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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신학과 신앙의 요체

문병호(총신대학교 조직신학)

 

1. 들어가는 말: 개혁주의, 100년의 도전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자주 이 말은 “칼빈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개혁주의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라는 모토로 집약된다. 오직 성경 안에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모토가 다 들어 있다. 칼빈은 성경의 가르침에 가장 충실할 때, 그것이 가장 신학적이라고 여겼다. 그의 신학은 성경에서 시작되고, 성경에서 머문다.

 

칼빈의 영향 가운데,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복음”만을 “성경적 복음”이라고 보았다. 이는 “성경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매우 열린 입장을 지니고 “성경적 복음”을 “성경의 복음”에 국한하지 않는 포괄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와는 분명 대조된다.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비록 그들이 “복음주의”라고 자처하는 경우에도—“복음”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복음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개혁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참 신학(theologia vera)과 참 경건(pietas vera)을 엄밀하게 추구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보수주의” 혹은 “근본주의”라는 이름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개혁주의가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고유한 기원(origo)과 근원(fons)에 충실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혁주의가 “근본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추호도 타협하지 않고 참 근본를 교회의 서고 넘어지는 조항으로서 견지해 왔기 때문이다.

 

개혁주의의 이러한 보수적, 근본적 성향은 단지 성향에 그치지 않고 신학적 정밀성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현저한 예를 16세기 말 이후부터 칼빈의 후예들 즉 칼빈주의자들에 의해서 수립된 개혁주의 정통주의(Reformed Orthodoxy)”에서 발견하게 된다.

 

과연 “우리의 신학자(theologus noster)”라고 불릴만한 칼빈과 뚤레틴, 바빙크, 카위퍼, 홧지, 워필드 등은 단지 시대적 변증을 수행한 한시적인 신학을 한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를 충실히 계승 ‧ 심화 ‧ 발전시켜 기독교 교리를 가장 체계적이면서도 부요하게 만들었다. 개혁된 교회가 그러하듯이, 개혁주의도 항상 개혁되어져야 한다(reformanda).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회고하면서 다지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전망하면서 내딛는 자리이기도 하다.

 

역사는 시간의 길이가 항상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국교가 된 백년 후 과연 교회는 어떻게 변해갔는가? 제네바는 과연 칼빈의 사후 100년이 되었을 때 칼빈의 제네바다웠는가? 오히려 칼빈보다 장자크 루소의 인본주의 철학이 더욱 횡횡하지 않았던가? 19세기 말 그 순수한 신앙과 삶의 개혁을 추구했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백년 후의 모습, 그리고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국개혁교회는 100년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다윗과 솔로몬의 경건도 100년이 가지 못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역사는 여러 부정적 선례를 보여주지만 우리가 새겨야 할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은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초대교회 백년의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말씀의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분명하게 믿고, 모이고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무엇보다 성령의 감동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초대교회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가장 뚜렷한 푯대를 바라보게 된다.

 

개혁주의는 “모든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믿는다(딤후 3:16). 그리고 우리가 “배우고 확신한 일”(딤후 3:14)이 성경의 진리이며 성경적 진리라는 것을 고백한다. 본고는 개혁주의의 이러한 본질에 주목하여 그 역사적 특성을 우선적으로 고찰한다.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주요한 교리 중심으로 전개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자리를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일별함으로써 확정한다.

 

2. 개혁주의와 개혁신학

 

2.1. 정의적 규정: 개혁주의의 객관성

 

“개혁주의(Reformed)”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다채롭다. 최광의(最廣義)로 이를 이해하는 입장은 그것이 성경적 진리와 정통 신학 그리고 삶을 망라하는 개념이라고 본다. 개혁신학자 오스트헤번(M. Eugene Osterhaven)은 그의 책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에게 “개혁주의(Reformed)”는 고대 이스라엘과 초대 교회의 고난 받는 신앙을 마땅히 감사하고, 어거스틴과 루터와 함께 서서 죄와 주권적 은혜에 관한 교리들을 견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전 생애를 복종시키고, 성령을 은사와 은총의 유일한 근원으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칼빈과 그 후예들에 관련된 언급이 없는 것은 이를 당연히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주의를 광의(廣義)로 이해하는 경우, 자주 이는 종교개혁(Reformation)과 동일시된다. 저명한 역사학자 오버만(Heiko A. Oberman)은 개혁주의를 종교개혁의 한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칼빈의 종교개혁을 루터의 종교개혁과 도시 종교개혁을 잇는 제3기 형태로 여기고 이를 “피난민 종교개혁(the Reformation of the Refugees)”이라고 불렀다. 오버만은 종교개혁의 본질을 “권력과 허장성세(虛張聲勢)로부터 벗어나서 설교와 기도로 나아가는 전환”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칼빈은 이러한 “전환”을 신학적으로 승화시켜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법으로 여기고 이로써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풀어내었다는 점에서 가히 새로운 단계의 종교개혁을 수립했다고 보았다.

 

오버만이 이렇듯 개혁주의를 종교개혁의 일부로 여겼다면, 오스트헤번은 역으로 종교개혁을 개혁주의의 일부로서 파악했다. 오스트헤번의 다음 정의는 이러한 경향을 드러낸다.

 

종교개혁은 단순하나 고급스러우며, 사도적이고 성경적인 종교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종교는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종교개혁은 기독교를 그 본래적 순수함 가운데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초와 지지도 없이 수 세기 동안 붙들고 왔던 신앙과 삶을 제거하려는 시도이다.

 

최광의, 광의의 이해가 있으나, 대체로 개혁주의는 협의(俠義)로 이해된다. 이 경우 개혁주의는 루터란과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칼빈과 그를 잇는 후예들의 신학 즉 “칼빈주의”를 지칭한다. 이런 입장을 개진하는 학자들은 “칼빈주의”라는 이름으로 쯔빙글리와 불링거의 쮜리히 종교개혁과 오이콜람파디우스의 바젤 종교개혁 등 스위스 종교개혁을 아우르는 경향이 있다. 이는 맥닐(John T. McNeill)이 지적하였듯이, 스위스의 도시 종교개혁자들이 성경, 언약, 성령, 성례, 권징 등을 다루면서 칼빈 이전의 칼빈주의의 특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칼빈주의”로서 개혁주의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그것은 “칼빈의 유산”을 의미한다고 볼 것이다. 여기에서 널리 인용되는 칼빈신학자 펄만(Paul T. Fuhrmann)의 말에 주목하자.

 

칼빈의 진정한 유산은 실로 구조가 아니라 방법에—사람, 그리스도, 믿음, 세계, 성경, 종교, 삶 등 모든 것들을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애쓰는 방법에 있다.

 

여기에서 펄만은 개혁주의의 본질을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곧 ‘하나님의 자기 세계관’에서 찾고 있다.

 

우리가 개혁주의를 “칼빈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칼빈의 사상이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세계관’을 창조, 계시, 구원의 전 영역에서 가장 뛰어나게 추구 ‧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life-view, world-view). 그것은 관점 자체를 하나님으로부터 찾고, 관점에 따른 사유 즉 ‘사상’ 자체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칼빈주의에 관한 고전적 명저를 남긴 미터(H. Henry Meeter)는 이를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언급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의 중심 사상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상이다(The central thought of Calvinism, therefore, the great thought of God).

 

로마 가톨릭이 교회를 위한 신학을 했고, 루터가 성도 개인을 위한 신학을 했다면, 칼빈은 하나님을 위한 신학—곧 하나님의 신학을 했다. 칼빈은 자신의 신학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 개개인을 위한 하나님의 신학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대한 유산으로 남겼다. 칼빈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던 밀러(Charles Miller)는 다음 말로써 이러한 점을 암묵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칼빈주의의 영향은 로마 가톨릭과 같이 교회적이지 않으며, 루터와 같이 개인적이지 않으며, 그것은 주로 이념적(ideological)이다.

 

여기에서 “이념적”이라는 말은 하나님 자신에 중심을 두고 그분의 주권을 모든 것의 불변하는 가치로 여기는 칼빈주의의 근본 특성에 충실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칼빈주의자들(Calvinists, Calvinians)은 ‘칼빈의 사상’이 아니라 칼빈에 의해 조명된 ‘하나님의 사상’을 계승하여 체계적으로 심화시킴으로 역사상 개혁주의 곧 칼빈주의를 수립하였다.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의 일체성(unity)과 연속성(continuity)은 그들이 공유한 ‘하나님 사상’ 그 자체에 객관적으로 놓여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대상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방법’에 있어서까지 “하나님의 주권(God’s sovereignty)”을 본질로 삼고 우리의 주관을 배제하는 칼빈주의의 객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칼빈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Nostri non sumus, sed Dei)” 라는 자기부인(自己否認)에 “기독교 철학(philosophia Christiana)”이 가장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의 근저에는 칼빈의 ‘객관성’이 놓여있다.

 

칼빈의 “나”는 불가분리하게 그의 교리에 부착(付着)해 있다. 루터의 경우, 주관적 요소는 종종 어떤 진술에 나타난 객관성 요소를 변모시킨다. 정반대로 칼빈의 경우, 객관적 요소는 주관적 요소를 압도한다. 그러나 주관적 요소를 압도함으로써, 객관적 요소는 주관적 요소의 실체를 보존한다.

 

이러한 ‘객관성’으로 말미암아 ‘칼빈의 칼빈주의’와 ‘칼빈주의의 칼빈’은 시간을 뛰어 넘어 유기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주의”에 대한 미터의 다음 정의는 이러한 이해를 반영한다.

 

칼빈주의는 존 칼빈으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온 사상 체계에 적용되는 이름이다. 그는 이 체계에 대한 주요한 설명자로 인식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체계에 속한 모든 사상들의 원(原) 창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칼빈주의는 단지 의견들을 집성(集成)한 것이 아니라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에 의해서 주장된 전체 개념들의 총합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통된 뿌리를 가진 하나의 근본원리를 따르는 유기적 전체이다.

 

여기에서 미터는 개혁주의가 칼빈이 여전히 숨 쉬는 칼빈주의자들의 사상 체계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터가 말하는 “유기적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근본원리”는 무엇인가?

 

2.2. 개혁주의 근본원리

 

미국 개혁주의 신학의 대변자 리이쓰(John H. Leith)는 개혁주의를 “고전적 개혁신학, 1517-1564,” “개신교 학문주의, 1564-1755,” “계몽주의와 19세기의 위기, 1775-1918,” “새로운 종교개혁 신학, 1918-1955,” “신학적 수수께끼와 경험주의 시대, 1955 이후”로 나눈다. 이러한 구분법은 그리 생소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칼빈의 신학과 이를 토대로 베자(Theodore Beza)와 뚤레틴(Francis Turretin)을 위시한 칼빈주의자들이 종합화 ‧ 체계화한 신학을—이는 “개혁주의 학문주의(Reformed Scholasticism),” “개혁주의 정통주의(Reformed Orthodoxy),” “정통 칼빈주의(Orthodox Calvinism)” 등으로 불린다—구분하는 것은 통상적이다.

 

이러한 리이쓰의 구분은 시대별로 나타나는 신학적 차이에 근거하고 있다. 대체로 개혁주의의 본질, 원리, 특성 등을 논할 때 학자들은 그 신학적 고유성에 주목하고, 거의 예외 없이 칼빈의 신학에 그 연원을 문의(問議)한다.

 

원전을 중심으로 기독교 전 역사를 교리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 역작을 쓴 펠리칸(Jaroslav Pelikan)은 칼빈의 신학을 다루면서 “말씀과 하나님의 뜻,” “말씀과 성령,”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 “감추어진 그리고 계시된 영원한 하나님의 뜻,”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제하에 지면을 다수 할애하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개혁주의의 신학적 본질이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과 순종’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표명하고 있다.

 

펠리칸의 이해는 바빙크(Herman Bavinck)에 있어서 좀 더 신학적으로 기술된다. 바빙크는 루터주의가 인간론적이라며 개혁주의는 신론적이며, 루터주의가 칭의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으로 여긴다면 개혁주의는 선택을 교회의 심장(cor ecclesiae)으로 여긴다고 지적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혁주의에 속한 사람은 회고함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작정에 돌리고 그 원인을 추적하며, 전망함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에 부속시킨다. 루터주의에 속한 사람은 사실 자체에 만족하고 믿음으로 동참하게 된 구원을 만족하는데 그친다.

 

개혁주의가 사실 자체보다 하나님의 뜻을 강조한다는 바빙크의 관점은 오스트헤번을 통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 성령을 통하여 역사상 구현되는 제 형태들을 언급함으로 전체 신학의 체계를 수립하고자 한다. 오스트헤번은 창조, 구속, 교회, 국가, 삶이 모두 하나님의 작정(decretum)과 정하심(ordinatio)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이를 전체적으로 계시하며, 그것이 언약 가운데 특징적으로 전개된다고 본다.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영원한 작정을 이루는 경륜과 섭리는 아들의 구원에 있어서 절정에 이른다. 삼위 하나님은 만세 전에 구원을 협약하셔서 구속자는 제2위 성자 하나님, 구속방식은 그의 대속, 구속백성은 선택으로 정하셨다. 이러한 구원협약(pactum salutis)이 역사상 성취되는 경륜이 언약이다. 칼빈과 뚤레틴은 자신들의 대작(opus magnum)에서 언약을 신구약 전체로 이해한다. 개혁주의를 그 신학적 특성에 관련해서 말할 때 “언약신학”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독교 강요에서 언약신학에 대한 칼빈의 입장이 전개되는 신구약에 관한 장들은 기독론 안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칼빈은 신구약이 그 실체에 있어서는 동일하나 경륜에 있어서 다양하다는 원리를 분명히 제시한다. 신구약의 실체는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가 말씀의 실체라는 측면에서 칼빈은 율법과 복음을 이해한다. 율법은 언약의 법으로서 약속을 담고 있고 복음은 그 약속을 성취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소식으로 정의된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구약, 복음과 율법의 언약신학적 이해는 “율법의 중보자 그리스도(Christ the Mediator of the law, Christus mediator legis)”라는 개념 가운데 뚜렷이 부각된다. 멀러(Richard A. Muller)는 이 부분에 착안하여 칼빈과 칼빈주의의 연속성을 예정에 대한 칼빈의 기독론적 이해에서 찾았다. 멀러는 중보자 그리스도의 신인양서의 위격적 연합이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을 성취하는 사역을 이루기 위하여 필연적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는 점을 칼빈의 언약신학을 다룸에 있어서 가장 주목해야 한다고 하였다. 존 녹스는 예정에 대한 언약신학적 입장을 전개함으로 장로교의 신학적 기초를 놓았다. 이러한 입장은 개혁주의 신경이나 고백서 등에서 현저하게 전개되었다.

 

칼빈의 언약신학은 그의 신학체계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적-구원론적 원리로서 읽어야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후대 언약신학자들에게 미친 칼빈의 영향을 파악할 때 그 실체가 온전히 파악된다. 근자에 언약신학의 조건성(conditionality)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칼빈에게는 이러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그가 후대의 언약신학에 미친 영향을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비록 그 성격은 다르지만 칼빈의 언약신학이 대륙과 영국의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칼빈은 속죄론을 다루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공로가 언약의 두 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타락한 인류는 전적인 은혜로 인류와 언약을 맺으시고 택한 백성들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분명 그 선물은 그저 주시는 것이나 그저 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고통을 당하신 순종(obedientia passiva)과 율법을 모두 행하신 순종(obedientia activa)을 통하여 의를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친히 주님께서 언약의 당사자가 되셔서 아버지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그 의를 택한 백성에게 전가하심으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을 모두 성취하셨다. 이것이 새 언약 곧 피 언약이다. 이렇듯 칼빈에게 있어서 새 언약은 모든 언약의 성취로서 순종의 조건성과 전가의 무조건성을 모두 함의하고 있다. 그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의 성취며,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며, 성도의 구원의 성취이다. 그것이 율법의 약속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구약을 완성한 신약의 경륜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미터가 말한 “유기적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근본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로부터 이후 칼빈주의자들이 교리화한 성경 중심, 하나님 주권, 그리스도의 대속적 공로의 절대성, 성도의 감사와 책임이 모두 흘러나온다.

 

칼빈주의자들은 이러한 칼빈의 언약신학을 정치하게 심화 ‧ 체계화시키는 과정에서 교리의 보편성(catholicity), 신경화(confessionalization), 성문화(成文化, coedification)에 주력하였다. 칼빈 사후 18세기 까지 사조를 형성했던 정통 개혁주의는 특히 일반철학과도 교호적인 상관성을 유지하면서 교회의 신학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신학을 추구하였다. 특히 개혁주의 신경들이 앞을 다투어 제정되고, 대학교를 중심으로 학파가 형성되어 일군의 제자들을 양성함으로 말미암아 개혁신학의 영향력은 단지 교단이나 강단을 넘어서게 되었다.

 

개혁주의의 “하나의 근본원리”는 곧 성경이다. “언약”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경 자체를 전체로 함의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를 언약신학으로 특정할 때, 그것은 “sola Scriptura”의 원리를 되새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개혁주의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것은 그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극적으로 변증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출처] (펌)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 문병호

 

 

* 위 글은 총신대 신대원의 문병호 교수께서 작성한 글로써 2012년 7월 개혁주의 신학대회 발제 논문​이며, 개혁주의학술원에도 공개되어 있는 논문입니다. 문병호 교수께서는​ 현재는 십자가지기 교회를 담임하고 계신데 홈페이지 게시판에 등록된 자료를 무단으로 복제해가는 것을 금하고 있어 후반부는 삭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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