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호 목사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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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차이점


유해무 교수(고신 교의학)

들어가는 말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시작된 이후 스위스 제네바는 프랑스 사람 존 칼빈에 의해 참된 교회 건설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유럽의 수많은 개혁 지도자들은 이 곳 제네바 교회와 그 교회의 지도자 칼빈으로부터 개혁 신앙과 생활을 배우고 몸에 익힌 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그들의 교회를 개혁했다. 바로 이 곳은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산실이다. 이 두 교회는 각각 대륙과 스코틀랜드(혹은 영국)에서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두 교회의 뿌리는 하나다.

 

그러나 수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두 교회는 각각 다른 전통을 생산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리와 생활 모두에서 그 사이는 크게 벌어져 갔다. 특별히, 두 교회 모두 각 나라에서 단일한 교회로 보존되지 않고, 여러 교파로 분열된 현금의 상황에서는 교리와 생활이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 개혁교회라고 이름하는 교회들도 많이 있고, 장로교회라는 간판을 내건 교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 교회들이 원래의 순수한 교리와 생활을 계승하고 보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화란의 개혁교회 중에서 국가개혁교회와 소위 총회파 개혁교회와 기독개혁교회가 그렇고, 미국의 장로교회의 경우 미국연합장로교회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로부터 완전히 이탈되었다. 그래서 이 강의에서 각 나라별로 분열된 역사를 다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략하고, 참된 교회로서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교리와 생활을 보존해 온 교회들을 다루고자 한다.

 

이것은 당연히 두 교회의 교리표준과 교회질서를 다루는 것을 필수요건으로 한다. 잘 알다시피 개혁교회는 벨직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그리고 도르트 신경을 3대 일치신조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일치신조로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양 교회는 각각의 교회질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강의에서 양 교회의 신앙고백서와 교회질서를 일일이 비교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 개혁교회가 미국의 정통장로교회와 자매교회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토론되었고, 또 여전히 두 교회 사이에 토론이 되고 있는 7가지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그것은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별, 더 순수하고 덜 순수한 교회의 구별, 신앙의 확증, 선택과 언약, 10계명의 해석, 주의 만찬에 울타리를 치는 문제, 교회 정치 등이다.

 

1. 구원론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구원론에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물론 양 교회가 그 개혁의 기치인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을 붙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교회들은 분명히 로마교회의 신인협동설을 반대하고, 인간의 전적타락을 부정했던 펠라기아니즘과 알미니아니즘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또 17세기 부흥운동의 주자였던 존 웨슬레의 선행은총 사상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분명히 양 교회는 종교개혁의 전통적 신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양 교회 차이점의 문제는 선택과 언약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1944년은 화란의 자유개혁교회가 총회파의 멍에로부터 자유로워진 해였다. 그 멍에는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와 그 추종자들의 주장이었다. 카이퍼는 칭의, 교회, 언약과 같은 신앙고백의 내용이 영원에서 작정되었고, 시간 내에서 집행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미 영원에서 작정된 칭의에 대해서 신자는 단지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 역시 영원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으로써 이미 완전하고 완결된 것이며, 그것이 투영된 모습이 현 세상의 교회 모습이다. 또 언약도 영원에서 중보자이며 동시에 택자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이미 세워졌다고 말한다. 여기서 택자들은 중생하기로 되어 있는 인류이다. 그러나 경험상 (화란의 상황에서) 유아 때 세례 받은 언약의 자녀가 모두 참된 신앙에 이르지 않는 것을 볼 때 이 언약에 참된 참여자가 있고 단지 외관상의 참여자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언약을 표하고 인치는 세례가 외관상의 참여자(비택자)에게 시행될 때 그것 역시 외적인 세례일 뿐이다. 즉 사람들에게 가짜 임신이 있을 수 있듯이 비택자에게 시행되는 세례는 가짜 세례가 되는 것이고, 사이비 임신의 경우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것처럼 가짜 세례를 받은 비택자 유아는 중생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카이퍼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는 실패가 없으며, 주권적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세례 그 자체가 효력을 산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즉 세례는 필연적으로 중생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카이퍼의 사상이었다. 따라서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은 외적인 표징만 갖고 있을 뿐, 중생한 내적인 능력을 받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카이퍼는 교회의 회원 전체가 포함되는 외적 언약과 오직 택자들로 구성되는 내적 언약을 구분하고, 오직 택자들만 중생을 얻어 구원을 받게 된다고 가르쳤다. 카이퍼가 원한 바는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인 출발점을 갖도록 하는데 있었고, 또 모든 자녀는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그 반대가 증명되기까지는 중생했다고 가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면, 세례의 기초는 가정된 혹은 예상된 중생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선택을 말한다(롬9장, 엡1장). 따라서 우리는 이 선택을 부인하지 않으며, 성경을 따라 그대로 고백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 안에 들어 온 모든 자들이 선택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실례로,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서 나은 아들 이스마엘은 분명 언약의 자녀이었으나 그는 언약의 상속자 이삭을 조롱함으로 말미암아 언약의 울타리에서 쫓겨났다(창15-16장). 또 이삭의 아들 ‘에서’도 언약의 자녀이었으나 성경은 분명히 그가 택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창25:23, 말1:2-3, 롬9:9-13).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는 그 믿음에 관하여 파선하였고(딤전1:19-20),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기도 한다(딤전4:1). 또 어떤 자들은 믿음을 배반하기도 하며 저버리기도 한다(딤전5:8,12). 사도는 어떤 이들을 사단에게 내어주기도 하였다(고전5:5, 딤전5:15).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사도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딤후4:10). 히브리서에서 사도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이 있음을 분명히 말한다(4:1, 5-6; 6:1-6; 10:26-31; 12:26). 이처럼 언약 안에 있는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택자의 총수에 포함된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은 두 개의 언약과 두 개의 세례를 말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언약과 하나의 세례를 말한다(행2:39).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은혜 언약을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택자들과 맺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은혜 언약은 오직 중보자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와 그 자녀들과 맺은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들을 외적 언약의 백성과 내적 언약의 백성으로 구별하지 않고, 단지 한 언약의 백성으로 다루신다. 그리고 세례는 하나님의 약속을 표하고 인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의 기초는 하나님의 약속이지 결코 가정된 중생에 있지 않다. 개혁교회의 (유아) 세례 예식문을 이것을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 즉 “우리가 성령 안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사시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지체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이 성례를 통하여 보증하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것을 우리의 소유가 되게 하시는데, 곧 죄의 씻음과 날마다 우리의 삶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결국 완전히 정화되어 영생 안에서 택하신 언약 백성들의 회중 가운데 거하게 될 것입니다”(찬송의 책, 58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3장(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서 성경을 따라 선택을 명백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7장에서 은혜 언약을 설명할 때, 그 언약을 선택자들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다(3절). 대요리문답은 “은혜 언약은 누구와 맺어졌습니까?”라는 질문에 “은혜 언약은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와 그 안에서 그의 씨인 모든 택자와 맺어졌습니다”라고 답한다(31문답). 그러나 위에서 간단히 살펴 본 대로 선택은 언약과 동일하지 않다. 언약은 선택보다 그 범위가 넓다.

 

한편, 최근 성경신학의 공헌을 빌려서 말하자면, 성경의 언약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쌍방간의 계약이다. 이에는 약속과 의무가 있으며, 또한 그 언약을 파기하였을 경우 위협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시에 사람과 세우신 관계로서 그 언약의 첫 번째 당사자는 하나님이시고, 두 번째 당사자는 아담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인류였다. 이 언약은 영생의 약속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실하게 살 것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불순종할 경우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위협이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아담은 이 언약을 파기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언약을 폐기하지 않으시고, 은혜 언약으로 이 언약을 유지하실 뿐만 아니라 은혜로서 영생을 약속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요구하시고, 영원한 죽음으로서 언약의 위협도 살아 있다. 이 언약의 당사자는 하나님과 신자와 그의 자녀들이다.

 

개혁교회의 목사들은 회중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언약의 복음을 선포한다. 즉 약속과 의무를 말하고, 순종할 때 축복과 불순종할 때 언약적인 저주가 있을 것임을 가르친다. 반면에, 장로교회 안에는 바로 이 언약의 복음이 선포되지 않는다. 영원한 죽음과 지옥의 고통은 단지 불신자들의 몫일 뿐,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만이 있을 것임을 보장하는 설교만 한다. 그들에게 언약적 저주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회개의 설교는 없다. 즉 장로교회는 언약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다 자동적으로 선택된 것으로 설교한다. 왜냐하면 은혜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택자들과 세워졌기 때문이고(대요리31),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과 맺으신 것이기 때문이다(고백서3장3절).

 

그러나 선택은 하나님께 숨겨진 “오묘한 일”에 속하고, 영구히 우리에게 “나타난 일”은 언약이다. 하나님은 분명 선택의 하나님이시나 우리와 상관하실 때는 언약으로 하신다. 그는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우리와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따라 우리를 다루신다. 이것이 주께서 선포하신 천국 복음이다. 그리고 선택은 우리가 그 언약 안에 머물러 있을 때 확신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이므로, 칼빈이 말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가 선택의 거울이다.

 

2. 교회론

 

2.1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차이점 중에 두 번째 큰 문제는 교회론에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25장에서 두 보편적인 교회를 말한다. 즉 보이지 않는 교회와 보이는 교회가 그것이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과거, 현재, 미래에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하나로 모여지는 “택자들의 총수”로 구성되며(1절), 보이는 교회는 전세계를 통하여 참된 종교를 고백하는 모든 자들과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다(2절)고 말한다. 또 대요리문답 역시 “보이지 않는 교회는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아래 하나로 모이며 장차 모일 택한 자의 총수”로 설명한다(64문답).

 

반면에 개혁교회는 이러한 두 교회론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보편적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벨직신앙고백서27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그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으며, 성령으로 성화되어 인치심 받음을 믿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교회”가 보편적인 교회라고 말한다. 또 28항에서 “이 거룩한 보편적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한다. 이 교회는 이 땅에 있는, 현재의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 죽어 주님과 함께 있거나 장차 태어나 이 교회에 연합할 자들이 아니다.

 

성경이 ‘교회’를 말할 때, 그것은 택자와 관련되지 않고, 언약의 백성들과 관련을 맺고 있다. 교회는 택자들의 총수가 아니라 언약 백성들 전체이다. 신약에서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는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을 말한다. 고린도 교회는 고린도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신자들이 함께 모인 모임이다(고전1:2).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이며, 각 처에서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다. 구약에서 “카할(총회)”과 “에다(회중)”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 위해 하나님 앞에 모인 언약의 백성들의 모임이며, 그 언약을 갱신하기 위하여 성전에 모인 무리들이다(신5:22; 왕상8:22; 느8:2).

 

물론 칼빈 또한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구별했고(강요IV. I. 7), 종교개혁 당시 다른 많은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도 이를 구별한 것은 사실이다(제네바 요리문답,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영국교회의 39개조항 등).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다른 두 개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교회의 두 양상을 보여주려고 한 것뿐이다. 즉 하나님이 보시는 것으로서 교회와 우리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으로서의 교회가 그것이다. 루터가 말한 바 타락하고 부패한 그 결과 배교한 로마교회 안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숨어 있는 교회,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이다. 아합 시대에 엘리야의 눈에 보이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알고 계셨던 7천명과 같은 개념이다(왕상19:14, 18).

 

그러나 장로교회가 교회를 두 개로 구별함으로써 생기게 되는 문제는 첫째로, 현재의 교회 안에 벌써 보이는 교회에 속한 회원과 보이지 않는 교회에 속한 회원으로 구별이 있다는 것이다(대요리, 68문답). 두 번째는 언약 안에서 약속된 구원의 은덕들이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의 회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69문답). 칭의(70-73문답), 양자됨(74문답), 거룩하게 하심(75-78문답), 견인(79문답), 구원의 확신(80-81문답), 현재와 심판과 그 이후 미래에서 누리게 될 영광(82-90문답) 등 이 모든 것이 보이는 교회가 아닌 보이지 않는 교회에 속한 회원들에게만 약속된 것이다. 이것은 심각하게 “나타난 일”에 속한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오묘한 일”에 속한 하나님의 선택의 관점에서 구원의 약속을 설명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성경이 구별하지 않는 교회를 인위적으로 분리시키고 있다. 구원의 약속은 언약적 관점에서 읽는 것이지 결코 선택의 영역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문제는 설교의 선포와 그 복음의 약속을 듣는 자들 모두에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주게 된다. 즉 누가 선택된 자들인가?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2.2 순수한 교회와 순수하지 않는 교회

 

교회론에서 두 번째 문제점은 “순수한 - 덜 순수한 혹은 순수하지 않는 교회의 구별”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4절). 이 표현을 100보 양보하여 개혁교회가 사용하는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의 구별과 같은 용어로 본다 할지라도, 이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너무도 크다. 왜냐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이 표현을 사용할 때, 신자들의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복음의 교리와 규례와 공예배와 관련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자들의 삶이 어떤 교회는 순수하고, 다른 교회는 덜 순수하거나 혹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교리와 규례가 그렇다는 말이다. 복음의 교리에 관한 한, 항상 모든 것이, 가감 없이 가르쳐지고 배워져야 한다(마28:19-20).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규례 역시 모든 것이 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 교회는 거짓 교회일 뿐이지 참된 교회인데 단순히 덜 순수한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비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자가 아브라함 카이퍼도 아니며, 또 그를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교회의 다원성 이론에 문을 열어 줄 위험성이 크다. 다시 말해서, 하늘에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이 세상에서 다양한 형태의 교회들 곧 교파들로 나타난다는 카이퍼의 이론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지상에 나타난 모든 교파들을 그리스도의 보편교회의 한 모습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로마교회, 성공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침례교회, 오순절 교회 등 모든 교회들과 실제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거짓교회가 아니라 참 교회로서 단순히 좀 더 순수하고나 좀 덜 순수한 교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 교회는 복음이 항상 순수하게 선포되어야 하고, 규례들(성례와 권징 등)이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시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 교회는 좀 덜 순수한 교회가 아니라 거짓 교회일 뿐이다(벨직29항).

 

3. 교회질서

 

3.1 개교회의 본질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차이점은 교회질서에서도 크게 차이가 난다. 가장 큰 차이점은 개 교회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다. 장로교회는 개 교회를 보편 교회에 속한 지체로 보는 반면(신앙고백서25:4), 개혁교회는 개 교회를 완전한 보편 교회로 본다(신앙고백서27항). 이 때문에 장로교회는 당회뿐만 아니라 노회와 대회 그리고 총회까지 치리회로 본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오직 당회만을 치리회로 본다. 왜냐하면 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완전한 공 교회이기 때문이다.

 

3.2 교회와 교회의 관계

 

장로교회는 개 교회를 보편교회의 지체로 보기 때문에, 당회(혹은 교회)와 노회, 노회와 총회의 관계는 상회와 하회의 관계이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그것들의 관계가 대회 혹은 광회의 관계일 뿐이다. 각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이 교회들의 권세는 동일하다. 그러므로 각 교회 위에 있는 권세로서의 어떤 개인이나 교회나 교회들은 없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각 지역에 독자적인 권세를 가진 교회를 세우셨다. 이 교회들은 오직 사도적 신앙의 일치 안에서 한 교회로 연합한다(엡4:3이하, 고전12:13).

 

3.3 장로회 정치의 본질

 

장로교회는 “노회”를 감독교회의 관구로 해당한다고 찰스 핫지가 말했다. 이것은 분명히 개혁교회의 장로회 정치가 아니라 감독 정치이다. 장로회 정치는 독립(회중)정치와 감독(교황)정치 사이에 위치해 있다. 즉 교회들의 연합을 무시하고 개교회의 독자적인 치리를 절대시하는 독립교회와 개교회의 독자적 치리를 무시하고 교회 위에 있는 더 높은 권세에 의해 치리되는 감독(교황)체제를 주장하는 로마교회나 감리교회 사이에 있는 것이 장로회 정치를 하는 장로교회이다.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는 독자적인 독립교회도 반대하고, 교회 위의 감독정치도 반대하기 때문에, 노회나 대회, 총회를 신앙의 일치 안에서 보편적 교회의 연합을 이루는 모임으로 본다.

 

3.4 노회

 

장로교회는 특별히 지역별 “노회”가 중심에 서 있다. 이 노회는 본래부터 노회 회원인 목사들과 각 교회의 대표자인 장로들로 구성이 된다. 여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목사는 결코 개 교회의 회원이 아니며, 하나님이 특별히 개 교회에 보내시는 파송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상이 그것이다. 이는 개교회가 지체로 있는 보편교회가 바로 노회라는 생각이 그 중심에 서 있다. 따라서 노회는 목사를 임직시킨다. 그러나 개혁교회에서 목사는 개교회의 회원이다. 따라서 목사 임직식도 그 교회에서 하게 된다.

 

3.5 삼직분

 

장로교회는 삼직 즉 목사, 장로, 집사를 인정한다. 이는 개혁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목사를 노회의 회원으로 보고, 장로와 집사는 평신도로서 개 교회의 회원으로 보기 때문에, 직분간의 계급이 있다. 반면에 개혁교회는 모든 직분이 개교회에 소속되어 있으며, 직분상의 어떠한 계급의식이 없다. 로마교회로부터 개혁된 개혁교회는 언제나 교회 안에 교권이 들어오는 것을 조금도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장로교회는 벌써 교권적 직분관을 형성한 지 오래다. 목사의 직분에서 위임목사, 임시목사, 부목사 등으로 구별한 것과 장립집사와 서리집사를 구별한 것과 준직원으로서 강도사, 전도사를 첨가한 것, 임시직분으로서 권사, 권찰 등을 만든 것 등은 원래 장로교회의 직분관에서 상당한 이탈한 것이다. 특별히, 개혁교회는 여자는 직분에 봉사하지 않는다. 이는 전통적 장로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것은 성경과 그 개혁의 원리를 벗어나 감독교회체제로의 회귀임과 동시에 시대의 조류를 따름이다.

 

4. 기타

 

4.1 주의 만찬

 

주의 만찬은 성례로서 은혜 언약의 표와 인침이다. 이 언약의 표징은 참된 교회의 표징이기도 하다. 이 표징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시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는 모두 로마교회의 화체설이나 루터교회의 공재설 그리고 쯔빙글리의 기념설도 부인하고, 칼빈을 따라 소위 영적 임재설을 믿는다. 그러나 양교회의 차이점은 “합당하게 참여하는 것”에 있다. 사도는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 주의 떡과 잔에 참여하라고 하였고, “주의 몸을 분변”하고 먹고 마시라고 하였다(27-29절). 그렇지 않을 때, 언약적인 저주가 교회와 신자 개인에게 임한다(30-32). 개혁교회는 이 말씀을 따라 함부로 아무에게나 주의 상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주의 만찬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소위 울타리를 친다. 주의 만찬을 분변하지 못하는 자와 범죄한 자들은 성찬에 참여하지 못한다. 이 뿐 아니라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자도 참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주의 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고백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개혁교회는 장로들이 부지런히 심방을 하여 살피고, 주의 만찬 예식서에 구체적인 죄목을 들어 범죄한 자들이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이에 반해 장로교회는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개인의 의사에 맡겨버린다. 따라서 아무나 함부로 주의 상에 참여하게 된다. 성찬을 분변하지 못하는 자와 범죄한 자들도 참여하게 되고, 심지어 신앙고백이 전혀 다른 교파의 신자들도 참여하게 된다. 이는 성례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시행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한국장로교회의 경우, 일년에 한 두 차례 시행하는 주의 만찬은 전혀 울타리를 치지 않기 때문에, 언약적인 저주가 가득 한 만찬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4.2 교회회원권

 

익히 아는 대로, 개혁교회는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경을 일치신조로 고백하고,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신조로 한다. 그런데 장로교회는 이 신앙고백서를 단지 직분자들에게만 서약하게 하고, 일반신자들은 그 멍에에서 자유롭다. 즉 일반 신자들은 세례를 받을 때, 이 신조를 따라 살 것을 서약하지 않고서도 교회의 회원이 된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직분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까지 모두 이 일치신조를 따라 믿고 살아갈 것을 고백하며 서약한다.

 

신자는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전12:13). 한 몸은 한 하나님, 한 주님, 한 성령님, 한 믿음 안에서이다(엡4:3이하). 우리는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 따라서 신앙고백서를 받지 않고,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 장로교회는 과연 한 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장로교회를 보라. 장로교회라는 간판은 달고 있으면서 정작 그 신앙고백서를 가르치고 배우지 않음으로, 교회 안에 얼마나 다양한 신앙과 생활로 나뉘어져 있는가? 그런 교회가 과연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기야 우리 한국장로교회는 처음부터 신앙고백서를 받지 않는, 이름만 장로교회로 시작되었으니 더 무엇을 말하리요!

 

나가는 말

 

정말 간단히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이 짧은 글에서 더 자세히 말하지 못한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오늘 강의를 발판을 삼아 제기된 문제들에 관하여 더 심도 있는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선택과 언약은 참으로 중요한 주제이다. 이는 우리 신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언약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도 교회생활도 잘못 된다. 또한 바른 교회론은 신자의 교회생활과 직분과 치리회를 바로 이해하는 초석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을 확실하고,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요구한다. 부디 참된 교회의 표지를 잘 드러냄으로써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이루어 나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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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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