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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치리에서 장로의 역할

안재경 목사(온생명교회)


직분명이 교회명이 된 유일한 경우가 바로 장로교이다. 목사교도 없고, 집사교도 없고, 권사교도 없지 않은가? 영국 국교회를 감독교회(episcopal church)라고 부르곤 하지만 말이다. 장로 직분이 교회명을 달고 있다는 것은 장로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로교 정치는 회중정치(회중 전체의 통치)도 아니고, 감독정치(감독 한 사람의 정치)도 아닌 장로회에 의한 정치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장로교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개신교단들이 장로라는 직분을 가지려고 한다. 장로라는 호칭이 동양적인 정서와 맞아 떨어진 것일까? 장로라는 호칭이 부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장로교회에서 장로가 교인들에게 인기(?)가 없다. 장로가 교회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하기조차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교회에 장로가 꼭 필요한 것일까? 예배와 치리를 중심으로 장로의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장로석이 왜 필요해?

 

예전에 시골교회에는 예배당에 장로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예배당 제일 앞좌석에 장로석이라고 팻말이 붙어 있기도 했다. 그 좌석에는 장로 외에는 앉을 수가 없었다. 주일이 아닌 날에 예배당에 갔을 때, 토요일에 예배당 청소를 하곤 했을 때 장로석에 은근슬쩍 앉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장로석을 따로 두는 교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장로석을 따로 두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치부될 것이니 말이다. 장로석을 두지 않는 교회에서도 장로들은 제일 앞 좌석에 가서 앉지만 말이다. 교인들은 두 세 줄 뒤에 가서 앉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로석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장로석이 거의 사라졌지만 유럽의 교회들은 아직도 장로석을 따로 두는 경우가 흔하다. 장로석은 회중의 제일 앞자리이기도 하고, 설교단 바로 옆쪽에 장로석을 배치하는 경우마저 있다. 이런 배치에 의해서는 장로들이 예배 때 회중을 마주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장로들이 목사와 함께 회중을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장로석을 따로 마련하고, 회중들과 마주보도록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장로들이 예배에서 하는 역할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것을 처음 보는 이들도 장로들이 예배하는 교인들을 감독한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찬양대석(아직도 중세시대를 연상시키는 성가대라고 부르기도 한다)을 회중석 제일 앞자리에 배치하는 경우가 흔하다. 찬양대석은 회중석과 분리되어 설교단 옆에 두는 경우도 종종 있고, 심지어 찬양대석이 강단 뒤쪽에 배치되기도 한다. 이제는 찬양대가 장로석을 차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유럽에서는 로마천주교회도 그렇고, 개신교회도 찬양대석을 회중석 뒤쪽 중 2층에 오르간과 더불어 마련해 둔다. 예배하는 회중들은 오르간연주와 찬양대의 찬양을 볼 수는 없고 들을 수만 있다. 회중은 마치 천상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받는다.

 

장로석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장로석을 회중석 맨 앞자리에 배치하는 것, 더 나아가 장로석을 회중석과 따로 분리하는 것이 어색할 뿐만 아니라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장로를 특권층(?)으로 생각한다는 오해를 주기 쉽다. 장로가 회중석에 앉는다고 한들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장로들이 예배, 그리고 회중과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해서 이런 배치를 했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구별된 좌석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교회가 장로석을 따로 두어왔던 이유를 분명하게 새겨야 할 것이다. 장로라는 직분은 예배와 치리를 위해 세워졌다는 사실 말이다.

 

2. 장로가 목사와 왜 악수해?

 

교회의 모든 직분은 공예배를 위해 부름 받았다. 직분은 공연히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직무를 가지고 있는데 1차적인 직무가 공예배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배하면서 교회가 생겨난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 예배에 직분자가 수행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 예배가 예배다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모든 직분은 예배를 위해 부름 받았기에 직분자가 예배에서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깨닫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교인들은 예배를 잘하는데, 정작 직분자들이 예배를 등한시하고, 예배가 끝난 뒤 다른 활동들을 통해 자신의 위신을 내세우려고 하기 쉽다.

 

공예배에 대한 책임은 당회에 있다. 교회(고신) 헌법에 보면 당회의 직무를 언급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 ‘교인들의 신앙과 행위를 총찰’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제반예배를 주관’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언급하는 것이 ‘성례를 주관’하는 것이다. 당회의 역할은 교인들을 돌아보는 것인데, 그 출발은 예배를 주관하면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로는 당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그 무엇보다 예배에 대한 책임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장로가 예배하고 무슨 관련이 있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예배하면 목사의 일이라고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목사에 대해 생각해 보자. 목사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물론, 설교만이 아니라 성례를 집례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더 나아가 예배 전체를 인도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목사는 예배에서 기도도 인도하고, 찬양도 인도한다. 목사는 예배 전체의 인도자이다. 목사가 예배 사회를 다른 이에게 맡기고 설교만을 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목사가 예배 전체를 인도한다면 장로가 해야 할 일은 없는 것이 아닌가? 장로는 대표기도하는 것 정도이고, 혹 광고를 하는 것 정도가 아닌가? 아니다. 장로는 당회의 일원으로서 목사에게 예배인도를 위임한다. 이게 개혁교회 예배원리이다. 물론, 우리 장로교회에서 목사는 개 교회 회원이 아니라 노회회원이다. 노회가 개 교회를 담임할 목사를 파송한다. ‘위임식’이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노회가 목사를 파송하여 교회 목회 전반을 위임한다. 이 위임식을 통해 목사는 교회의 목회 제반사항과 예배에 대한 모든 사항을 위임받는다. 목사가 노회의 파견을 받아서 개 교회에서 근무한다고나 할까?

 

대륙의 개혁교회는 목사가 개 교회 회원이기 때문에 당회에서 예배인도를 위임받는다. 이것을 보여주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예배 시작 전에 장로와 목사가 회중석을 가로질러 강단 아래쪽에 선다. 서로 마주보고 선 다음에 악수를 나눈다. 이 악수례는 예배 시작 순서인 것은 아니지만 예배 직전에 일어나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장로가 손을 내미는 것은 목사에게 예배를 인도해 달라는 의미이다. 목사 역시 장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데 이것은 예배인도를 위임받겠다는 뜻이다. 너무 형식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번거롭게 하느냐고 말이다. 매번마다 예배 인도를 위임받아야 할 이유가 뭐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예배가 인간의 일이 아니라, 목사 개인의 능력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회에 위임해주신 예배 주관을 당회원의 한 사람인 장로가 목사에게 재차 위임하는 것을 보여준다.

 

교인들이 이 악수례를 보면서 예배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한다. 예배하는 회중은 목사를 한 개인으로 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당회에 위임해 준 예배 주관의 직무를 목사가 위임받았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회중은 목사가 대단한 능력과 달변으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지 않아도 그 예배가 곧 하나님과의 교통이라는 것을 안다. 장로는 악수례를 통해 목사에게 예배인도를 위임했기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위임과 더불어 예배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진다. 장로는 예배 순서 전체가 하나의 분명한 흐름을 가지고 삼위 하나님을 기쁘게 예배하는 것이 되도록 무언의 지지로 협력한다.

 

장로는 회중과 더불어 예배를 온전히 누린다. 장로는 목사의 설교에 대해서 분명한 책임을 지고 있다.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과 동시에 그 설교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살핀다. 강단에서 이단 사설이 선포되어서 하나님의 회중이 독초를 먹지 않는지 살핀다는 뜻이다. 물론, 장로는 목사와 함께 그 설교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진다. 한편 장로는 목사와 함께 대표기도, 다른 말로는 목회기도를 하므로 예배를 풍성하게 한다. 성찬식이 있는 예배에서 장로는 떡과 잔을 회중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므로 성찬의 상을 보호한다. 장로는 설교단과 성찬의 상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예배가 마치고 예배 인도자인 목사가 강단에서 내려오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이가 예배 인도를 위임했던 장로이다. 그 장로는 모든 장로를 대표하여 목사에게 감사를 표한다. 예배 인도를 성공적으로(?) 잘 마쳤음을 감사하고,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준 것도 감사한다. 물론, 기도를 인도하고 찬양을 인도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한다. 예배 전체를 인도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목사는 장로와 재차 내미는 손을 보면서 큰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목사는 그 악수례를 통해 자신의 능력으로 예배를 인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부족감에 주눅들 필요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렇듯 장로는 목사와 함께 예배를 섬긴다.

3. 장로가 왜 심방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장로를 ‘치리하는 장로’라고 부른다. 목사도 장로인데 목사는 가르치는 일을 겸하여 하기에 ‘가르치는 장로’라고 부른다. 장로도 가르칠 수 있지만 가르침에 근거하여 치리하기 위해 세움을 입었다. 치리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다스린다’는 뜻이다. 장로는 다스리는 자이다. 교회에도 다스리는 자가 있냐고 하면서 기분 나빠할지 모르겠는데 교회에도 다스리는 자가 필요하다. 교회에는 세상적인 다스림이 아니라 영적인 다스림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친히 다스리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가 계시기 때문에 지상의 교회에 주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자를 세우신다. 그 다스리는 자가 바로 장로이다. 장로는 그리스도의 원격조정(?)을 받는다고 하면 웃기는 말일지 모르겠다.

 

장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치리하는 직분자이다. 장로의 다스림은 말씀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그래서 장로는 목사와 한 팀이 되어야 한다. 장로는 목사의 입으로 선포되는 말씀에 근거하여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 장로의 다스림에는 권면 뿐만 아니라 책망이라는 요소도 들어있다(딛 1:9). 스트라스부르크의 종교개혁자 마틴 부써는 그의 책 『참된 영혼돌봄』에서 장로직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장로들에게 책망할 것이 없기를 요구하는 이유는 이 장로들은 감독들, 즉 일반적인 감독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목자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의 직무는 매우 중요하기에 그들은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다른 사람들이 흠이 없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봉사하는 사람들은 그 어떤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더 거룩하고, 흠이 없고, 모든 책망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 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부터 사도가 장로라는 말을 통해서 의도하는 바는 그들이 감독이 될 장로들로서 적당한 감독자들이며, 영혼들의 보호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양떼들의 목자들이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각 교회는 모든 목자들과 감독들 뿐 아니라, 영혼의 돌봄과 봉사직을 수행할 여러 장로들을 세워야만 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 성령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장로는 치리를 위해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하고, 책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로가 치리를 위해 교인 가정을 심방한다. 한국교회에서 교인 가정의 심방은 목회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로는 목회자들의 심방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 서 있다. 하지만 장로가 치리를 위해 해야 할 중요한 직무가 바로 심방이다. 목사도 교인 가정을 심방해야 하지만 장로는 더더욱 심방해야 한다. 심방을 통해 교인 가정의 형편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교인을 치리할 수 있단 말인가? 교인들의 삶에서 설교가 어떻게 열매 맺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목사의 설교에 대해 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심방은 목사의 일임과 동시에 장로의 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위에서 장로와 관련된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보았다. 예배당에 장로석이 있는 것, 장로가 목사와 악수례를 하는 것, 장로가 심방하는 것을 통해 장로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교회에 장로가 없이는 신자들이 온전해질 수 없고, 봉사의 일을 하도록 구비될 수 없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 수 없다(엡 4:11,12). 장로는 교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장로이다. 장로는 교인의 대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현한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보내어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 직분인데, 장로는 직분들의 꽃이다. 장로직이 직분의 꽃이라고 해서 목사가 섭섭해 할 이유가 없다. 목사도 기본적으로 장로이니 말이다. 한국교회에서 장로직이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이 때에 예배와 치리에서 장로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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