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호 목사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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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학기 특강

교회의 회원

말씀:로마서 6:1-23

 

우리는 지난 시간에 교회의 능력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교회의 회원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로마서 6장에서 가르치는 중요한 도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룩한 삶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지배권 아래 있지 아니하고 새 생명을 가진 사람임을 의미하며, 또 그렇게 해서 우리는 ‘칭의’(justification)라는 것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그 공의로우신 법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게 되었고, 우리의 신분이 변화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위치에서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입니까? ‘헌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 칭의를 받았다면 그 다음에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우셔서 마침내 거룩한 ‘성화’(sanctification)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화란 그저 우리 자신이 사망에서 면제되었다는 사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표 곧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계획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충일한 영광의 현현을 드러내는 것을 이루기까지 계속 전진해 나가는 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성화의 최종적인 완성이 ‘영화’(glorification), 즉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칭의에 의해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아서 하나님께 헌신하게 되고, 헌신함으로써 성화의 길을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데서부터 신앙의 길을 출발하여 계속 하나님의 그 의로운 나라를 추구해 나가고, 결국 영원한 생명으로 그 열매가 드러나는 것이어서, 이처럼 헌신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헌신은 구원을 이루는 출발점임

 

칭의란 죄 아래 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서 우리의 신분이 거룩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것을 말합니다. ‘이신칭의’ 이것이 우리가 고백하는 복음입니다. 로마서 6:7절의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는 말씀이 바로 그러한 의미이며, 로마서 6:18절에서도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 존재함

 

우리가 그러한 거룩한 위치에 도달했다는 것은 죄라는 영역이 있어서 그 영역 가운데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리에서 우리를 각성시켜 십자가의 그 크신 공효를 통해 의의 자리에다 옮겨 놓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이러한 거룩한 위치에 서 있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는 그 의의 자리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최종적으로 영광된 구원의 최종점 곧 극치에이르게 될 때까지 계속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내가 그러한 거룩한 위치 곧 의의 자리에 와 있는가?’하는 실제적인 내용을 우리 안에서 발견해야 됩니다. 죄의 지배권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효로 그러한 죄책이 다 벗겨져서 새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새 삶이 시작되었다면 실질적으로 그러한 삶의 증표가 계속 우리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죄의 자리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그런 정도의 의식에서 벗어나 더 적극적으로 죄를 극복하는 현저한 삶의 모습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본질적으로 죄의 종이 아니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될 뿐만 아니라, 죄의 종이 아니라면 더 이상 날마다 죄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실제적으로 의의 자리로 와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제 죄에 대해서 무언가 대항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죄에 대해서 마음이 쏠리며, 죄에 대해서 향수를 느끼고, 또다시 죄에 빠지게 된다면 무엇인가 잘못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헌신한 성도는 적극적으로 죄를 극복해 나가야 함

 

그러므로 전에는 죄라는 것 때문에 내가 자꾸 넘어지고 그 안에 얽매여 벗어나기가 힘들었으나, 이제 거기에서 벗어 나왔다면 그 죄를 이길 수 있는 어떤 실제적인 삶과 능력이 내 안에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확인하는 데 있어서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로마서 6:13절을 보면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께 철저하게 드려져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참으로 의로운 자리에 와 있다고 한다면 즉 우리가 산 자라고 한다면 로마서 6:11절에서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한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는 다시는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 역시 옛 사람의 사욕을 좇아 살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죄가 나의 왕노릇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의로운 삶을 추구해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삶이란 13-14절에 있는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리하면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이제 우리를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싸우기 위해서는 다시는 죄 아래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강한 결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물론 죄 아래 빠져 있으면서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상대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림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자신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죄를 의식하지 못하면 죽어 있는 사람임

 

내가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은, 내가 죽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즉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죄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죽은 자의 특성은 전혀 의식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어떤 의식이 있어서 이성적인 활동과 판단을 한다거나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를 따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은 그게 죄인지 아닌지 조차도 몰랐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냥 막연히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단순히 자기 생각에 이 정도면 옳겠다고 살아갈 뿐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떤 배를 타고 있으면서 그 배가 지옥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그 안에 사는 동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하루 세 끼니를 먹는 데는 문제가 없으므로 그저 살만하다고 여기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문학을 한다든지, 예술을 한다든지, 선을 행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얼마든지 그런 일들을 아무런 문제없이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은 누구나 그 안에서 살길을 찾고 열심히 노력하면 큰 탈없이 잘 살게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얼마든지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 종국은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그 배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 안에 있는 것이 참 편하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 죽음에 이를 것에 대한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배 안에 있다는 것은, 비록 산 것 같으나 그것은 죽은 사람과 꼭 같습니다. 단지 현재 그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살기 때문에 이 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며, 전혀 의식을 하지 못함으로 죽음과는 상관없는 듯이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어느 날 전혀 새로운 의식이 발생합니다. 그 동안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이렇게 죄 가운데 살다가는 죽겠구나. 이렇게 살다가는 멸망당하기에 딱 알맞겠구나!’고 하는 두려움이 일기 시작합니다. 이런 의식이 바로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의 증표입니다. ‘이 자리에 있다가는 틀림없이 죽고 말 터인데 안되겠다. 벗어 나야겠다’고 하는 각성은 바로 살아 있는 사람만이 가지는 인생의 두려움(angst)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점이 발견됩니다. 전혀 죽음에 대하여 의식을 하지 못하는 죽은 자와는 달리, 산 자는 살아 있는 활동력이 있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그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체가 곧 살아 있다는 증표입니다. 그러면 산 자라고 했을 때, ‘누가 과연 살아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 당면한 문제가 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각기 예술적 활동도 하고, 문화적 활동도 하며, 죽음과 삶에 대한 철학적 활동을 모두 하고 사는데, 그들이 모두 성경에서 말하는 살아 있는 사람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2. 새 사람의 의미

 

성경에서 ‘산 자’ 또는 ‘새 생명’, ‘새 사람’이라고 할 때는 적어도 사람다운 ‘이성’을 정상적으로 발동할 수 있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자기의 이성을 정상적으로 발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각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자각 능력이 있어서 어떤 의식에 도달하고, 이성의 판단도 하며, 감각 기관의 작용 등이 있어 인격체로서의 활동은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 사람들도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생명이 있다’고 할 때는 그와 같이 그저 생리적인 의식 작용을 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정확하고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영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망을 향해 줄곧 달려가는 배 안에 타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그 안에서 사소한 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어 보았자 그 종국은 사망일 뿐입니다. 비록 그 안에서 아무리 잘 살고 바르게 행한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사망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성적 판단을 하되 내 삶의 종국이 어디인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오직 영혼의 정상적 기능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기능이 있어야 생명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물론 일반의 사람들에게 영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영혼의 기능이 참으로 살아 있느냐 하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역시 모두 인격을 발현하여 인격적인 활동도 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기도 하지만 여기 간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차이가 바로 이 영혼의 기능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은 영적인 기능이 달라짐

 

이 영혼의 기능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곳은 고린도전서 2장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서는 ‘신령한 사람’(15)과 ‘육에 속한 사람’(14)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사람’이라는 말은 ‘성령에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고린도전서 2:12-14절에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으로 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신령한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깊은 지식까지도 알 수 있는 사람으로서(10) 12절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 지혜란 곧 구원의 도리를 알게 하는 것으로, 그것은 곧 성경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신령한 사람’은 사람의 지혜로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일 곧 구원의 도리를 분별하여 알고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14절에 나오는 ‘육에 속한 사람’은 이러한 구원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 곧 성령의 일을 전혀 받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의 진리가 미련하게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육에 속한 사람’이라는 말을 가리키는 ‘yucikov" 프쉬키코스’라는 말속에는 일반적으로 정신적인 활동을 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성령의 일을 알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정신적인 활동을 하고 고상한 인격을 발휘한다 할지라도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일은 그러한 정신적인 활동을 통해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일은 오직 성령에게 속한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우리로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을 쫓아 행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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