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호 목사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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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란드 신앙고백서(1560)의 독특성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신앙고백서 작성


1. 루터: 1529년 “가장이 그의 가족에게 분명하고 쉽게 가르치도록 하기 위해” 소교리 문답(Small Catechism, 1529)

2. 1530년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The Augsburg Confession, 1530)가 작성되어 1530년 6월 25일에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칼 5세 앞에서 독일어로 낭독되었고,

3. 1537년에는 쉬말칼트 신조(Schmalcaldische Artikel, 1537).

 

4. 1536년에 스위스 여러 도시의 종교개혁자들이 바젤에 모여서 불링거(Bullinger), 그리내우스(Grynaeus) 미코니우스(Myconius) 등이 초안하고 여러 도시의 권위자들이 검토하고 서명한 제일 스위스 신앙고백서(The First Helvetic Confession, 1536),

5. 칼빈이 제네바에서 작성하여 사용한 제네바 교회 신앙 문답서(1542년),

6. 칼빈이 준비하고 그의 제자 샹데이유(De Chandieu)가 개편하여 1559년 파리 노회에서 인정을 받았고, 1571년 프랑스 프로테스탄트 전국 총회가 로쉘(Rochelle)에서 모였을 때 정식으로 받아들여진 프랑스어로 쓰여진 프랑스 신앙고백서(1559),

7.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위해 발표한 스코츠 신앙고백서(1560),

8. 브레(Guy De Brés)에 의해서 1561년에 프랑스어로 작성되고 나중에 화란어와 라틴어로 번역되어 1571년 엠덴(Emden) 개혁교회 시노드에서 받아들여지고, 1619년 도르트에서 열린 전국 대회에서 수정된 벨직 신앙고백서(The Belgic confession, 1561),

9. 우르지누스(Zacharias Ursinus)와 올레비아누스(Casper Olevianus)가 초안하고 프리드리히 3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

10. 엘리자베스 1세 하에 영국 교회 (성공회)의 신앙 고백으로 라틴어로 작성된 39개 신조(Thirty-nine Articles, 1563)

11. 도르트 신조(1619)

1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

 

I. 스코츠 신앙고백서의 작성 배경

 

개신교의 초기 순교자들로는 귀족 출신으로 파리 대학 대학에서 공부할 때 루터를 읽고 배운 후에 세인트 안드류스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다가 제임스 비톤 대주교(James Beaton)와의 충돌로 1527년에 독일로 피신하여 말부르그에서 프랑소와 람버트(Francois Lambert) 함께 아주 루터파적인 짧은 신조(Loci commune)를 출판하고, 논쟁을 하자는 비톤 대감독의 초청을 받아 세인트 안드류스에서 기소되고 1528년 2월 27일에 24세의 나이로 화형당한 스코틀란드 종교개혁 최초의 순교자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 1503-1528), 그리고 1546년 5월 1일에 사형에 처해진 죠오지 위샤트(George Wishart, 1513?-1546):

- 아버딘 대학을 졸업

- 스코틀란드에서 헬라어가 처음으로 가르쳐진 학교인 몬트로즈 아카데미(Montrose Academy)의 교사

- 희랍어 신약성경을 가르쳤다는 혐의를 받고 도망하여 영국과 스위스로 피하여 살면서 <제일 스위스 신앙고백서>를 영어로 번역

- 1542년 말경 영국으로 돌아가 캠브리쥐의 Corpus Christi College에서 1년여 가르침

- 1543 또는 1544년에 다시 스코틀란드로 와서 몬트로즈(Pmtrose), 던디(Dundee), 그리고 동부 로디안 (East Lothian) 등지에서 개신교 사상을 설교하다가 해딩톤 근처에서 체포

- (해밀턴을 화형 했던 제임스 비톤의 조카요 1539년 그를 이어 스코틀란드 천주교회의 대표적 인물로 추기경이 된) 데이비드 비톤 추기경(Cardinal David Beaton, 1494-1546)에 의해 세인트 안드루스에서 화형당함.

<== 비톤 추기경을 개신교 귀족들이 죽임(1546년 5월 29일).

죤 낙스(John Knox): 비톤 추기경을 암살한 사람들의 무리에 그 암살과 시해 사건 있은 지 일년 후에 참가하여 세인트 안드류스 성에 있으면서 죤 로프(John Rough)의 요청 하에 1547년 부활절 설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에딘버러에서 17마일 동편에 있는 하딩톤(Haddington) 근방에서 출생(1505?, 1513?, 1514?, 1515?)

- 세인트 안드류스에서 수학하고

- 1536년에 사제로 임직한 것으로 여겨짐

- 길염(Thomas Gilyem=Gwilliam)의 영향으로 개신교로 개종

- 후에 러프(John Rough)와 죠오지 위샤트의 더 확고하고 열정적인 원리와 가르침에 동조하며 위샤트가 하딩톤에서 설교할 때 시중했고, 큰 칼을 들고서 그의 bodyguard 역할을 하였고, 그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그와 함께 화형 당하려고도 했다고 한다.

- 낙스도 프랑스 겔리선에서 19개월을 노역한 후

- 영국 개신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의 개입으로 1549년 초에 풀려나 4월부터 영국에 있으면서 에드워드 6세와 크랜머(Cranmer) 대주교의 종교개혁 운동을 도움(1549-54).

(Ex.) 때때로 6명의 궁전 목사 중의 하나로 사역하기도 하면서 미사를 우상숭배라고 지적하고, 성찬 때에 무릎을 꿇는 것을 반대

제안된 로체스터 주교직(bishopric of Rochester)은 거절

에드워드 6세가 1553년 7월 6일에 죽자 메리 여왕(Mary Tutor, 1553-58 통치한 소위 Bloody Mary) 치하인 1554년 1월말에 제네바로 가서 칼빈과 사귀고 츄리히에서 불링거와 사귄 후

- 칼빈의 권고를 따라 프랑크프르트의 영국인 피난민 교회의 목사로 있다가 이 교회에서 영국 교회의 <공동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을 사용할 것인가 제네바식 예전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로 논쟁이 일어나 축출당하자, 낙스와 윌리엄 휘팅햄(William Whittingham, 1524?-79), 그리고 그들과 동조하는 이들은 1555년 4월에 다시 제네바로.

- 낙스는 제네바에서 칼빈의 영향력이 가장 강하던 기간 중에 4년간 칼빈이 설교하던 바로 옆 건물에서 모이던 영국인 피난민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계속해서 스코틀란드의 상황을 염려하며 그의 유명한 전투 문서라고 할 수 있는 <여성들의 야만적인 통치에 대항하는 첫째 나팔 소리>(First Blast of the Trumpet against the Monstrous Regiment of Women, 1558)

- 여러 개혁파 인사들, 특히 제임스 슈튜어트(James Stewart, 1513?-70), Argyll의 제5 공작인 알치발드 캄벨(Archibald Campbell, 1530-73) 등과 함께 하는 “회중의 귀족들”(the Lords of Congregation), 즉 “주의 회중”(the Congregation of the Lord)의 지도자들의 강한 권면에 따라 1559년 5월 2일에 드디어 에딘버러의 외항인 레이뜨(Leith)를 통해 귀환.

- 귀국하자마자 여왕의 법령에 의해 법밖에 있는 자로 선언된 낙스는 다른 개혁파 인사들과 함께 Perth에서 당시 섭정을 하고 있던(Queen Regent) 메리 여왕의 어머니(Mary of Guise/Lorraine)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요청하나 이런 개혁의 요구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음.

- 던디(Dundee)와 펄뜨(Perth)에서의 설교는 백성들의 개신교적 열망을 더 강화시켰고,

- 죤 해밀톤 대주교(Archbishop John Hamilton, 1546-71)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낙스는 1559년 6월 11일에 세인트 안드류스 대성당에서 다시 설교하므로 언젠가는 다시 세인트 안드류스에 가서 성경을 바로 선포하겠다는 오랜 소망을 이루게 된다.

- 결국 스코틀란드 왕실군 4,000명과 프랑스 지원 군 대(對) 500명의 개혁파 군대와 (1560년 1월 27일의 벌윅 조약[The Treaty of Berwick]에 따라 스코틀란드 개혁파를 돕게 된) 영국군 1만명의 전투가 1560년 4월 4일부터 시작되어 6월 16일 프로테스탄트파가 승리하고, 1560년 7월 6일에 맺어진 에딘버러 조약(The Treaty of Edinburgh)에 따라 7월 15일에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동시에 철수하고, 7월 19일 St. Giles 대성당에서 낙스 집례 하에 공적인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써, 스코틀란드가 일단 독자적으로 정치적, 종교적 문제를 개신교적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1560년 8월 1일 구성된 스코틀란드 의회 ==> 여섯 명의 요한:

John Knox,

훗날 로디언의 감독이 된 John Spottiswoode,

이전에 프란시스파 사제였으나 대륙의 개혁자들을 잘 알고 친교하며 훗날 글라스고우와 서부 지역의 감독이 된 John Willock,

Padua에서 법학을 공부한 법학 박사, 후에 Perth의 목사인 John Row,

세인트 앤드류스의 목사인 John Douglas,

세인트 앤드류스의 부수도원장이었고 1547년에는 낙스의 이단자 혐의 재판을 하여야 했던, 그러나 후에는 교황은 적그리스도이고 천주교 미사는 우상 숭배라고 강하게 주장한 John Winram): 4일 만에 초안하고 작성한 신앙고백서

1560년 8월 17일에 받아들임으로써 스코틀란드 종교 개혁의 신앙 고백적 기초가 마련.

1560년 12월 5일에 남편인 프랑스 왕 프랑소와 II세가 죽자

1561년 8월 19일에 스코틀란드로 돌아와 19세의 과부 여왕으로 다스리기 시작한 메리 슈튜어트(Mary Queen of Scots/Mary Stuart, 1542-87)와 낙스의 대결.

 

에딘버러의 홀리루드(Horyrood) 궁에서 메리 여왕은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고<== 낙스

(1)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인 단리(Lord Darnly, 1545-67)가 1567년 2월 10일에 의문스럽게 살해당한 뒤

(2)단지 3개월이 지난 후 그녀가 보뜨웰의 4대 백작(4th Earl of Bothwell)이요 단리의 죽음의 주된 책임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제임스 헵번(James Hepburn, 1536?-78)과의 결혼한 것

(3) 법을 어기면서 죤 해밀톤 대주교를 다시 세우려한 시도

==> 여론을 더 나쁘게 만들어 분노한 이들은 그녀를 폐위시키고,

총회는 1567년 6월 25일에는 그녀는 통치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선언하였고,

6월 29일에는 그녀의 어린 아들을 스털링(Sterling)에서 제임스 6세로 세우는 대관식: 낙스는 소년 왕 요시아(왕하 12장)에 대한 설교하고, 12월에는 의회에서 설교하면서 스코틀란드 전체를 철저한 개신교 국가로 만드는 투쟁을 계속하다가 1572년 11월 24일에 낙스는 사망한다.

II. 스코츠 신앙고백서의 특성들

 

“오류 없는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기초한 교리”.

 

1. 선택과 성령의 중생시키시는 역사를 강조하는 개혁파적 특성(Monergism)

 

“중생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의 마음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3조). “즉, 성령께서는 선택받은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말씀 안에서 계시하시는 약속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갖도록 일깨우신다는 것이다”(3조). 그러므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녀들은 모두 주 예수의 영을 받는다(13조).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의 하나의 교제이며”(16조, 21조, 25조), “성부가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사람들이 아니고는 아무도 교회에 속할 수 없다”고 한다(16조). 또한 이 선택은 (1) “창세 이전부터의” 선택이며, (2)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하는 선택이고, (3)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신 것임을 분명히 한다(8조). 이는 후대의 하이델베르그 요리 문답 같은 고백이 선택을 전제로 하지만 52문과 54문에 간단히 스쳐지나가면서 언급할 뿐 그것을 명확히 드러내어서 고백하지 않은 것과 대조되는 것이다.

 

(타락 이후의) 우리는 본성상 죽은 자이며 눈이 어두우며 강퍅하기 때문에 만일 주 예수의 성령이 죽은 자를 되살리시며 우리의 마음에서 암흑을 제거하시고 그의 기뻐하시는 뜻에 복종하도록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쳐부수지 않으시면 우리는 질려도 느끼지 못하며 빛이 드러나도 보지 못하며 계시되어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다(12조).

 

(타락한 사람은) 스스로 쾌락과 향락에 도취하여 고난을 당할 때는 불평을 품으며, 번영할 때에는 의기양양하며, 언제나 하나님의 존엄을 파손하는 경향을 갖는다“(13조).

 

심지어 성령님께서 우리를 중생시키시고 성화시키는 것이 “중생 이전이든지 중생 이후에 우리에게서 나오는 아무런 공로 없이” 이루시는 일임도 스코츠 신앙고백서는 분명히 한다(12조, 강조점은 필자의 것임).

Monergism: 12조 마지막: “우리는 창조와 속죄와 존귀와 영광을 스스로 수포로 돌리고 있듯이 (우리 스스로는) 중생과 성화도 파괴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는 선량한 생각을 한 가지도 못하며, 우리 안에서 계속 역사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그의 과분한 은혜의 영광과 찬양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12조).

“선한 행위의 원인에 관하여 우리는 그것이 자유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 예수의 영에 있다고 고백한다”고 선언한다(13조).

 

“성화의 영이 없는 사람에게도 그리스도가 그 마음 안에 계신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굳게 믿는다”(13조). 성령님을 의존해서 미약하게나마 성화의 길에로 나아가지 않는 이들은 “참된 신앙을 갖지 않으며”, “그들이 악을 계속해서 행하는 한 그들이 예수의 영을 가지고 있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13조).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는 모두 성령이 주어지며 성령님은 선택된 자들 안에 거하며 “그들을 새로 지으신다”(13조). 그렇게 되면 그들은 “전에 사랑했던 것을 미워하고 전에 미워했던 것을 사랑하게 된다”(13조).

그러나 “우리의 성질은 타락하여 극히 약하고 불완전하여 우리는 결코 율법의 행위를 완전하게 완수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중생한 후에라도 죄를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며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며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이다”(15조). “우리는 모든 점에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15조).

 

그러므로 그들은 “죄와 싸우며 불의의 유혹되었음을 알면 크게 슬퍼한다. 만일 그들이 넘어지면 열심히 회개하여 다시 일어난다”(13조).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일을 자기 자신들의 힘으로 행하지 않고 주 예수의 힘으로 행한다. 주 예수 없이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13조).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행위의 공적을 자랑하거나 자기의 공적을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헛된 것을 자랑하며 저주 받을 우상 숭배를 신뢰하는 것이다”(15조).

 

2. 구속사와 계시사적인 이해의 개혁파적 특성(redemptive-historical approach)

 

원복음에 대한 이해를 잘 제시하면서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 뒤에 “다시 아담을 찾으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의 죄를 책망하시고 선고하셨으며 마지막에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라’(창 3:15)는 기쁜 약속을, 즉 여자의 후손이 악마의 활동을 타파하리라는 약속을 아담에게 주셨음을 우리는 믿는다”고 선언하여 최초의 구원 약속에 대한 이해를 아주 명확히 하고 “이 약속은 때를 따라 반복되었고 점차 분명하게 되었다”고 말하여(4조) 계시사(historia revelationis)적인 이해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약속을 기쁘게 받아들여 확실히 믿고 있었던 믿음이 돈독한 선조들이 부단히 이 약속을 이어받고 믿어 온 것이다. 즉, 아담으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선조들 모두가 다 율법 아래서 기쁜 그리스도의 날을 바라보며 기뻐하였던 것이다.”(4조)

 

3. 성경적 교회 이해(Biblical ecclesiology)

 

또한 스코츠 신앙고백서는 그 모든 시기가 결국 교회의 시대임을 잘 제시하면서 아담 이후로 “모든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의 교회를 보존하시고 인도하시고 증가시키시고 교회에게 영예를 주시고 죽음에서 생명에로 불러내셨다고 믿는다”고 단언하고 있다(5조).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한 하나님을 믿듯이, 처음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고 또 세상 끝 날에도 있을 하나의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으로 예배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의 하나의 교제, 곧 회중을 믿는다(16조).

 

이와 같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그 표상적 표현을 잘 이해하고 드러낸다.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 전체가 한 사람의 신부라고 잘 제시하는 것이다. 이 교회가 보편적 교회(catholic church)라고 따라서 “교회는 모든 나라 모든 국민 유대인 이방인을 막론하고 말이 다른 사람들이 포함되는” 공동체라고 잘 표현한다(16조). 더 나아가 “한 하나님, 한 주 예수, 한 신앙, 한 세례를 가진 이 교회 밖에는 생명이 없고 영원한 행복도 없다”고 강조한다(16조). 이 교회에는 신앙이 있는 부모와 그 자녀들이 포함되며, 또한 이미 세상을 떠난 선택된 사람들이 포함되는 데 이 세상을 떠난 성도들을 승리의 교회라고 옳게 부른다(16조, 17조).

 

그러나 이 세상의 교회는 다음에 언급하는 교회의 표지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면서도 이 세상의 교회에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게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음을 말하여(25조) 도나티스트적인 오류를 경계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가리지도 곡식과 함께 파종되어서 함께 자리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들도 선민들의 교제 안에서 결합되어서 그들과 함께 외적인 말씀과 성례전의 은혜를 입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람들은 끝까지 진정으로 의인의 회중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진정한 의미로 신앙하지 않는 다는 것을 결국은 드러내고야 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얼마 동안 신앙을 고백해도 마음으로 하지 않고 다시 타락하여 마지막까지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열매를 갖지 않는다”(25조).

참된 교회의 표지를 제시하는 일에서 스코츠 신앙고백서는 (1) 하나님의 말씀의 참된 선포와 (2) 그리스도 예수의 성례전의 올바른 집행, 그리고 (3) “교회의 훈련이 올바로 시행되며 하나님의 말씀의 규정으로 악이 억제되고 선행이 육성되는 것”을 언급함으로써(18조, 25조) 역시 이 세 가지를 언급하는 벨직 신앙고백서(1561)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7)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교회의 훈련은 성례를 바로 시행하는 것과 연관되어 이해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신앙과 이웃 사람에 대한 의무를 시험해 볼 수 있다. 신앙 없이 성만찬을 먹고 마시거나 더구나 자기들의 형제들과 분열되어 다툰다면 합당치 않게 먹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서는 우리들의 교역자가 공적으로 또는 특별하게 주 예수의 만찬을 허락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신앙과 생활에 관하여 조사를 한다(23조).

 

이렇게 성도의 신앙과 생활에 대해서 조사할 때 그 목적은 성찬을 제대로 집행하여 결국 성도들을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성례전에 대해서는 세례 의식과 성찬 예식(주님의 몸과 피의 교제)만을 신약의 성례전으로 언급하면서, 이는 보이는 표지이기만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공허한 고백”이라고 할 정도로 통상적 쯔빙글리파적 해석을 배격하면서 이는 (1) 주님의 백성과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2)하나님의 아들들의 신앙의 권장과 성례전에 참여함으로써 그의 마음에 주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주며, (3) 선택된 자들이 자신들의 머리가 되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하하고 일치하며 교제한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라고 표현한다(21조) 즉, 성례의 인치는 기능을 같이 강조하는 것이다. 세례는 성인으로서 사려 있는 사람들에게와 신자의 유아들에게도 베푸는 것을 인정하면서 “신앙과 이해를 잦지 못한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거부한 재세례파의 과오를 우리는 거부한다”고 강조하고 있다(23조).

또한 천주교회의 화체설적 이해를 해롭고 저주받을 것으로 여기면서 “신앙이 독실한 사람이 주님의 성찬을 올바로 받음으로써 주 예수의 몸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며, 이 일을 통하여 주님은 그들 안에 계시고 그들은 주님 안에 있음을 고백하고 확신하다”고 말하여 성찬 때에 그리스도의 실재적 임재(real presence)를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의 몸과 피에 의해하여 주어지는 일치와 결합은 참된 신앙을 통해서 보이는 육적인 지상적인 모든 것 위에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고 선언하여 그것이 영적으로 이루어지는 영적 임재설(theory of spiritual presence)을 아주 분명히 표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표지가 의미하는 실체 대신에 그 표지를 예배하는 것이” 되지 않고, 또한 “그 표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21조). 이렇게 성례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고백하는 이유는 “수찬자가 거기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면 성례전을 올바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는 확신 때문이었다(22조).

또한 총회 모임과 그 결정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회의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주어진 결정과 명령을 선언하는 한 우리는 그 회의를 존중하고 승인해야 한다”고 선언한 점에서(20조) 이는 회중 교회 정치 체제와는 구별되는 장로교 정치 체제를 선언하는 좋은 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바로 이해된 의미에서 총회가 소집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전에 주시지 않은 영원한 율법을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고,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도 아니라고 바로 선언하고 있다. 또 한편에서 이 스코츠 신앙고백은 “어떠한 정치와 질서도 모든 시대와 장소를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그것이 “교회를 교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미신을 품게 하는 때는 그것을 변경해도 좋으며 또 변경시켜야 한다”고 선언하여 성경이 규정한 것 외의 모든 정치적 질서는 교회의 유익 여부에 따라 변경 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4. 구속 받은 이들의 하나님의 뜻을 따른 삶과 실천에 대한 강조(practicality)

 

기본적으로 성화의 길로 나아가며, 성령님을 따라 생각하고 느끼며 노력하여 간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하면서(13조) 또한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율법을 주셨다고 말한다(14조). 그러므로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개혁파에서 늘 강조해 온 ‘율법의 제 3의 용’을 아주 분명히 하면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 가운데서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다른 개혁자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며 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고백과도 잘 조화되는 것이다. 14조 첫머리에 나타나고 있는 다음 선언을 보라: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한 율법을 사람에게 주셔서 그것으로 하나님의 신성한 존엄에 반역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실 뿐더러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보답해주시기로 약속하신 모든 일을 행하도록 명령하셨다고 고백한다(14조)

 

율법은 하나님의 존엄에 반역하는 모든 행위를 금하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규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에 금한 것을 하지 않고, 율법이 하라고 하는 일을 하나님의 입법 의도에 따라서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율법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로서 나타난 있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신앙을 가지고 행하는 행위만이 선한 행위”라고 하는 것이다(14조). 그것을 스코츠 신앙 고백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일과 이웃 사람을 위하여 행하는 일로 크게 분류하여 제시한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1) 유일하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2) 우리의 모든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찾아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성례전을

통한 교제를 가지는 일

(3) 부모, 왕후, 지배자, 위에 있는 권위를 존경하며, 그들을 사랑하며 도우며, 또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남이 없이 그들의 명령에 복종하며

(4) 죄 없는 생명을 도우며, 억압자를 진압하며, 압박하는 자를 막으며,

(5) 우리의 몸을 정결하게 가지며 진실과 절제로써 생활하며

(6) 모든 사람과 더불어 말과 행위에 있어서 올바르게 행하는 일,

(7) 모든 이웃을 해치려는 욕망을 억제하는 일.

 

또한 이와 연관해서 이와 반대되는 일들을 가장 혐오할 죄이고, 하나님이 언제나 싫어하시며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죄로 언급한다:

 

(1) 우리가 필요한 때에도 하나님을 불러 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

(2)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 말씀을 경멸하는 일

(3) 우상을 가지는 일, 혹은 그것을 예배하고 우상 숭배를 지키며 그것을 변호하는 일

(4)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을 생각하는 일이 적은 것

(5) 예수 그리스도의 성례전을 더럽히며 남용하며 경시하는 일

(6) 하나님이 자기 권위 안에 두신 것을 불순종하고 저항하는 일

(7) 살인하거나 혹 그 일에 동의하며,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며, 우리가 어떤 일에 반대할 때 피를 흘리겠다고 말하는 일

(8) 첫째와 둘째의 다른 어떤 계명이라도 범하는 일(14조).

 

5. 당대에는 당연한 것이었으나 오늘날 상황에서 의미심장한 이해들과 고백들(orthodoxy)

 

당대의 모든 신앙 고백서에 따라서 스코츠 신앙고백도 하나님의 성품과 한분이신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을 아주 분명히 천명한다(1조). 또한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1조), 특히 인간의 창조를 역사적 사실로 명시하고 타락의 사실도 역사적 사실로 명시하고 있다(2조). “여자는 뱀 때문에 타락하였고 남자는 여자의 말에 따라 타락하였다”(2조).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존엄에 대해 반역”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2조). 인간의 시조인 아담, 노아, 아브라함 등의 모든 인물과 관련된 것이 역사적 사실들로 언급되고 있다(4조, 5조).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도 그러하다(18조).

이와 함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의 역사성도 명확히 하면서 “성자는 성령의 역사로 여자 곧 처녀의 본질에서 인간성을 취하셨다”고 선언한다(6조, 11조). 또한 죽으신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과 그에 대한 확증도(10조), 그리고 그의 부활하신 몸의 승천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고백되고 있다(11조). 그리스도의 승천은 “모든 것의 성취를 위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언급되고 있으며(11조), 그가 아버지 우편에 앉으신 것을 “왕으로 취임하시고”라고 표현하고 있다(11조). 그리고 장차 “심판의 집행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승천하신 그 모습대로 눈으로 보이게 재림하실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다(11조).

또한 그리스도의 양성론을 분명히 하면서 이와 관련된 이단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면서 정죄하며 그리스도의 한 인격을 가지셨으나 양성을 가지셨다는 칼시돈 정의에 충실한 고백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를 임마누엘, 즉 하나님과 사람의 두 가지 완전한 성질이 한 인격(person)에 통일되어 결합된 참 하나님, 참 사람으로 고백하고 인정하였다. 우리는 이 고백에 따라 아리우스, 마르시온, 유티케스, 네스토리우스를 배격될 해로운 이단으로써 정죄하였고, 또한 그의 신성의 영원성을 부인하거나 인간성의 참되심을 부인하거나 그 두 가지 성질을 혼합하거나 분리시키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다”(6조).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언급하고 고백할 때 그가 우리를 대신해 형벌을 받기 위해 현세적으로 실제로 고난 받고 죽으셨다는 것을 강조한다(8조, 9조). 그러므로 “그의 공로로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졌고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지만 하나님의 저주는 우리 위에 내리지 않는다”(15조).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때에도 “유일하신 하나님은 죽음을 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성을 취하여 그 인간성으로 수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도 현대적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한 이해와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8조). 또한 그가 우리의 자리에 서시어 우리가 “죄인으로 당연히 받아야 할 아버지의 진노를” 받아 “그가 몸과 영혼으로 고통을 당하시고 사람들의 죄를 위한 완전한 만족을 치르신 그 고난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유일한 아들이었음을 확신한다”고 고백하여(9조) 그의 죽음이 우리의 죄에 대한 완전한 만족과 변상이 됨을 분명히 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그가 절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제시하여 그가 십자가에서 외치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씀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극복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한 다른 희생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스코츠 신앙고백서가 명확히 말하는 점도 주목하여 보아야 한다(9조).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죄용서와 만족을 우리가 영원히 획득한 것임을 우리가 확신하고 의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것을(9조) 볼 때, 우리는 구원의 확신 문제를 둘러싼 오늘날의 논쟁 속에서 우리 선배들의 십자가에 근거한 확신의 표현의 또 한 예를 보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신앙과 이런 신앙의 확신은 “우리 안에 있는 잔연적인 힘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감동으로 생기는 것이다”는 것도 명백히 한다(12조).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있을 모든 사람의 몸의 부활을 강조하는 점,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행위에 따라 영광이나 벌을 받을 것이다”고 명확히 이야기하되, 그 영원한 형벌을 “몸과 영혼의 영원한 고통”으로 묘사하고, 그렇게 되는 이유를 “그들이 지금 악마를 섬기면서 온갖 가능한 불법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면서, 이와 대조되는 성도들의 영원한 상태를 “선을 행하며 끝까지 잘 견디면서 충성스럽게 주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자는 영광과 존귀와 영생을 얻게 되고,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하게 될 것이며, 주님께서 다시 심판하러 오셔서 그 나라를 모든 것 중의 모든 것이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넘기실 때에(고전 15:24, 28), 모든 주님에게 선택받은 자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변화될 것(요일 3:2)을 우리는 믿는다”고(25조), 모든 건전한 교회들과 함께 고백하면서 “성자와 성령과 함께 성부 하나님에게 지금으로부터 영원히 영광과 존귀를 돌리나이다”고 송영으로 마치는 것에 우리도 힘차게 “아멘”이라고 동의하게 된다.

 

IIII. 다시 생각해 볼만한 점들

 

스코츠 신앙고백서가 선언한 내용 중에서 혹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만한 점은 없을까? 몇 가지 사소한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재림 때에 있을 신자와 불신자의 부활을 언급하면서 “모든 사람이 매장되던 날의 모습으로 되살아나며”라고 말하고 있는데(25조), 고백자들이 “썩지 않을 자로 부활하며”라고 명확히 하고 있으므로 특히 신자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몸이 쇠하지 않고, 병들지 않고, 다시 죽지 않는 강하고 영광스러운 몸, 성령님의 통치하심에 온전히 복종하는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것이라는 의도로 고백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오해할만한 표현은 조금 조절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고 생각된다.

 

IV. 스코틀란드 신앙고백서가 한국 장로교회에 주는 시사점

 

그러나 우리가 되짚어 볼 것보다는 같이 고백하고 선배들의 통찰에 놀라게 될 일이 더 많이 있다고 여겨진다.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점에서 16세기 스코틀란드 개혁자들이 강조하는 바를 우리가 심각하게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네스토리우스나 유티케스의 가르침이나 그 보다도 더한 견해를 기독교 안에서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결국 스코츠 신앙 고백서와는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또한 보수적인 교회들도 유티케스나 네스토리우스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거명하면서 그들의 입장과는 대조되는 우리들이 믿는 바를 명확히 한다는 것이 매우 현학적이고 영적이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은 교회의 진정한 건강을 위해 모든 것을 무릅쓰던 이전 개혁자들의 사상과는 매우 다른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선배 장로 교인들은 성도들이 이를 명확히 하고 고백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죽으실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8조)은 오늘날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신의 impassibility(즉,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니신 분이 아니심)를 부인하고 나아가면서 결국 panentheism적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매우 중요하게 강조해야 할 점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이외에 다른 제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손상시키는 것이라는 고백(9조). 또한 스코츠 신앙고백서도 천주교회의 화체설적 이해를 해로운 것과 저주 받을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음도 유념해야(21조, 23조). 오늘날에도 십자가에서 이루신 희생 제사를 다시 표현하는(represent)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고 하는 천주교회는 그런 의미의 미사를 매일 드리고 있고, 그런 미사를 정죄할만하고 가증스러운 우상숭배라고 선언하며 정죄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80문을 괄호에 넣거나 제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미국 기독교 개혁 교회의 최근 결정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스코츠 신앙 고백서 9조, 21조, 22조와 하이델베르그 요리 문답 80문을 다시 강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스코츠 신앙고백서는 천주교회의 미사는 천주교회의 사제가 그것을 이해하며 집행하는 방식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산자와 죽은 자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 성부 하나님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의미로 행하고 있으므로 “이 교의는 그리스도 예수를 모독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의 죄를 씻기 위해 한 번에 바치신 주님의 유일한 희생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극도로 혐오하며 비난하는 것이다”고 선언하고 있다(22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 제사 외에 우리에게 제단 쌓는 일, 제사라고 언급할 수 있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 제네바나 스코틀란드의 개혁자들이 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존귀하게 여기면서 피 흘리면서까지 예배를 제사라고 표현하는 것을 제거하려고 하였는지를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 하나님, 한 주 예수, 한 신앙, 한 세례를 가진 이 교회 밖에는 생명이 없고 영원한 행복도 없다”고 강조하는 것(16조)은 오늘날과 같은 종교 다원주의가 유행하는 시대에 의미 깊게 생각하면서 그 함의를 이끌어내야 할 조항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 예수 없이는 생명도 구원도 없다”고 강하게 단언하는 이 가르침은 마치 “오직 예수의 이름만으로?”라고 묻는 현대의 주장들을 미리 다 듣고서 답해 주는 것과 같이 아주 명확한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런 분명한 입장을 떠날 때 이 땅에 기독교회는 없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코틀란드 신앙 고백서의 고백자들은 최후의 심판을 위해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눈에 보이는 재림을 믿는다고 하고 있음을(11조)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스코틀란드 왕국에서 참된 신앙으로 예배하는 거리와 도시와 그 밖의 곳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교회를 가질 것을 권한다”고 말했던(18조) 스코츠 신앙고백서의 권면이 그곳과 이곳에서 지금도 유효하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1)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것만을 유리들의 교의로 하고, (2) 우리의 교회 안에서도 성경 해석이 하나님의 영에 의존하며, (3) 어떤 교사나 교회나 회의의 해석과 결정과 고시가 있더라도 그것이 성경에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면 우리도 단호히 거부하기를 바라면서(18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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