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봄학기 교회론 특강] 교회의 본분

by 손재호 on Apr 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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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학기 특강

교회의 본분

말씀:출애굽기 19:4-6

 

우리는 지난 시간에 교회의 열매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 가야 합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교회의 본분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1. 이스라엘 교회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제1세대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에 멸절 된 후 그 후손들인 제2세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앞에 두고 그동안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인도하셨고, 그들에게 위탁하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기 위해서 모세가 강론한 것을 기록한 책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신명기는 두 부분으로 나누이는데, 신명기 28장까지는 제1세대 이스라엘의 행적에 대하여 그 역사를 되새기고 있으며, 29장부터는 이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서 있는 제2세대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명기 29:1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왕에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자기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①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실 것과 ②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선포하심과 ③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임을 명시하고 계심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관계를 근거로 하여 이스라엘을 향하여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앙하고 의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신앙을 지킴으로써 우상을 가까이 하지 말고 철저하게 배격할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9:18-21절을 보면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날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위로하여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을 강퍅케 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을 멸할지라도 평안하리라 할까 염려함이라.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로 그의 위에 붓게 하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로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필경은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시되 여호와께서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구별하시고 이 율법 책에 기록된 언약의 모든 저주대로 그에게 화를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신명기 29:25-26절에 보면 그 무리가 자기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한 까닭에 온 땅에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임하게 되었다고 세상 사람들이 말할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한 까닭이라”(신 29:25-26).

 

한편, 그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정당하게 섬기지 못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노예로 있던 애굽에서 구속하여 내신 후 자유인으로서 가나안에 불러들이신 것은 이스라엘이 독특하고 고상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그 목적을 상실하고 하나님을 거역한다면 구태여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를 세우신 목적

 

성경은 출애굽기 19:4-6절에서 이스라엘 교회가 가나안에 들어가 수행해야 할 사명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4-6). 여기서 보면 그 사명이란 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이며 ② 이스라엘은 세상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될 것과 ③ 이스라엘은 거룩한(세상과 구별된)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로서 세상에 복을 선포하는 제사장이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어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건설하라’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시대적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그 내면에 깊이 깔려 있는 사상은 ‘이스라엘의 존재’에 대한 언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은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특별히 불리움 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사명을 주시기 전에 ‘이스라엘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엄격하게 세상 민족들과 구별지어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고 하신 말씀 속에서 우리는 애굽에서 펴신 하나님의 크신 권능의 손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온 세계가 다 하나님의 소유이지만, 특별히 구별하여 이스라엘만을 하나님의 유일한 소유로 삼으시겠다고 선언하셨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소유라 한다면 하나님께서 보물처럼 귀하게 여기신다는 의미로서,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이스라엘과는 각별한 관계를 맺어야 했는데, 그 관계가 바로 언약 관계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하나님과의 관계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언약’이란 서로의 인격을 인정하고 그 인격을 바탕으로 신뢰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이스라엘을 자신과 동등하게 인격적인 대우를 하시고 그 인격을 바탕으로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파격적인 대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과 동등한 위치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하여 언약을 맺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이스라엘이 서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처럼 환대하시는 그 자체가 바로 은혜스러운 자리임에 틀림이 없지만,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이스라엘이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은 당시 세상 문화를 대표하는 가나안 문화를 철저하게 괴멸시키고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불리움 받았는데, 과연 이스라엘의 본질이 그만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하여 면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사명 수행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를 판가름하기 전에 이스라엘의 본체론(Ontology)적 존재의 의미, 곧 자질에 대하여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교회의 존재의 의미

 

여기에서 우리가 잠시 되돌아보아야 할 것은 제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에서 왜 그렇게 몰살을 당하게 되었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각별한 권능을 체험하고 해방된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라는 사명을 부여받고 위용을 갖추어 가나안으로 진군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광야에서 유랑하다가 모두 멸절 당했던 역사적 사실 속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문제의 해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 기관임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처음에 도착한 곳은 시내산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법을 제정해 주십니다(출 20-23장). 그것을 우리는 율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세울 나라의 성격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스라엘을 통치하실 이념을 먼저 선포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증표로서 성막을 짓게 하셨고, 그 성막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친히 다스리실 것과 인도하실 것을 자세하게 언급해 주셨습니다(레위기).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모시고 모든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한 제도가 바로 성막을 중심으로 한 제사 제도입니다. 이러한 제반 준비를 모두 마친 후에 하나님의 인도로 이스라엘은 시내산을 떠나 가나안으로 진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막상 가나안 입구에서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후 가나안에 입성할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참조. 민 13장). 오히려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가나안으로 진군해야 할 중대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 그 사명을 포기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불신앙에 따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처럼 중요한 위치에서 하나님을 배신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문화적 사명에 대한 각성이 박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상태로는 그들을 가나안에 인도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를 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새롭게 가르치시기로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는 동안 항시 새로운 길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한 지역에서 장시간 머무르기는 하였을지라도 항상 새로운 지역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계심을 성경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을 떠날 때는 먼저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운 구름(쉐키나)이 성막을 떠나 앞서가면 그들이 다 짐을 거두어서 그 뒤를 좇아갔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전에 갔던 곳으로 가시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길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은 ‘교회란 항상 하나님에 대하여 새로운 지식을 갖고 새롭게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아야 할 것’에 대하여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그분이 누구이신가?’를 날마다 새롭게 알아 갈 것을 바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지 못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왕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함

 

그래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제2세대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항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과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 한다면(그들이 진정 하나님의 유일한 교회라면) 날마다 자기들의 삶 가운데서 새롭게 등장하시고, 새롭게 나타나시며, 새롭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 나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신지식이 정체되지 않고 점점 새로워지고 풍성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2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시킨 이유입니다. 그러한 백성이어야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사명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시어 하나님의 통치가 구현되는 나라를 건설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항상 새롭게 인도해 내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식이 없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건설하시고자 하시는 나라를 그들이 건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아니라면 이스라엘을 구태여 애굽에서 불러내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나라를 건설하지 못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존재할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바르지 못하다면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세우게 될 나라 역시 의미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로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신명기 29장에서도 똑같은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9:18-21절에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날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위로하여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을 강퍅케 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을 멸할지라도 평안하리라 할까 염려함이라.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로 그의 위에 붓게 하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로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필경은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시되 여호와께서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구별하시고 이 율법책에 기록된 언약의 모든 저주대로 그에게 화를 더하시리라”고 모세는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불리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9:13절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왕에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자기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애굽에서 나온 제1세대 이스라엘처럼 제2세대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사명을 소홀히 한다면 의당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출애굽기 19장에서 제1세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교회의 본분이 무엇임을 알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로 불리움을 받은 자로서 그 본분을 잘 감당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교회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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