 '성막'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으로 '회막'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 광야에서 장막에 거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장막에 거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인간이 만드신 초라한 장막에 거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집을 짓고 살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장막에 계셨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은 피를 너무 흘렸기 때문에 합당치 않고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성막과 똑같은 개념을 가진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당신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하신 곳입니다. 이처럼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전이 그 의미를 상실해 버리면 그 성전은 이미 성전이 아닙니다. 그 실상을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성전에는 온통 양과 소의 울음소리로 가득하였습니다. 돈바꾸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향해 분노하셨습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양이나 소를 다 쫓아내시고 돈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비둘기파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처럼 성전이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구약의 이 장막과 성전은 하나의 모형에 불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성전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진정한 장막이 되셨습니까?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 하실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으로 우리에게 보이겠느냐?"이 때 예수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주님께서 수수께끼 같은 이 말을 하셨을 때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헤롯 성전)은 40년 이상 걸려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전을 사흘 만에 일킨다고 하니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이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었습니까? 요2:21절에 보면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니라." 즉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헤롯 대왕이 세운 그 건물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야기 한 그 말씀의 뜻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기가 곧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이 성전이 아니고 내가 성전이다."고 하신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참된 성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참된 성전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던 성전의 의미에 대해서 정확히 알 때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은 그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이스라엘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해 주신 표현들을 빌리면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그곳에 두신다"고 했습니다. 곧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희 중에 행동하고, 가르치고, 너희를 인도할 것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잘 구현해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신데 우리들 가운데 오셔서 우리들 가운데 함께 계심을 보이셨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쓰던 말 한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에는 더 이상 그것을(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다른 건물로 보여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성전이 의미하고 말하던 바를 다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 즉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면 그것은 사실상 사람들이 성전을 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헤롯 성전을 허는 것이 성전을 허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 그것이 성전을 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지 3일만에 부활하셔서 그것을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전이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이제 승천하신 다음에 하늘이라는 곳에 가 계십니다. 그러나 그가 이 땅 위에 당신의 몸을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곧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위에 예수께서 계실 때 그의 몸이 성전이었다면, 우리들, 즉 우리 교회, 곧 그리스도의 공동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성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이 세상에는 어떤 건물도 성전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가도 성전은 없습니다. 또 이 세상에 어떤 아름다운 건물을 세워 놓아도 그것은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은 오직 우리들 자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입니다. 곧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성전이라고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가 마음대로 살아도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통해 성전됨이 드러나도록 살아야 합니다. 곧 정말 성전다운 모습이 우리 가운데서 드러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위해서 뚜렷이 구별되는 그래서 하나님이 이 가운데 계시겠다고 한 그 의미가 분명히 들어날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또한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들어나지 않는다면 이 공동체는 이미 교회로서 그 의미를 상실 한 것입니다. 곧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우리와 우리 공동체를 멸하십니다.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잘 드러낼 때 우리 공동체가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를 향하여서 주님께서 너희가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당 가운데서 함께 계신다는 그런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에 모여 있을 때나 각자 집에 흩어져 있을 때나 모두 교회입니다. 우리 각자가 집에 가서 활동할 때나, 직장에 가서 활동 할 때도 한결 교회로 존재합니다. 한결 교회는 이 예배당(건물)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임 가운데, 우리가 흩어져 활동하는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렇게 교인들로서 서로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갈 때 그것이 한결 교회인데 거기에서도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 것이 드러나야 합니다. 성전의 참 의미, 하나님이 우리 공동체 가운데 계신다는 것이 잘 드러나야 합니다. 그럴 때 성전으로서 곧 교회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우리의 관계 가운데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분들이 우리를 보면서 "아! 하나님이 당신들 가운데 계시군요, 정말 그렇군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들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뿐만 아니라 더 구체적인 적용을 하나 더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6:19절 말씀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을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이라고 합니다. 곧 우리 각자의 몸도 성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관계가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구체적인 삶속에서 내가 성전됨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가?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하게 우리를 성전답게 주님 앞에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각자 각자가 우리 몸을 사용했을 때 이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전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공동체를 향하여서 성전이라고 하시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예배당을 아름답게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는 성전 건축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예배당 건축, 교회당 건축이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성전 건축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공동체답게 잘 세워져 가는 것,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잘 나타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성전 건축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진력해야 합니다. 이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분명히 자신이 성전됨을 기억하고, 성전답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잘 드러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에베소서2:20-22절에 보면 이 성전은 자라간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가 성전이므로 우리가 신앙 안에서 성장해 갈 때 성전이 자랍니다. 성전이 성장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모퉁이 머릿돌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입니다. 모퉁이 머릿돌을 기초로 해서 건물마다 연결하여 성전이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성전이지만 아직 아닙니다. 곧 이미 우리가 성전이지만 이 성전이 완성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있는 교회들이 다 하나요, 그들이 다 합하여서 주의 성전이 되어 가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우주적인 교회라고 합니다. 이 성전의 완성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사랑하셨고, 그 성전이 본래의 뜻을 잘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동일한 뜻을 두고 계십니다. 우리의 몸이 성전입니다. 우리들의 공동체가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성전으로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각자 개인과 우리 공동체 가운데 주님이 계신다고 말할 수 있도록 힘써 주님의 주되심을 드러내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로 온전히 세워져 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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