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호 목사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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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학기 교회론 특강


교회와 예배


말씀:시편 69:1-36


우리가 바른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건실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해 가기 위해서 살펴보아야 할 여러 문제들이 있겠지만 우선 기본적이고 초보적인 몇 가지 도리들에 대해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 중에서 ‘교회의 행로와 역할’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교회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앙하여 가는 근본적인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이 세상에 건설하신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를 통해서 이루시려 했던 모든 사역은 각 인생의 존재 의미와 그 근간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는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해서 면밀히 점검함으로써 우리는 교회의 한 지체로서 마땅히 깨닫고 있어야 할 하나님 나라의 경륜을 조망하게 되고, 그것을 기준으로 이 세상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정립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고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가 역사적으로 점유하는 위치와 또 이 시대 속에 있는 교회의 존재 좌표를 확인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점검될 때 교회가 가지는 독특한 사명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며, 나아가 우리 각 사람이 교회의 지체로서 가지는 인생의 본분에 따라 그 삶을 바르게 경영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상 교회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어야 할 요소는 ‘예배’입니다. 교회를 다른 말로 ‘예배하는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은 교회의 기본적인 생명력의 발휘가 예배를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배를 통해서 교회의 성격과 존재 의미를 드러냅니다. 예배는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진수를 맛보고 생명력을 얻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따라서 교회의 여러 요소들을 점검하기 전에 예배의 기초적인 내용에 대하여 시편 69편을 통해서 몇 가지 점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배에 임하는 자의 각성


시편 69편은 전반부인 1-29절은 다윗이 하나님께 탄원하는 기도이고, 후반부인 30-36절은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듣고 다윗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는 권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이고 자신과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성도가 각성하게 된 삶의 목표 또는 그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다윗은 그의 생애를 종합해 볼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명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거룩한 나라 안에서 자신의 본분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고, 그처럼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라고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다윗이 작시(作詩)한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부하고 하나님과 나누는 사랑의 관계를 깊이 있게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시편 69편의 전반부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에 대하여 각성한 근본적인 내용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함


시편 69:1-2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인의 처지가 어떠함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의 내용은 구약 선지자들이 선포한 메시지의 중심 내용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거듭남’에 대하여 선포하고 있는데, 이 예언의 주제는 ‘요나의 스올의 경험’ 속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음 속에 던져진 요나가 자신의 사명을 각성하고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게 되는 스올의 경험은(요나서 2장)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와 역사적 사명을 각성함으로써 거룩한 나라를 건설할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 69편 1-2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은 요나의 스올의 경험 속에서의 탄원과 내용이 같다는 점에서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윗이 물에 빠져 있다고 한 것은 자신의 죽음의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물’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일반적으로 죽음을 상징합니다. ‘깊은 수렁’ 또는 ‘깊은 물’ 등은 사람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상태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물이 죽음을 상징한다는 개념은 홍해 사건에서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통과한 사건은 바로의 종으로 있던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이 홍해 앞에 도달했을 때에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서 죽음이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죽음 앞에 직면해 있을 때 하나님은 가로막힌 홍해를 마른 땅 같이 통과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이 홍해 사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이스라엘이 모세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고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죽음을 통과하여 거듭났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2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바로의 종된 위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전환되는 전격적인 신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은 자신이 빠져 있는 상황이 마치 깊은 죽음 속에 던져져 있다고 함으로써 홍해 사건과 같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처한 이 죽음의 상황은 단순히 그 자신이 영적으로 곤고한 상태 아래 있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경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그것은 시편 69편의 정황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의 정황과 유사하다는 관계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편 69:9절에서 다윗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탄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책망하신 사건(요 2:14-17) 속에서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 2:17)고 한 말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메시아이신 증표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하신 말로 인해서 유대인들의 미움을 사고 그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된 일로 역사상에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69:21절에서 다윗은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라고 그가 처한 곤고한 모습을 탄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일어난 사건이기도 합니다(마 27:34, 48, 눅 23;36, 요 19:29). 이처럼 다윗의 경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까닭에 시편 69편을 ‘메시아의 시’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관계를 연관지어 볼 때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들어 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물이 내게 넘치나이다”(시 69:1-2)라는 다윗의 탄원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이 탄원은 하나님 앞에서 마치 죽음에 처한 것과 같은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탄원은 요나에게 와서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 속에서 단절되고 새 이스라엘, 곧 영적인 이스라엘이 탄생하게 됨을 예표하는 특별한 경험으로 확대됩니다. 이 사건은 진정한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리고 새 생명으로 부활하시어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세우심으로써 구원을 완성한 사건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이와 같은 내용의 죽음을 통과하여 진정한 이스라엘로서 거듭나게 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최초로 담고 있는 사건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홍해를 통과한 사건은 종 되었던 애굽의 땅에서 자유의 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완전한 증표였습니다. 이 홍해 사건의 의미와 다윗의 고백 그리고 요나의 스올의 경험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나란히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요 사상은 ‘죽음을 통과하고 난 후 새 생명으로 거듭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최초에 아담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에서 야기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근본적인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증표입니다. 이런 점에서 다윗의 탄원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자신이 철저하게 죽음의 자리에 처한 상태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죽음의 위치에서 새 생명으로 거듭날 것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드리는 탄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죄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


우리에게 이러한 다윗의 탄원을 적용시킨다면 중요한 원리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음의 자리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허리에서 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비참한 상태 가운데 처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가 아니면 아담 이래 죽음이라는 굴레를 결코 우리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다시 사심으로써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외에 다른 복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을 구원의 은혜로 알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행 4:12).


예수님께서 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까?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죄 가운데 죽어 있기 때문에 대신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고 참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참 이스라엘로서 죽으신 후 새 생명으로 살아나신 것은 우리에게 그 사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죽음 속에 빠져 있는 우리의 생명을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가 죄로부터 벗어나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우리가 얻는 새 생명의 대가로 속전(贖錢)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죽음 가운데 빠졌던 근본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설 자격이나 무엇을 구할 만한 권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처한 최악의 상태, 곧 죽음 속에 빠져 있다는 심각한 상태를 보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자리에서 다윗은 자신의 연약한 모습으로 진솔하게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아뢰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시편 69:3-4절을 보면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도 많고 무리(無理)히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뵙고자 하지만 외면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마치 죽음 가운데 빠진 것과 같은 다윗의 초췌한 모습과 이 세상이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다윗을 향하여 무고하게 원수처럼 미워하고 얼굴을 돌리는 냉정한 현실에 대해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죄를 인식하고 있는 다윗은 하나님과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단절되는 비참함과 더 이상의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절박한 상태에 처한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죄는 필연적으로 사망을 가져옴


시편 69:1-2절에서는 자기 자신이 영적인 죽음에 빠져 있음을 고백하고, 3-4절에서는 더 이상 자신에게는 아무런 삶의 가치나 의미조차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암흑 속에 빠져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자신의 감상적인 감정을 못 이기고 스스로 무너져 버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삶의 어려움에 지쳐 소위 감상적(sentimental)인 우울감에 빠진 상태와는 그 양상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오히려 다윗은 고상한 영적인 감성을 이러한 상황에 발휘하고 있음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배의 감격을 쉽게 잃지 말 것이며 예배자의 자태를 지속적으로 가져나갈 것


이러한 사실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인 ‘시온’을 구원해 내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신다는 데 대한 분명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69:34-36절을 보면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동물도 그리할찌로다.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 거하여 소유를 삼으리로다. 그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거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의 목적이 분명히 서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 대한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리고 경배는 예배란 용어와 같은 개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형식에 담고 행해져 왔습니다. 가장 오랜 시대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곧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돌로 단을 쌓고서 제사를 드린 데서 보듯이 엉성하고 단순해 보이는 것에서나 성전에서 규례를 좇아서 엄격히 제사를 드렸던 것에서나 지금의 예배 의식에 의해서나 예배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만 그 형식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섬기는 삶의 실천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사실을 감사하고 감격하는 동인(動因)이 있은 데 따른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죄 아래 있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복을 누리게 해 주신 하나님! 곧 예배의 동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의 감격을 쉽게 잃지 말아야 할 것이며, 예배자의 자태를 지속적으로 가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합니다. 교회는 우리에게서 생명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사는 것은 그렇게 사는 한에는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의 꿈틀거림이 다름 아닌 예배입니다. 교회와 예배! 교회에는 예배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우리가 행하는 예배는 지금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살아 있는 생명체로 있다는 확인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교회가 예배하는 공동체임을 분명히 인식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기초해서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건실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져 가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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